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응답하라 1994'의 방송사고가 안타까운 이유

[하성태의 사이드뷰]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 응답하라 제작진

13.12.21 12:32최종업데이트13.12.21 12:32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응답하라 1994> 18회의 편집이 지연돼 테이프 입고가 예정된 방송 시간보다 늦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긴급 대체 편성이 진행되면서, 방송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고자, 촬영은 물론 마지막 종합 편집의 디테일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작진의 열정과 욕심이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라는 큰 실수로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실수를 거울삼아 더 완성도 높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역대 최악의 '방송사고'다. 그것도 방송사가 사활을 건 인기 절정의 프로그램 방영 중에 터져버렸다. 위의 사과문에는 '대체 편성'이란 표현이 등장했지만, 본방을 시청하던 시청자 중 누구는 어리둥절하기보다 공포감이란 표현을 썼을 만큼 '대형사고'였다.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18회의 방송사고 얘기다. tvN은 20일 방영된 18회 방송 말미 중간 광고에 이어 느닷없이 <코미디 빅리그>의 일부 방송 내용과 <로맨스가 필요해3>의 예고편, 방영 중인 <응사> 18회의 예고편을 12분 넘게 무한 반복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역대급' 방송사고였다. 

<응답하라 1994> 18화 방영 말미, 편집시 걸러내지 못한 카메라맨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 tvN


밀레니엄까지 복원한 '고증 충실' 제작진?

"한 회차 드라마를 2시간 동안 보기는 처음이다." (@dheXXXX)
"아무리 시청률이 잘나와도 그렇지! 시청자가 우습냐?" (@witXXXXXXXX)
"응사가 고증에 충실한 나머지 밀레니엄버그까지 복원했네..." (@sksXXX) 
"tvN이 방송 사고의 신지평을 여는구나. 응사 방송 도중 자사 코미디 프로가 방송되더니 지난 방송 예고에 이미 방송된 분량의 무한 반복, 덕분에 <꽃보다 누나>는 기약없이 밀리고. 막말 발언 연예인은 가차없이 퇴출시키더니 방송 운영은 인터넷 방송 수준." (@2shXXXX)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반응의 일부다. 이날 18회는 IMF 전후를 배경으로 나정(고아라 분)의 취업과 이로 인한 쓰레기(정우 분)와의 이별이 그려져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어 2년 후 일본에서 일시 귀국한 칠봉이(유연석 분)가 나정과 밀레니엄 데이에 재회했다. 

그만큼 18회는 '나정이의 남편은 누구인가'로 대변되는 <응사>의 삼각 로맨스 후반부에 탄력을 주는 기점이 될 수 있었다. 시청률은 물론이요, 시대적 배경을 녹여내는 <응사>만의 강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던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방송사고가 이 모든 걸 날려버렸다.

<응답하라 1994> 18화의 한 장면. 사과 자막이 눈에 띈다. ⓒ tvN


'쓰레기 오빠야'를 연호하는 팬들에게, <응답하라 1994>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을 핑계로 돌리기엔 이미 늦어 보인다. 그동안 <응사> 제작진이 보여준 상황은 기존에 지적받았던 '초치기 촬영'과는 사뭇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90분이라는 특집극 수준의 분량으로 방영됐던 14회를 비롯해 <응사>의 방영시간은 출발은 지키되, 끝은 알 수 없도록 들쭉날쭉하게 편성돼 왔다.

아쉬운 것은 제작진이 이미 전작 <응답하라 1997>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전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전작의 방영 시간은 평균적으로 비슷했고, <응사>와 마찬가지로 사전 제작까진 아니더라도 전반부를 충분히 촬영하고 후반부까지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그러나 <응사>는 신드롬에 가까운 대중적인 인기 때문인지 완성도에 대한 욕심인지, 방영시간에 대한 원칙을 잃어버렸다. 스스로 흔들어 버린 원칙 앞에서, 방송 사고의 이유로 관행적인 제작 환경의 열악함을 들기란 얼마나 궁색한가. 결론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시작한 촬영이 방송사고를 낼 만큼 조여 왔다면, 그 이전에 극의 분량을 조절하는 것이 맞았다.

tvN의 대응도 미흡했다. 시간 역시 10분이나 지연됐다면, 방송사고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어야 했다. 느닷없이 전파를 탄 <코미디 빅리그>의 한 토막은 그 준비 역시 부실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이 같은 방송사고에도 '쓰레기 오빠야'를 기다리는 <응사> 팬들은 tvN과 제작진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 열혈 시청자를 위해서라도, 아니 <응사>를 응원한 많은 시청자를 위해서라도 남은 3회는 차질없이 방영되었으면 한다. 과욕은 금물이다. 이제, 제작진이 응답할 차례다.

응답하라199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