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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소녀의 잔혹한 주검, 가해자를 고발하는 노래

[기획] 이승환의 '꽃'부터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까지, 5월의 노래들에 담긴 사연

18.05.18 11:27최종업데이트18.05.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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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980년 5월에 짓이겨진 '붉은 꽃들'을 기억한다.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2018년 5월에 핀 장미들이라면, 우리가 뿌리내린 이 흙은 1980년 5월에 스러진 꽃들의 붉은 피를 거름으로 하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며 이를 소재로 한 영화의 OST와 민중가요 등을 다시 들어봤다. 많은 곡들이 '꽃'을 소재로 하고 있단 공통점에 눈길이 갔다.

영화 < 26년 > OST, 이승환의 '꽃'

▲ 이승환의 '꽃'이승환의 '꽃'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박신혜가 자신이 키우던 꽃이 폭력에도 살아남은 걸 발견하고 놀란 듯 바라보고 있다.ⓒ '꽃' 뮤직비디오 캡쳐


지난 2012년 개봉한 < 26년 >은 5·18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때만 해도 사회 전반엔 보이지 않는 억압이 심했고 이 영화는 제작비를 투자받지 못해 애를 먹었다. 결국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으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해 만들었는데, 2012년 6월 25일부터 그해 11월 19일까지 약 6억2000만원의 누적 모금액을 기록했다.

이 영화의 엔딩 타이틀곡은 이승환의 '꽃'이다. 이승환은 < 26년 >의 1호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2003년 발표한 자신의 앨범 < His Ballad II >의 타이틀곡인 '꽃'을 이 영화에 수록하기 위해 새롭게 편곡했다. < 26년 > OST에 실린 이 노래를 이승환을 포함해 윤상, 윤도현, 이석훈, 호란, 김종서 등 40여 명의 뮤지션들과 < 26년 >의 주연배우 진구, 배수빈, 임슬옹이 함께 불렀다. 응원의 마음을 모아 재능기부 형태로 음원,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것이다.

"먼 옛날 눈물로 지새던 밤 그대 기억도 못할 약속 가슴에 남아/ 혹시 시간이 흘러도 우리 살아있는 동안 다신 볼 수 없다 해도/ 그대의 태양이 다 지고 없을 때 말없이 찾아가 꽃이 되겠네/ 내 사랑 영원히 잠드는 잔디 위에 꽃이 되겠네" (이승환 '꽃' 가사 중)

원곡 '꽃'의 뮤직비디오는 5·18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건 아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닿아있다. 과거 이승환의 소속사 드림팩토리의 소속 연예인이었던 박신혜는 2003년 이 뮤직비디오로 정식 데뷔했다. 판타지적 이야기를 담은 이 뮤직비디오에서 박신혜는 로봇집에서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어느날 닥친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소중한 로봇집과 터전을 잃는다. 하지만 기르던 꽃만은 폭력에서도 살아남아 그의 곁을 지킨다. 폭력과 평화의 대비를 동화적으로 담아낸 이 뮤직비디오는 폭력으로 짓밟힌 이들을 기억하게 한다.  


샹송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번안한 '5월의 노래2'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겸 가수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는 1971년 샹송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를 발표했다. 가사는 1970년대 프랑스의 어느 후미진 시골의 이야기를 담았다. 재개발 지역인 이곳은 한 할머니의 평생 고향이자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일군 정원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강제적인 도시계획으로 무참히 짓밟혔고 할머니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었다. 국가폭력에 저항했던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이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역시 가사에는 꽃이 등장한다.

"옛날에 할머니 시절에 꽃들이 정원에 피어나고 있었는데/ 그때는 사라지고 마음만 남아있을 뿐/ 양 손에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지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시간인가요 아니면 시간이 남아도는 부자들인가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가사 중)

이 곡은 1975년 한국에서 가수 박인희에 의해 소개됐다. 그가 사랑을 주제로 이 곡을 번안해 '사랑의 추억'이란 곡으로 선보인 것.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는 이후 1980년에 민중가요 '5월의 노래2'로도 번안됐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더불어 이 노래가 울려 퍼졌고 당시 정부의 탄압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5월의 노래 2' 가사 중)

이 곡은 당시 열아홉 소녀였던 손옥례 열사의 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손 열사는 여고를 막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해 첫 출근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5월 19일 친구 동생의 병문안에 간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사흘 후인 21일, 그녀는 총알에 몸이 뚫리고 대검으로 가슴이 찢긴 주검으로 발견됐다. 계엄군들의 짓이었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여성을 추모한다는 점에서 원곡인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와 '오월의 노래2'는 맞닿아있다.

민중가수 정태춘-박은옥의 '5.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정태춘, 박은옥의 '5.18' 가사 중)

정태춘과 그의 배우자 박은옥이 함께 부른 '5·18'에서도 꽃이 소재로 사용된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는 첫 소절이 강렬하다. 5·18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국가 폭력에 의해 밟힌 이들을 위로한다. 특히 아름다운 꽃을 소재로 담은 가사는 폭력의 잔혹함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키며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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