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세상 좋아진 줄 알았더니, 역시 박근혜"... 시인 고은의 일침

[TV리뷰] <제정임의 문답쇼, 힘> 출연... "블랙리스트는 치명적이고 무식한 일"

17.03.18 17:20최종업데이트17.03.20 10:21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고은 시인ⓒ SBSCNBC 갈무리


한국 문단의 거장이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작 <만인보>의 작가인 고은(84) 시인이 16일 SBSCNBC 방송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 시인은 "(탄압 대상 인물을 정리한) 블랙리스트는 국제적으로 치명적"이라며 "대선 때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블랙리스트에 넣은 것은 무식하고도 무식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나는 박정희, 전두환 때도 블랙리스트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시 그 아버지(박정희)의 딸이었다"며 "그 시절 사람들(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이번 정부에서도 역시 그런 식이 아니면 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 사태와 관련해 "현대 초기에는 퇴폐적, 퇴행적 일탈을 한 문인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작가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준을 갖춰야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문단 권력' 논란과 관련, "신경숙 작가는 몇 년 전 표절문제가 터졌을 때 솔직히 고백했어야 했다"며 "유명 작가를 싸고돈다는 비판을 받는 출판사들도 이번 기회에 자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4번의 자살시도와 10년 간 승려로 지낸 청년기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은 충격으로 네 번 자살을 시도하고 10년 간 승려로 살다 환속한 경험 등을 말하는 고은 시인ⓒ SBSCNBC 갈무리


고 시인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은 충격으로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청년기를 회상했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남북을 합해 500만 명이 3년 동안 죽었다"며 "나도 당연히 죽었어야 했는데, (함께 놀던 친구 등) 그들은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살 시도 등 고통을 겪은 이후) 그들이 못 산 삶을 내가 대신 살아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며, "나는 개인이 아니라 공적인 존재가 됐고, 그들의 미완의 삶과 죽음이 들어가 있는 복합체이며 공공연한 생명체라는 역사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고 시인은 전쟁이 끝날 무렵 절에 들어가 10년 간 승려로 지냈다. 그는 "예술의 길을 갈까, 종교의 길을 갈까 고민하던 무렵 4.19가 발생했다"며 "산 위에 올라가 통곡을 한 뒤 예술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하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승려생활 중 시 <폐결핵>으로 등단했고, 환속 후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참여 시인으로 전향

고은 시인은 신군부 치하의 암흑 같았던 감옥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만인보>를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SBSCNBC 갈무리


60년대까지만 해도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고 시인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이른바 '운동권 작가'가 됐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그때 (전태일의) 죽음에 의해서 양심의 충격을 받고 세상으로 관심을 돌렸다"며 "그러면서 박정희의 유신하고 싸움을 하는 추동세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공모자로 몰려 신군부의 감옥에서 절망적인 수감생활을 할 때 연작시 <만인보>를 구상한 과정도 이야기 들려주었다. 당시 빛이 들어오지 않는 특별감방에서 관 속에 들어간 것처럼 누워 있는데, 현재가 박탈되니 어린 시절의 기억 등 과거가 찾아왔다고 한다.

고 시인은 "살 수 있다면,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할아버지, 고모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것이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총 4001편의 시, 30권의 책으로 나온 고 시인의 <만인보>는 해외 평론가로부터 '20세기 세계문학의 가장 비범한 기획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고, 스웨덴 등에서는 번역된 시가 문학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한창 보도될 때 주요 폭로자의 하나였던 고영태 전 블루케이 이사의 부모 이야기가 <만인보>에 실렸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고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 취재하다가) 여러 아이들을 남겨놓고 아빠가 (계엄군에 의해) 먼저 죽고, 엄마 혼자 애들을 건사하며 살았는데 그 중 하나가 펜싱선수로 아시아게임에서 메달을 따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때는 고영태인지, 박영태인지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고 시인은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는 세 사람과의 각별한 인연, 아내의 생일을 '상화절'로 명명하고 각별히 챙기는 사연, 일반인을 위한 '시 잘 쓰는 법'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16일에 방송된 <제정임의 문답쇼, 힘>은 <단비뉴스>와 <SBSCNBC>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A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