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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여성선수들, 수준이 이래서 미안합니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카리만의 히잡과 서효원의 화보 사이, 그리고 막말

16.08.14 18:36최종업데이트16.08.1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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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만 아불자다옐 선수 관련 기사를 소개한 미 NBC 트위터 계정. ⓒ NBC 트위터 갈무리


지난 6일 개막해 이제 중반을 맞이한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 전 세계의 이목을 잡아끈 장면이 있었다. 여자 육상 100m 예선, 그것도 꼴찌에서 두 번째, 결과보다 도전 자체로 주목받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여성 스프린터였다.

스물 두 살의 카리만 아불자다옐(Kariman Abuljadayel). 그는 지난 13일 오전(한국시간) 리우올림픽 육상 여자 100m 예선에서 3번 라운드 8번 레인에 출전, 조 7위로 통과했다. 전체 24명 중 2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하지만 NBC, CNN, 텔레그레프 등 서방 언론 등은 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무명의 육상선수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극찬했고, SNS 상에서 그는 이미 스타가 됐다. 히잡을 쓰고 전신에 검은색 운동복을 두른 카리만의 올림픽 역사상 보기 드문 운동복 때문이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막아온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런던 하계 올림픽부터 여성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했고, 카리만 아불자다옐은 100m 육상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한 사우디 여성 국가대표가 됐다. 런던올릭픽 800m 경기에 출전했던 사라 아타르 선수는 사우디 사상 최초로 올림픽 육상에 출전한 여자 선수로 기록돼 있다. 당시 아타르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히잡과 온통 검은 운동복도 눈길을 끌지만, 2010년대에야 비로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그리고 시선을 한국 선수들로 돌렸다. 양궁 여자 선수들은 여전히 세계 1위이고, 비록 4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여자 탁구의 선전도 확인할 수 있었다. 헌데 의아한 것은 에이스 서효원 선수의 눈물만큼이나 화제가 된 사진 한 장이었다. 

경기 결과만큼이나 관심 끈 탁구선수 서효원 화보 

서효원 화보 관련 포털 기사 검색 결과. ⓒ 다음 갈무리


"탁구 서효원 '맥심 모델' 논란, 입 열었다"

한 일간지의 올림픽 관련 기사 제목이다. 논란이라니, 무슨? 요는, 서효원이 작년 3월 남성지 <맥심>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고, 리우올림픽 기간 뒤늦게 이 표지 사진이 화제에 오르면서 지난 10일 <TV조선>과 인터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코치나 본인 모두 모델 제안이 동명의 커피브랜드에서 들어온 줄 알았고, 잡지 성격을 알고는 고사했으나 결국 촬영에 나서게 됐다는 납득할 만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이 엇비슷한 기사들은 13일 여자 탁구팀의 준결승 진출이 좌절되기 전까지 서효원 선수의 관련 기사 중 적지 않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매체들이 표지 사진은 물론 인터넷 상에서 떠돌아다니는 본문 내 사진까지 버젓이 게재했다. 흡사, 서효원 선수가 최근 표지 촬영을 한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는 성의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여자 경기가 없는 월드컵과 달리 국민의 관심을 끄는 국제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들의 외모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나 차별적 발언들이 문제시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효원 선수는 지난 2011년 전국종합탁구대회 여자단식에서 우승할 당시 '탁구 얼짱'으로 네이밍되며 실력과 함께 남다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효원 맥심'을 키워드로 쏟아진 기사들은 올림픽마저도 선정성에 기대는 한국 매체들의 일면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여기서 다가 아니다.

손석희는 왜 기자의 말을 막았을까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손석희 앵커는 "굳이 읽지 말자"고 했다. 누군가의 입밖에 내기 어려운 문장들이, 공중파를 타고 안방까지 갔다. ⓒ JTBC


"잠깐만. 읽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읽지 말자고요, 제 얘기는."

지난 8일, JTBC <뉴스룸>을 진행하던 손석희 앵커가 기자의 멘트를 막았다. 이례적인 풍경이다. "해변에는 여자랑 가야죠. 남자랑 가면 삼겹살밖에 더 구워먹나요"라고 한 어느 지상파 아나운서의 올림픽 비치발리볼 중계 멘트에 이어 여타 문제시되는 성차별적 멘트들을 소개하기 직전이었다. 해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올림픽 중계의 성차별적 막말을 지적한 것이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한, 그러나 버젓이 공중파를 타고 국민들에게 전파되는 이 성차별적 막말들이 도를 더 하고 있다. 민망함을 넘어 아나운서나 해설가의 자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야들야들한테 상당히 경기를 억세게 치른다"거나 하는 말이 예사일 정도다.

남성 중심의 방송가 분위기나 튀어야 사는 스포츠 중계 경쟁에서 그 원인을 찾는 목소리가 대부분이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심각한 것은 4년 마다 돌아오는 올림픽 중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와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는데 있다. 그 기준이 좀 더 엄격해져서 아니냐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중계 역시 이러한 지적들이 난무하는 걸 보면,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경각심 역시 엄격해 지고 있는 것이 맞고, 또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다시 카리만 선수로 돌아가 볼까. 자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선배들이 참여할 수 없었던 올림픽에 히잡을 쓰고서라도 출전한 중동의 여자 육상선수. 카리만은 그렇게 각국 마다 다르고도 같은 2016년 여성들의 상징적 얼굴이 됐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그 올림픽의 각국 중계진이 성차별과 성적 희화화에 해당하는 발언들을 하루가 멀게 쏟아낸다는 사실을 안다면 가히 유쾌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서효원 선수 역시 브라질에서 돌아온 뒤 과거 화보가 자신의 경기 기사만큼이나 양산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느끼는 씁쓸함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하긴 우린 이미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이상화 선수의 '허벅지'에 그리도 관심을 보이던 수많은 매체들의 선정성을 경험한 바 있다.

잊었다면 다시 일깨울 때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이 중계 막말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부디 평소에 중계에 나설 전문 인력도 기르고,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들도 키우시라고. 선수들의 기량과 땀을 확인하며 즐거워할 스포츠 중계와 보도가 불쾌함으로 얼룩지게 하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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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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