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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이야기인데, 눈물이 난다

영화 속의 노년(127) : <하모니>

10.01.26 19:12최종업데이트10.01.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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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영화 정말 슬프대!"
"오죽하면 시사회 입장권하고 휴대용 휴지를 함께 줄까?"
"실컷 울어 보지요, 뭐."
"안 그래도 나는 요즘 사는 게 힘들어서 그냥 있어도 눈물 나요!"

30대와 40대, 50대가 골고루 섞인 네 명의 시사회 관람 동행들이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나눈 이야기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객석 조명이 다 켜질 때까지 가만 있을 것, 옆자리 관객이 눈물 자국을 수습할 때까지!'라는 뜻이 담긴 한 신문 기사의 경고(?)대로 영화 상영 내내 훌쩍이며 코 푸는 소리가 앞뒤는 물론이고 바로 옆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하모니>는 여자교도소 수감자들이 합창단을 만들게 되면서 겪는 여러 사연들과 그 후 연습과 공연 과정의 우여곡절을 담은 영화다. 죄를 짓게 된 그들의 갖가지 사연과 교도소 안에서 태어난 아기의 운명이 함께 엮이면서 웃음과 울음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 영화 <하모니> 포스터 ⓒ (주) JK FILM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폭력 남편을 해치게 된 '정혜'는 교도소 안에서 아기를 낳아 기른다. 그 방에는 남편과 불륜 관계인 제자를 죽인 전직 음대교수 '문옥'이 있고, 무지막지하게 괴롭히던 사채업자를 죽인 두 딸의 엄마 '화자'가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역시 살인을 한 '연실'이 있고, 거기에 새롭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유미'가 들어온다. 유미는 어릴 적부터 성폭행을 해온 새아버지를 살해하고, 깊은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처지이다.

교도소 안에서 낳은 아기는 18개월이 지나면 바깥으로 내보야 하는 게 법. 정혜 역시 '민우'를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옴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합창단이 성공하면 아기와 함께 특박을 허락해 달라는 청을 하게 되고 어렵사리 허락을 받는다. 그러니 정혜는 무슨 수를 써서 라도 합창단을 성공시켜야만 한다.

정혜는 문옥을 지휘자로, 평소 가까이 지내던 교도관을 반주자로, 거기다가 성악을 전공한 유미를 소프라노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오디션을 거쳐 합창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소한 웃음과 함께 재미를 준다.

세상과 격리된 채 몇 년이고 갇혀 있는 그들은 걸핏하면 서로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운다. 거칠고 사나운 심성이 나타나면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서로의 상처를 알고 그 아픔에 공감하면서 마음을 나누게 된다. 

▲ 영화 <하모니>의 한 장면 합창 지휘를 하는 문옥 ⓒ (주) JK FILM


문옥은 자신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딸 '현주'가 아프다.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서 자신이 '살인자의 딸'로 겪는 고통을 그대로 겪어보라는 딸.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그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지만, 문옥은 모든 재소자들에게 엄마다. 자기가 낳은 딸은 인정하지 않는 엄마를 다른 딸들은 믿고 따른다. 그래도 여전히 가슴은 아프다.

남편과 두 딸을 두고 갇혀 있는 화자는 평소에는 활달하고 입이 거칠지만 두 딸 이야기만 나오면 줄줄 눈물을 쏟아낸다. 유미는 상한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마음을 완강하게 닫은 채 어머니의 면회마저 번번이 거절한다. 뒤돌아서는 어머니의 어깨는 땅 속으로 가라앉아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이런 상처 속에서도 그들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 소통의 힘은 드디어 교도소 밖 가족과의 관계도 조금씩 풀어나간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가능한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의 아픔과 눈물 속에서 공통점을 하나만 뽑아낸다면 나는 '엄마'를 고르겠다.

아들 민우를 입양 보내고 넋이 나가 앓아누운 정혜는 '엄마'를 부르며 운다. 엄마가 엄마를 부르며 운다. 아이들에게 엄마 소리를 들으면서 팔순의 어머니를 여전히 엄마라 부르는 나, 같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도 설명도 필요없으리.

합창단의 성공적인 활동과는 무관하게 사형 집행이 결정되면서 문옥이 떠나야만 한다. 방을 나서는 문옥, 정혜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 소리. 어렵고 힘든 교도소 생활 속에서 위로가 되고 기댈 언덕이 돼주었던 문옥은 분명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사형장으로 떠나 보내며 각방 창살 안쪽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찔레꽃' 합창은 아프고 또 아플 수밖에 없다. '찔레꽃'은 문옥이 민우를 재울 때 불러주곤 하던 노래였다. 엄마는 이렇게 엄마에서 엄마로,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더라도 이어지며 우리들 가슴에 깊숙히 자리잡는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재소자 합창단의 노래 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된 합창제에 출연하기 위한 설정 때문이겠지만 무대 위에서의 합창이 이제까지의 연습에서보다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잘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합창단에 선발된 것이 분명 노래 실력만은 아님이 분명하고, 아무리 피나는 연습을 했다 할지라도 솔로를 할 정도는 아닌 정혜가 큰 무대 위 합창 중 솔로를 하는 것 역시 어색했다. 좀 부족한 노래 실력 그대로 갔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실감나지 않았을까.

▲ 영화 <하모니>의 한 장면 동료 재소자들 앞에서 공연하는 합창단원들 ⓒ (주) JK FILM


영화가 끝나고 30대와 40대, 50대 여자 넷은 울어서 퉁퉁 부은 눈과 빨개진 코를 마주보면서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영화 시작 전 누군가의 말 그대로니까. '우리들 살아가는 일이 슬프고 눈물나는데, 뭐!' 

모처럼 실컷 울어서였을까.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가슴 속은 조금 후련했다.

덧붙이는 글 <하모니 (한국, 2010)> (감독 : 강대규 / 출연 : 김윤진, 나문희, 강예원, 이다희, 장영남, 박준면, 정수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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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CBS 아나운서로 근무하면서 노인 방송을 통해 노년의 삶을 보기 시작했다. 현재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로 '어르신사랑연구모임(http://cafe.daum.net/gerontology)'을 운영하며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노년생활 및 노년준비 관련 현장 강연, 방송 출연, 노년문화 컨설팅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저서 <유 경의 죽음준비학교><마흔에서 아흔까지><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마흔과 일흔이 함께 쓰는 인생 노트(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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