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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정체불명의 감동, 알고보면 불편한 사실들

[하성태의 사이드뷰] 흥행만을 염두에 둔, 기계적 장면의 연속인 이 재난영화의 재앙

13.01.04 16:57최종업데이트13.01.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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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엔 영화 <타워>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타워>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초고층 호화 빌딩에 화재가 난다. 성대한 파티가 벌어지려던 참이다. 소방대원들은 열심히 불을 끄고, 건축가는 그를 도와 건물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 와중에 빌딩 주인인 회장은 쉽사리 자기 재산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여러 인간 군상들이 죽거나 살아남는다. 결국 빌딩 내 물탱크를 폭파시키자 가까스로 화재가 진압된다. 

이건 영화 <타워링>의 기본 줄거리다. 한국영화 <타워>가 아니다. 폴 뉴먼, 스티브 맥퀸 주연의 1977년 작 <타워링> 말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쳐>와 함께 재난영화의 교본이라 칭송받는 이 <타워링>과 말 그대로 '한 끝 차이' 제목인 <타워>. 헌데 이미 이 영화를 관람한 270만(3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관객이 저 <타워링>의 줄거리를 접하고도 <타워>의 그것으로 착각한다면 어쩔 텐가.   

주요 인물구도와 핵심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을 리메이크라 불러야 할지, 창조적 변용이라 불러야 할지는 관객의 판단에 맡겨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왜 2012년의 끝자락에 <타워>가 소환되어야 했는지, 또 이 재난영화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끝나지 않은 그 미련과 열망을 포함해서.  

기계적인, 너무나 기계적인 장면들의 연속

영화는 타워스카이의 시설관리 팀장인 대호(김상경 분)가 유치원에 다닐 만한 외동딸을 홀로 키운다는 것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빌딩 구경을 시켜줄 요량인 대호가 딸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어다닐 것을 예고하는 오프닝이다. 그가 짝사랑해온 것으로 보이는  푸드몰 매니저 윤희(손예진 분)와의 짧은 로맨스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한 축엔 여의도 소방서 소방대장 영기(설경구 분)가 있다. 아내와의 데이트도 제쳐두고 화재 현장에 뛰어든 영기는 하필 이날 발령된 신입 대원까지 챙기는 휴머니스트다. 타워스카이의 소유주(차인표 분)와 국회의원 부부와 교회 장로를 비롯한 입주자들, 화재 직전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려던 주방 직원과 주방장, 총괄 매니저, 영기의 후배 소방대원 등이 <타워>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다.

문제는 이 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능적이라는데 있다. 대호는 딸을 찾아야하는 부성과 가족주의를 대변한다. '연기파' 설경구가 연기하는 영기는 이 화재를 어찌됐건 진압하려는 정의감의 화신으로 화재와의 사투까지 책임져야 한다. 액션과 가족주의, 그리고 눈물을 연상했다면 예상 그대로다.

영화 <타워>의 주인공들. ⓒ CJ엔터테인먼트


안타까운 것은 안성기를 비롯해 박철민, 김인권, 정인기, 이한위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총출동한 조단역 캐릭터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철저히 기능적인데, 심지어 정보 전달과 웃음, 사회비판적 요소, 악역을 위한 악역을 구현하기 위한 로봇들 같을 만큼 진부하고 경직돼 있다(특히 나쁜 것은 김인권이 연기한 후배 소방대원과 이한위가 연기한 교회 장로, 국회의원과 총괄 매니저 등이다).

'기능적'이란 표현이 캐릭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타워>에 관객들이 큰 저항감을 표출하지 않는다면 아마 적절하게 배분된 편집 때문일 공산이 크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에 길들여진 2013년의 관객들은 컴퓨터 그래픽을 위시한 때깔 좋은 화면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는 역시 CJ표 블록버스터인 <7광구>와 <마이웨이> <알투비>의 실패가 입증했다. <타워>는 물론 이 두 영화의 실패를 딛고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된 편집 역시 기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대체로 (<타워링>의 수조탱크 폭파와 옆 건물로의 대피 등을 포함해) 예상 가능한 장면들의 연속을 끌어내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워>가 감동을 끌어내는 지점은 결국 설경구에 의존한 클라이막스 장면이다. 전형적이라 아쉬웠던 캐릭터들을 성실히 소화하려 노력한 손예진, 김상경 등 배우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재난영화의 손쉬운, 유혹의 손길을 거절하지 못한 <타워>

결국 재난영화는 두 갈래로 귀결된다. 먼저 소영웅의 등장을 포함, 재난의 현장을 볼거리로 소비하고선 모든 갈등을 봉합한 뒤 관객으로 하여금 안도감을 부여하는 종류. 또 하나는 그 재앙과도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군상들의 모습에서 휴머니티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되돌아본 뒤 결국 생과 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종류.

