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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가진 남자, 하지만 사랑만큼은 죽기 직전에야 깨닫다

[리뷰] 톰 포드 감독, 영화 <싱글맨> 통해 1960년대를 그리다

17.06.24 17:44최종업데이트17.06.2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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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전 수석 디자이너로 파산 직전의 구찌를 구한 톰 포드는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한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톰 포드는 이 영화 <싱글맨>을 만들어 오랜 꿈을 이뤘다.

1964년에 발표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싱글맨>은 어느 중년 게이의 하루를 묘사하고 있다. 16년간 함께한 사랑하는 연인 짐(매튜 구드)을 교통사고로 잃은 조지(콜린 퍼스)는 지독한 상실감과 외로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느 날 외로움 속에서 벌벌 떨며 깨어난 그는 드디어 죽기로 한다. 그리고 영화는 소련과 미국의 핵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1962년의 어느 하루, 자살을 결심한 조지의 뒤를 따라가며 그에게 일어나는 일을 충실히 그린다.

풍족한 하지만 소외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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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올더스 헉슬리를 연구하는 영미문학 교수로, 겉으로 봐서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풍족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아웃사이더이자 투명인간이다. 동성애자로서 이성애자들로부터 소외돼 있으며, 실력 있는 학자지만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학생들로부터 소외돼 있으며, 미국에 사는 영국인으로 친한 사람 하나 없다. 특히 조지가 덧문 사이로 옆집의 자기 만족적인 미국인 가족을 훔쳐보는 장면은 게이의 정체성을 타고난 그가 전통적인 가족주의로부터도 철저히 소외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찰리(줄리안 무어)는 그의 젊은 시절 한때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 그녀는 거듭된 결혼 실패로 불안정한 성격을 갖게 된 아름다운 여인으로 여전히 조지를 사랑한다.

점점 늙어가는 육체 안에 갇힌 조지는 젊은 남자들이 가진 생기발랄한 아름다움을 쓸쓸한 마음으로 동경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기존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남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동료와 소련-미국 간의 핵 긴장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의 시선이 가는 곳은 웃통을 벗고 테니스를 치는 건장한 남자들이고, 열아홉 살 제자의 육체가 가진 아름다움에서 시종 눈을 떼지 못한다.

톰 포드는 영화 안에서 조지가 느끼는 심리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인다. 문학 교수인 조지는 원작자 이셔우드의 분신이지만, 동시에 톰 포드의 자기 반영적 자아이기도 하다. 인물의 입술 등 신체 일부만 확대하는 빅 클로즈업이나 사운드를 빗소리로만 채운 몽타주들, 여러 차례 등장하는 슬로우 모션의 고속촬영, 장면과 기묘하게 결합하는 과장된 음악들이 그 예다. 적지 않게 등장하는 이러한 연출들은 일견 영화과 학생조차 시도하지 않을 설익고 유치한 연출처럼 보인다.

이러한 연출 방식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지나친 자의식의 발로로 봐야 할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류 디자이너 출신 감독의 탐미주의적인 연출이라고 봐야 할지 난감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톰 포드의 의도, 톱 디자이너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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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영화를 처음 만든 이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매우 출중하다. 특히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해 21일이라는 턱없이 짧은 기간 동안 찍었지만 서둘러 찍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여유롭고 진지한 연출이 눈에 띈다.

또 조지가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날 죽은 영국 출신 작가 올더스 헉슬리 전공자로 설정됐듯이, 올더스 헉슬리에의 영향이 전반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조지와 케니(니콜라스 홀트)가 함께 캠퍼스를 걸으며 환각제인 메스칼린을 복용한 체험을 이야기하는 장면과 조지가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순간의 묘사가 그러하다.

톰 포드는 조지의 입을 빌려, 영원할 것만 같은 생애의 어느 한순간을 이야기한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지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소음을 멈추고 고요함으로 바뀐다. 인식은 순수해지고 사물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올더스 헉슬리가 <인식의 문>이라는 저작에서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해 묘사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시에서 "인식의 문이 깨끗하게 정화된다면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라고 썼다. 이 '인식의 문'이라는 표현에서 록밴드 도어즈도 이름을 따왔다.

<싱글맨>은 '1960년대'의 삶의 풍경을 오랜만에 영화 속에 재현한 반가운 영화였으며, 배우들의 호연도 부족함이 없었다. 또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남겨진 자의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내 동성애 영화라는 이슈를 넘어서 애정과 상실, 정신적 위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작품 속에 디자이너다운 개성이 잘 녹아 있는, 한마디로 톱 디자이너가 만든 영화는 어떨까, 라는 물음에 '한 번쯤 볼 만하다'는 긍정적인 답을 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데뷔작인 본작으로 그치지 않고 톰 포드는 지난해에도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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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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