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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 날린 대회였지만...' 역전 드라마 희생양 된 잉글랜드

[러시아 월드컵] 우승 희망에 '김칫국 들이킨' 잉글랜드, 희망과 설레발 사이

18.07.12 11:15최종업데이트18.07.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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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너무 일찍 '김칫국부터 거하게 드링킹'한 댓가는 뼈아팠다. 월드컵 우승의 희망에 부풀었던 '축구종가'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에 덜미를 잡히며 결승 무대조차 오르지 못하고 좌절했다.

잉글랜드는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준결승전서 1-2로 패했다. 전반 5분 만에 키에런 트리피어의 프리킥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23분 이반 페리시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연장까지 끌려갔다. 다시 연장 후반 4분에는 마리오 만주키치에게 역전골까지 내주며 극적인 역전드라마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8년 7월 12일 오전 3시(한국시간)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 크로아티아의 마리오 만주키치가 결승골을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른 득점에도 리드 지키지 못한 잉글랜드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열린 1966년 대회 우승 이후 더 이상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라보지 못했다. 4강에 진출한 것도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무려 28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에 영국 축구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아직 결승에 진출하기도 전에 우승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준결승 상대인 크로아티아는 안중에도 없이 프랑스와의 결승 대진을 상상하는가 하면, 잉글랜드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경우 나올 수 있는 다양한 가상 이벤트가 거론되는 등 '설레발'에 들떴다.

이런 분위기는 심지어 경기에서도 이어졌다. 트리피어의 선제골이 터질 때만 하더라도 잉글랜드 선수단과 팬들은 승리의 예감에 도취됐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크로아티아는 이미 16강과 8강전에서 연이어 연장전-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며 이미 체력이 크게 고갈된 상태였다. 기세를 탔을 때 더 밀어붙였다면 크로아티아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었지만 잉글랜드는 선제골 이후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월드컵 준결승전이라는 압박감을 고려하여 부득이하게 실리적인 선택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의 장점을 포기하고 오히려 빈틈을 내보인 꼴이었다.

적극적으로 볼을 최전방으로 보내 추가골을 넣겠다는 의지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며 지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다 보니 최전방에 해리 케인이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놔두고서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했다. 이는 오히려 지쳐있던 크로아티아 중원의 볼 점유시간이 늘어나며 기를 살려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너무 이른 득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연이은 순항에 가려진 잉글랜드 수비의 불안 요소도 드러났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스리백 전술을 가동했는데 측면 수비수이고 오버래핑이 좋은 카일 워커를 센터백의 한 자리에 기용했다. 스피드와 투지가 좋은 워커의 기용은 잉글랜드의 공수전환과 역습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중앙수비수로서는 공중볼 처리와 위치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약점도 뚜렷했다. 잉글랜드 축구에 정통한 전문가들도 워커의 센터백 기용은 모험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날 크로아티아가 따낸 2골도 모두 워커 쪽에서 커버 플레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설상가상 잉글랜드는 '멘탈 싸움'에서도 크로아티아에 밀렸다. 분명히 이날 경기를 앞두고 체력적으로 훨씬 불리한 쪽은 벌써 3경기째 연속 연장 승부를 치르고 있던 크로아티아였다. 하지만 연장전 막판까지 더 적극적으로 뛰어다닌 쪽은 크로아티아였다. 평균연령 26세, 이번 대회 직전까지 23인 선수단의 A매치 평균경험이 20.2경기밖에 되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젊은 팀'의 단점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오히려 '언더독' 취급을 받았던 크로아티아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결승행이라는 새 역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잉글랜드보다 더 강했다. 에이스 모드리치가 언급했듯이 경기 전부터 잉글랜드 언론과 축구인들이 크로아티아를 얕잡아보고 잉글랜드의 손쉬운 결승행을 낙관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여준 것도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투혼을 오히려 더욱 자극했다는 지적이다.

잉글랜드, 결승에는 못 갔지만... '승부차기·스웨덴 징크스' 날린 대회

비록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잉글랜드 축구로서는 그래도 희망을 건진 대회였다고 할 만하다. 지난 20년간 빈번한 감독교체와 황금세대로 꼽히는 스타 선수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대회에서 번번이 8강을 밑도는 성적에 그쳤던 잉글랜드지만, 모처럼 사우스게이트라는 젊고 재능 있는 자국출신 감독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실추된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다소나마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오랜만에 메이저대회 8강 징크스를 극복해낸 것을 비롯하여,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서 지긋지긋하던 월드컵 승부차기 트라우마를 날리는 첫 승리를 거뒀다. 8강에서는 한때 40년 넘게 무승행진을 이어오던 천적 스웨덴도 가볍게 제압했다. 새롭게 물갈이된 젊은 잉글랜드에게 선배 세대들이 남긴 흑역사는 그저 과거의 추억일뿐이다.

케인, 델레 알리, 제시 린가드, 마커스 래쉬포드, 조던 픽포드 등은 잉글랜드 축구 '세대교체 '의 주역들은 지금보다 4년 뒤 월드컵이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이번 대회에서 잉글랜드가 기록한 12골은 자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한 대회 최다득점이며 세트피스로만 무려 9골을 넣는 것도 최다 기록이다. 이들보다 한 세대 이전 황금세대로 꼽혔던 스타 선수들이 EPL 내부에서 클럽팀간의 경쟁의식과 지나친 '스타병'으로 인하여 국가대표팀에서는 하나로 뭉치지 못한 것과 달리, 신세대 선수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활기찬 분위기가 된 것은 사우스게이트호에서 두드러진 변화다.

2018년 6월 18일(현지 시간), 튀니지와 잉글랜드의 러시아 월드컵 G조 조별리그 1차전 경기 모습.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 선수가 결승골을 터뜨리고 기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의 일회적인 성공이 아직 잉글랜드 축구의 완전한 부활을 의미한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른 것은 사실상 우승후보급 강팀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던 역대급 '꿀대진'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그나마 강팀이라고 할수 있었던 벨기에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패한 것은 잉글랜드 축구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세트피스에 의한 득점력은 높았지만 그 외 필드플레이에서는 강팀을 상대로 제대로 된 골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6골로 유력한 득점왕 후보에 오른 케인 역시 득점의 절반이 PK였고 토너먼트로 올라갈수록 위협적인 모습이 줄었다. 창조적인 패스를 뿌려줄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는 여전히 투박한 뻥축구와 역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자국리그 EPL은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잉글랜드 스타 선수들은 높은 몸값에 비하여 기술이나 창의성 면에서 월드클래스에 근접할 선수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부분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유로 2020이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좀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번 월드컵의 깜짝 성공 자체가 잉글랜드 축구에는 '가장 뼈아픈 설레발'로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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