35년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타워링>은 의외로 후자에 가깝다(좀 더 최신 영화를 원한다면 2004년 쓰나미 재해를 배경으로 한 <더 임파서블>을 추천한다). 분명 당시에 모든 특수효과와 특수 촬영을 동원한 볼거리에 열광한 관객들이 다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165분에 달하는 이 영화 속에서 건축가와 소방관을 위시한 인물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자 노력하고, 또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냉철함을 유지한 채 뛰어다닌다. 종종 길게 찍기로 응시한 인물들의 삶에 대한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깝게는 <타이타닉>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기실 대부분의 재난 영화의 핵심은 편안한 극장에서 스크린 속 재앙을 맞이한 인간들이 겪는 공포의 대리체험과 살아남은 자의 안도감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이 볼거리 위주의 편집과 소영웅주의와 결합됐을 때, 그 살아남은 자의 안도감은 일종의 보수성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 가족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고, 현재적 소유와 가치를 지켜야만 한다는 그 생존 본위의 정서. 때로는 그 정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타워>에서 희생을 감행하는 이는 소방대장 영기다. 

<타워>에서 소방대장 영기를 연기한 배우 설경구 ⓒ CJ엔터테인먼트


2013년 겨울에 재난영화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설경구가 <해운대>에서 보여주지 못한 장렬함을 연기할 때, 눈물로 화답한 관객들이 원한 것 또한 결국 스펙터클한 화면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감정의 전달이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타워스카이의 두 동을 잇는 구름다리 위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을 제외하고, <타워>는 화마와 거대한 물과 사투를 벌이는 인물들의 감정을 온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장면들을 쉬이 제공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타워>의 인상적인 장면은 살아남은 이들이 마주했던 한강이었다. 특수효과와 세트 촬영으로 점철된 갑갑한 화면에서 벗어나 자연광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면. 시종일관 인간 냄새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 <타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리얼리티'가 풍기는 장면 말이다. 

이와 일맥상통하게 <타워>의 안타까운 점은 <타워>가 김지훈 감독의 전작 <7광구>를 넘어선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 촬영 위에 직조되어있다는 점이다. 웃음과 긴장과 눈물이라는 휘발성 강한 정서와 진부하고 기능적인 캐릭터만이 넘실대는 <타워>는 결론적으로 후반부에 특수효과를 집중시켰던 <해운대>를 기술적으로 뛰어넘었으나 영화적 개성과 매력은 한참이나 떨어지는 영화가 돼버렸다. 

다시 재난영화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면 <타워>의 결말에서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탐욕도,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성에 대한 탐구도, 이를 뛰어넘는 <타워링>의 창조적인 변용이나 새로움은 더더욱 아니다.

마지막 장면이 이를 대변한다. 그저 (연이은 소방대원들의 죽음을 연상시키지도 못한) 주인공의 맹목적인 희생에 반응하는 조건반사적인 눈물에 다름없다. 한국적인 정서라 우길 수 있는 그 무엇. 그 눈물은 극장을 빠져나가면서 느끼는 안도감에 묻혀 버리는 값싼 카타르시스와 다르지 않다. 먹고 살기 무척이나 팍팍해진 이 2013년에 어울리는, 살아남았다는 그 안도감. 

일말의 리얼리티 따위는 컴퓨터 그래픽에 묻어버리고 철저하게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결과물에 매달린 <타워>. 처절하게 익숙함으로 점철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한국적 토착화가 더 이상 영화적 새로움을 수반하지 않고선 (제작비의 회수를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결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워>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그 해답은 2012년을 통과해 2013년을 맞이한 한국사회의 어떤 정서들과 좀 더 결부시켜야만 할 것 같다. 아마도 재앙(그것이 추위가 됐든, 대선 '멘붕'이 됐든, '먹고사니즘'의 혹독한 어려움이 됐든)을 딛고 생존하는 법을 대리 체험코자 하는 2013년 겨울의 시대정신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CJ와 김지훈 감독의 이번 절치부심에 박수를 쳐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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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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