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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는 전혀 다른 결말, 연출의 의도를 모르겠다

[공연 리뷰] 고대 그리스 비극 재해석한 연극 <메디아>의 문제점

17.03.21 11:12최종업데이트17.03.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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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고전의 재해석, 연극 <메디아> 공연 사진국립극단의 연극 <메디아>는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남편 이아손을 위해 가족도 고향도 배신하고 모든 것을 바쳤지만, 메디아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메디아는 비정한 복수를 준비하고, 그 복수의 칼날은 자기자신마저 파멸시킨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4월 2일까지.ⓒ 국립극단


안티고네, 메데이아, 클리템네스트라. 이런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오이디푸스, 아가멤논, 헤라클레스는 어떤가? 이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했던, 비극 속 인기 있는 인물들이다.

인간 정신의 심연이라고 칭송받는 그리스 비극. 신이 지운 인간의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존엄을 잃지 않는 고귀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아테네에서 비극 공연은 시민들에게 자긍심과 교훈을 주는 통치 도구로도 이용되었고, 비극 경연대회에서 수차례 일등상을 타며 인기 있었던 세 명의 작가,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은 지금도 읽어볼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을 처음 읽는다면 당혹감이나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코러스가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고 극 중 인물들과 주고받는 장황한 논쟁 등도 그렇지만, 대개의 이야기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막장 드라마와 비슷해 보인다. 누구나 아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부터 보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한 침대에 든다.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자식들을 낳는다. 오이디푸스는 제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이다. 기가 막힌 이야기다.

유명한 장수 아가멤논 가족을 보자. 아가멤논은 딸을 제물로 바쳐 죽이고, 아내는 딸을 희생한 남편을 정부와 도모해 죽이고, 아들은 어머니를 죽인다. 이 외에도 아들을 사랑한 계모, 자식을 죽게 하는 아버지 등 요즘 표현으로 막장 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중에 가장 논쟁적 인물 중 하나가 제 손으로 자식들을 죽인 메디아(메데이아)다.

메디아의 주체성이 줄어들었다

▲ 메디아와 아이게우스아이게우스를 유혹하여 자신의 정략에 이용하려는 메디아. 하지만 지나친 묘사가, 오히려 그녀의 설득력을 약화한다.ⓒ 국립극단


황금 모피를 얻은 사나이, 이아손 이야기를 아실 것이다. 그의 아내가 메디아다. 메디아는 외국에서 온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하여 자기 아버지와 오라비를 죽이고 이아손을 따라나선다. 메디아를 사랑에 빠지게 한 것은 신들이 한 일. 그러니 이아손의 아내가 되어 타향살이하는 것이 메디아의 운명이다. 이아손 부부는 아들들을 낳고 코린토스에서 살게 된다.

비극은 유부남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하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사랑 하나만 믿고 따라나선 메디아는 이제 남편에게 버림받을 처지. 악에 받친 메디아는 이를 갈며 복수를 결심한다. 약물을 잘 다루고 영리한 메디아는 독으로 남편의 약혼녀와 그 아버지를 죽이고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들까지 죽인 다음, 절규하는 남편을 조롱하며 유유히 도망간다. 이게 에우리피데스가 쓴 당시 인기 연극 <메데이아>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이 지금 <메디아>란 이름으로 공연되고 있어 기대감에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보고 나서 실망감이 컸다.

그리스 비극에서 시선을 끄는 여성 인물들이라면 안티고네와 메디아 같은 인물들이다. 보기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또박또박 대드는 안티고네, 남편과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메디아. <메디아>는 격렬한 내면 갈등을 잘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까지 꾸준히 각색되어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인기 있는 작품들이다. 지금 상연되고 있는 <메디아> 역시 로버트 알폴디가 원작을 각색하고 연출한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팬으로서, 나는 연출가가 과연 이 비극 작품을 이해하고 각색한 건지 의문스러웠다. 가장 놀라운 것은 원작 줄거리를 거의 다 따라가면서도 마지막에 메디아가 남편 손에 죽는 결말부였다. 메디아에게 가해진 폭력이나, 메디아의 고통이 주목받기보다는, 남편에게 버림받는 여자의 치정극에 방점이 찍혀버렸다. 메디아는 히스테릭한 여자, 아무 남자나 유혹하는 여자, 분노에 제 자식을 죽인 악녀로 오해받기 쉬워졌다.

원작에서는 이아손과 메디아가 남자와 여자를 대변해서 격렬히 논쟁하기도 한다. 이아손은 요새 개념으로 '여성혐오' 발언을 내뱉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식들을 낳고, 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인간들에게 불행이란 것이 없어질 텐데!"

메디아는 여자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한탄한다.

"생명과 분별력을 가진 만물 중에 우리 여자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예요."
"바보 같으니라고! 나는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차라리 세 번 싸움터로 뛰어들겠어요."

고대 그리스가 살려준 그녀, 현대 대한민국이 죽이다

▲ 메디아와 자녀들자신의 자식들을 직접 죽인 어머니.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인 '막장'이다. 이 막장의 원인과 맥락이 잘 설명되어야 하는데, 적나라한 묘사에 치우치다보니 정작 이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립극단


메디아가 자식들을 죽인 이유 중 하나는 어차피 (자신의 복수 행위의 결과로) 자식들이 죽을 운명이라면 어미인 제 손으로 목숨을 거두겠다는 것이다. 어미가 자식들을 죽이는 것은 끔찍한 범죄지만, 요즘 가끔 뉴스에 보이듯, 자식을 데리고 일가족이 자살하는 세태와 겹쳐보이기도 한다.

연극에서 메디아가 자식을 죽이는 장면은 원형 유리 돔 안에서 피 칠갑을 하며 보인다. 그리스 비극 상연 때는 죽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로만 처리한다. 메디아의 내면 갈등과 파멸의 과정이 메디아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대신, 피범벅 한 선정적인 장면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메디아는 미친 악녀처럼 묘사되고, 남편이 여자를 목 졸라 죽이는 것은 권선징악으로 정당화될 우려가 있다.

연극의 마지막 대사는 코러스의 말이다.

"신들께서는 많은 것을 예상과 다르게 이루시지요. 우리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면, 바라지도 않았던 것을 위해 신께서는 길을 찾아내시지요."

이것은 교만하고 비겁한 이아손에게 던지는 말이어야지, 메디아에게 벌을 주며 하는 말로 읽혀서는 원작의 맛을 해치는 게 아닐까. 똑같이 가부장적 사회이긴 하나 고대 그리스에서도 살려주었던 메디아를 21세기 현대에서는 죽여 버렸다. 메디아를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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