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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녀귀신이 무섭지 않다... 한 공포영화 팬의 바람

[리뷰] 컨저링 세계관의 스핀오프 영화 <더 넌>

18.09.29 15:32최종업데이트18.09.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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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넌>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952년, 루마니아의 산속 깊은 곳 크르차 수도원에서 수녀 2명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다. 수녀들은 어떤 큰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문 앞에는 '신의 영역은 여기까지'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원로 수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어디론가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 가고 죽음에 이른다. 젊은 수녀는 무언가에 쫓기 듯 달아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구마 의식에 대한 경험이 많은 버크 신부(데미안 비쉬어 분)와 종신서원을 하지 않은 수녀 아이린(테이사 파미가 분)은 교황청을 지시를 받고 루마니아로 파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더 넌>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잦은 등장으로 관객에게 내성이 생겼다

컨저링 세계관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와 아닌 것이 섞여있다. <컨저링>, <컨저링 2>, <에나벨>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각본은 각본일 뿐이다. 다만 영화 도입부에 관객에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공포영화는 실화, 실존, 실제 이런 키워드가 있으면 더 몰입된다. 이번 <더 넌>과 <애나벨: 인형의 주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다. 컨저링 시리즈에서 1970년대 미국, 영국의 어느 가정집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문화적 친숙함 때문에 비교적 그럴듯해 보였다. <더 넌>의 1950년대 루마니아 수도원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벌어진 시간차만큼이나 그 배경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더 넌>의 배경이 수도원으로 옮겨가면서 이제는 귀신 들린 집 이야기가 아니다. 동시에 가족에 대한 딜레마도 사라졌다. <엑소시스트> <곡성> <유전>, 멀리 갈 것 없이 컨저링 시리즈만 하더라도 어느 가족이 겪는 이야기이다. 지켜야 하는 자와 위협이 되는 자가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에 딜레마가 생긴다. 가까운 가족이 악마에게 빙의됐을 때 받는 심리적 충격과 공포감 또한 상당하다. <더 넌>에서 상대하는 발락(보니 애론스 분)은 빙의로 사람을 꿰어내기보다는 직접 현신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한다. 여기서 발락은 딜레마의 대상이 아니라 명확하게 제거해야 할 존재다. 버크 신부와 아이린 수녀 대 발락이라는 갈등구조가 분명하다.

익숙하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낯설고 모르는 것에 대해 공포가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컨저링 세계관에서는 무지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통용됐다. 그런데 <더 넌>의 수도복을 입은 발락은 이미 두 번의 시리즈에서 인용된 탓에 무섭지만 동시에 친근하기까지 하다. 명절에 오랜만에 훌쩍 성장한 조카를 보면서 '아~ 얘가 걔였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컴퓨터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 두렵지만 익숙한 그런 존재. <컨저링 2> <에나벨: 인형의 주인>에서 보였던 카리스마가 없다. 그동안 관객에게는 내성이 생겼다. 
 

<더 넌>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기능적인 묘사에 그친 인물들

<더 넌>은 관객을 감정을 이입시키기에 비논리적이다. 다른 장르도 아닌 공포영화에서 논리성을 따진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잘 알고 있다. 공포영화는 등장인물이 어느 정도 백치미를 자랑하듯 미끼를 물고, 가지 말라는 곳에 굳이 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버크 신부와 아이린 수녀는 교황청에서 사건 조사를 위해 파견한 인물이 아닌가. 아직 경험이 적은 아이린 수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라클 헌터'로 불린다는 버크 신부의 행동마저 안이하다. 도처에 악한 기운이 맴도는 수도원을 조사하면서 수시로 따로 떨어져 다니며 위험을 자처한다. 일반인이 흉가체험을 가도 그렇게 허술하진 않을 것 같다.

주요 인물이 기능적으로만 사용되는 것도 문제이다. 버크 신부는 '미라클 헌터'란 호칭은 온데간데없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약해진 인물로 그려진다. 아이린 수녀는 어릴 적부터 환영을 본다는 설정이다. 컨저링 세계관의 주요한 단서가 될 줄 알았지만, 후반부에 스토리를 이어가는 구실로만 사용된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프랜치(조나스 블로켓)의 뒷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선을 깔고 회수하는 것도 치밀하기보다는 결말로 달려가기 위해 임시로 틈을 매워 넣은 것처럼 뻔하다.

프랜치가 샷건을 들고 나오면서부터 공포영화가 주 장르가 아니게 된다. <엔드 오브 데이즈> <반 헬싱> <콘스탄틴> 같은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인간을 타락시키려고 하는 악마와 믿음을 시험받는 인간의 서스펜스가 사라지고 생존에 대한 문제만 남는다. 사악한 영적인 존재를 상대하는 데에서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공포가 징그러운 괴물을 처치하는 액션으로 바뀐다. 악마가 숫자로 밀어붙이는 시퀀스에서는 이것이 오컬트 영화인가 좀비 영화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더 넌>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공포영화 팬으로서 바라는 점

<더 넌>은 관객을 갑자기 깜짝 놀라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요즘 유행하는 공포영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공포영화 팬들 사이에서 제임스 완 감독이 관여한 작품은 믿고 보는 때가 있었다. 최근에 <직쏘> <더 넌>으로 이어지는 참여 작품은 그런 명제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제는 공포영화로 한정 지을 수 없는 인기 감독이지만, 원래 본인이 잘했던 장르를 이렇게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사를 쓰고 있는 현재 시각 밤 11시 반, 편집을 위해 관련 자료를 보고 있는데 전혀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다. 발락이 노려보고 있는 사진을 모니터에서 빨리 치우고 싶다. 시리즈의 아성과 캐릭터의 유명세에 기대어 너무 쉽게 풀어가려고 했다면 억측일까? 각본은 <그것>(2017)과 <에나벨> 시리즈를 맡은 게리 도버먼과 컨저링 세계관을 만들어낸 제임스 완이 직접 맡았다. 순간적인 공포도 좋지만, 그 바탕에는 항상 심리적인 공포가 전제돼야 한다. 감독은 <컨저링> <인시디어스>에서 그런 밀당을 잘 해낸 바 있다. 관객은 언제든 비명을 지를 준비가 되어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블로그(https://likegraph.blog.me)와 브런치(https://brunch.co.kr/@likegraph)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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