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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애프터눈 굿이브닝 앤 굿나잇" 진짜 사나이 전람회

[19살 검정고시생의 객기 넘치는 리뷰]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

14.05.21 21:03최종업데이트14.05.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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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트루먼 쇼>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패러마운트픽처스


"못 볼지 모르니까 미리 하죠.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앤 굿나잇."

아마 이 대사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거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 <트루먼 쇼>에서의 대사이다. 벌써 17살의 나이를 먹은 <트루먼 쇼>는 아직까지도 많은 매체에서 종종 인용되거나 패러디되곤 한다.

무언가가 세대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 중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대명사가 되는 방식을 택한 이 영화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새롭다. 1996년생인 필자는 안타깝게도 <트루먼 쇼>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다행이다.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한 살이 되어버리는 한국에서 세 살이었던 아이가 보기에는 가혹한 영화다.

짐 캐리가 분한 트루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영화의 시점인 서른 살이 되기까지 전 세계에 24시간 생중계된다. 그야말로 '트루먼의 티비쇼'인 것이다. 대략 섬 하나의 크기는 되는 것 같은 돔 스튜디오에는 인공태양과 달, 별들이 있고, 모든 것이 마치 현실처럼 세팅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소위 '스타'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트루먼이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트루먼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신이 갇혀있는 세계를 탈출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한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크리스토프(에드 헤리스 분)는 자신을 햇빛으로 묘사한다.ⓒ 패러마운트픽쳐스


창작자의 착각

프로그램의 총 책임자인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 분)는 자신을 소위 '조물주화' 시킨다. 트루먼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에서 그는 (트루먼의 시점에서)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으로 묘사된다. 명백하게 성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이 보기에 그는 언뜻 트루먼에게 진정한 애정을 품은 듯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창조해낸 것은 프로그램일 뿐 트루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애착은 인간 '트루먼' 아니라 '그의 세계 안에 있는 트루먼'인 것이다. 그것은 대사에서 더 명백해진다. 영화의 말미에서 트루먼은 배를 타고 스튜디오의 끝을 향해 간다. 트루먼의 탈출을 막으려고 기상시스템을 조종하는 크리스토프에게 방송국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한다.

"저러다 죽겠어! 죽는 걸 생방송할 셈이야?"

하지만 그는, "태어날 때도 생방송이었죠!"라는 말로 받아친다. 프로그램을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감행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사람 하나의 인생까지라니. 영화를 보면서 필자를 비롯한 관객들이 느꼈을 감정은 스크린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트루먼은 직장에 나갈 때를 제외하곤 항상 옷차림이 범상치 않다.ⓒ 패러마운트픽쳐스


"저 뒤엔 뭐가 있는데?"

어린 트루먼의 말에서 그가 가진 탐험가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서른의 트루먼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직장에 출근할 때를 제외하곤 여전히 '어린이 탐험가'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억압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인지, 트루먼이라는 인물의 원래 성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영화의 큰 설정 때문에 잘 비춰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부분은 트루먼의 '남들 몰래하는 행동'이 사실 '남들이 잘 볼 수 있는 클로즈업'으로 생중계된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사견으로 <트루먼 쇼>와 색체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자유의 억압을 느낄 수 있지만, <트루먼 쇼>에서 우리가 느끼는 일종의 공포는 당사자의 무지의 상태와, 그걸 재미로 들여다보고 있을 사람들의 존재일 것이다.

다수의 이면, 영화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쇼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떨까? 필자에게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쇼를 시청하면서 트루먼이 현실세계로 빠져나오기를 원한다. 그리고 트루먼의 탈출과 함께 쇼가 종료되자 곧 아무렇지 않게 채널을 돌린다. 이상한 양가감정이다. 쇼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소비하는 대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트루먼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알려진 바로, 고기 1인분을 생산하기 위해 곡물 22인분을 사료로 사용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고기를 한 끼 먹으면 아프리카 아이들 22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제적십자연맹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지구촌 인구 중 약 20%인 15억 명은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고, 15%인 9억2500만 명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유니세프 광고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끼니 때가 돌아오면 스스럼없이 육류를 찾는다. 감독이 풍자하고 있는 지점과 우리는 여전히 다를 바가 없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트루먼의 탈출 성공을 보고 환호하는 시청자들.ⓒ 패러마운트픽쳐스


깔끔한 흐름, 흐릿한 초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얘기하고자 한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좋다는 전제 하에서 전하는 사견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시스템의 허술함이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토프가 다른 티비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그는 트루먼이 여태까지 진실을 알지 못한 이유가 현실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는 시리우스별의 역을 맡은 조명기가 떨어진다. 이것은 영화를 막 관람하기 시작한 관객들에 주는 윙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어지는 플롯들도 '30년 만에 극적으로 진실을 깨닫게 만든' 장치들이 되지는 못한다.

라디오 주파수에 제작진들의 무전소리를 넣은 것으로 시작해서, 아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깨닫게 되는 계기는 '손가락 꼬기'(거짓말을 하거나 행운을 빌 때 중지를 검지 위로 꼬아 숨기는 서양 습관)로 비롯된다는 점에서 아, 이 프로그램이 30년 만에 초심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시청자들을 비추는 방식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청자들에 대한 비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시청자들이 그저 '쇼는 쇼이고 난 해피엔딩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제작자와 배우들에 대한 이 영화의 입장 또한 모호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대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역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우리 시대의 계급사회를 표현했다면, <트루먼 쇼>는 이 시대의 미디어를, 인권을 담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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