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몸집보다 더 컸던 마음집, 장채근

[야구의 추억 스물 다섯 번째] 그는 무적 타이거즈 시대의 밑바탕, '노지심'

06.12.07 08:55최종업데이트06.12.07 08:55
원고료로 응원
@IMG1@야구는 투수놀음이다. 그러나 그 투수는 포수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훌륭한 한 명의 포수가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훌륭한 투수 하나의 것을 넘어선다. 한국 야구팬들이 그런 포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박찬호라는 투수가 아니었나 싶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라는 전설적 무대에서 그 한 몸으로 국가를 대표하던 90년대 말, 그의 공을 받아내던 마이크 피아자라는 포수는 자기도 모르는 새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 국민의 애증까지 한 몸으로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동양 출신의 애송이 투수를 쥐고 흔드는 독단적인 투수리드도 곱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형편없는 도루 저지능력 때문에 단타 두 개만 맞고도 역전을 허용하는 한 점을 내주어야 할 때 대한민국은 애꿎은 '피자'를 들먹이며 그 포수를 조롱하는 함성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그 부실하던 다저스 타선에 한숨이 새어나오던 공격 때 느닷없는 홈런을 때려내며 재역전 결승점을 뽑아줄 때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그래도 피아자"라는 말을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몇 해 뒤 거물로 떠오른 박찬호의 전담 포수로서 선수 생명을 이어갔던 톰 프린스 같은 '수비형 포수'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포수인 피아자 같은 '공격형 포수'가 결합된 맞춤형 포수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했던 것이다. 덩치크고 성격좋은 봉구와 백두산 @BRI@옛날 야구만화에는 항상 주인공만큼이나 인상적인 포수가 등장했다. 주인공을 항상 이해하고 도와주는, 덩치는 크지만 성격은 온순한 녀석. 그래서 라이벌이 싸움을 걸어올 때마다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는 주인공을 멈춰 세우고 진정시키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상대방의 비열한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 그들은 또한 주인공이 지옥 같은 수련 끝에 개발한 강속구를 시험하는 순간, 그걸 받아 안고 뒤로 열두 바퀴는 굴러 나동그라지며 그 막강함을 증명해주어야 했고, 또 주인공이 날린 홈런이 극적인 결승홈런이 되도록 하기 위해 상대팀과의 점수차를 넉 점 이하로 좁혀놓는 만회 홈런을 날려주는 한 방을 가져야 했다. 때로는 상대방 에이스가 개발한, 때려내려면 그 가공할 회전력 때문에 방망이를 쥔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팔꿈치 관절이 녹아나는 마구를 공략하다가 병원에 실려가며 주인공의 투지에 불을 붙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도 했다. 독고탁의 친구 봉구, 그리고 오혜성(까치)의 친구 백두산이 그랬다. 이따금 팀 전체가 패배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거나, 혹은 기막힌 주인공의 호수비로 반전의 찬스를 잡았을 때 그라운드에 나가있는 여덟 명의 동료 선수들을 향해 '가자, 가자, 파이팅'을 선창하며 포효하는 것도 그들이었고, 경기를 지휘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노감독을 대신해 팀을 지휘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포수는 그렇게 만화나 영화에서 투수 다음으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의 것이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포수 그러나 포수는 경기장에서 가장 힘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10kg쯤 나가는 보호 장비를 온 몸에 두른 채 한 경기에 200번 가까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투수와 함께 볼 배합을 짜내고 의논하느라 타자에 따라 경기 내내 머리를 굴려대야 하고, 시속 150km짜리 강속구로부터 종으로 횡으로 춤추는 각종 변화구, 그리고 그것이 타자의 배트 한 끝을 스치고 갑자기 꺾여 들어오는 파울팁까지, 글러브로 안 되면 몸으로라도 막아내느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것이 포수의 일이다. 그러다가 상대팀 주자가 아슬아슬하게 홈으로 파고드는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미식축구선수처럼 머리와 어깨로 돌진하는 상대 주자의 몸마저 자기 몸으로 맞서 '블로킹' 해내야 한다. 그래서 온몸에 멍이 가실 날 없는 것은 일상이고, 몇 해에 한 번쯤 수술대에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 포수의 인생이다. 그래서 어린 학생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포지션이 포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포수도 해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짜릿한 승리의 순간이다. 9회말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에서 투수가 던진 마지막 한 개의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히고, 곧이어 주심의 요란한 '스트라이크' 함성이 터지면 결정구를 품은 미트를 하늘 높이 치켜든 채 마운드로 달려 나가 투수와 부서질 듯 포옹하는 그 순간, 승리가 주는 희열의 절반은 그대로 포수의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 프로야구사에서 가장 행복했던 포수는 장채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만수에서 김동기를 거쳐 김동수와 박경완으로, 다시 오늘날 홍성흔과 진갑용으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장채근보다 나은 능력치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장채근 만큼 여러 번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투수를 향해 달리던 그 @IMG2@장채근은 선수로서 6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그 가운데 3번은 직접 포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투수를 향해 내달리는 감격을 독점했다. 게다가 우승컵의 후광 아래 88년과 91, 92년, 세 번이나 황금장갑을 끼었고 91년에는 한국시리즈 MVP까지 올랐다. 그래서 그는 우리 야구사에서 존재감이 큰 포수 중 하나다. 사실 기록으로 남은 그의 능력치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3할2푼5리인 그의 통산 도루 저지율은 이만수와 박경완을 비롯해서 이름을 견줄 만한 대부분의 주전급 포수에 뒤처지는 것이며, 두세 시즌 반짝 했던 홈런포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작 2할 3푼에도 못 미치는 통산타율은 '공수겸비'라는 명성이 어색할 지경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장채근의 능력 자체가 아니라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일원일 수 있었던 행운이 더 컸다고 말하기도 한다. '역대 최고의 포수'를 논할 때 늘 한 발 뒤처지는 이유 또한 그것이다. 그러나 포수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인 '투수리드'에 있어서만큼은 장채근이 역대 최고라는 평을 듣는다. 물론 '투수리드능력'은 수치화되어 객관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포수의 '리드'와 투수의 '구위'중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딱히 구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투수의 주관적인 평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들이 잘하면 결국 빛나는 것이 감독이듯, 투수가 잘하면 빛나는 것이 포수라는 것 역시 딱히 틀리지는 않는 통념이다. 그래서 항상 장채근의 이름에는 선동열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보급 투수와 패전처리 투수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채근에게는 독특한 장점이 있었다. 바로 그가 받는 공을 던지는 투수가 '국보급' 투수건 아니면 급작스러운 부상투수 대신 바로 전날 2군에서 불려 올라온 패전처리투수건 차별을 두지 않고 존중하고 의논했다는 점이다. 그는 볼 배합에 관해 선동열에게도 절반 정도의 의견을 냈고, 신인 후보투수에게도 절반 정도의 의견을 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투수의 몫으로 존중했다. 절대, 투수의 무능함과 예민함에 맞부딪히지 않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개성강한 젊은 투수들이 주눅들지 않고 공을 뿌렸고, 약점을 가리느라 강점을 포기하는 대신 강점을 극대화해 약점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예컨대 타자들마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불안한 제구력에 성격 강하고 술 좋아하던 김정수가 그랬고, 보는 이들 웃음이나 사던 투박한 투구폼의 연습생 출신 송유석이 그랬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이대진이 성장했고 선동열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말하자면 장채근의 푸근한 리드는 타이거즈 투수들이 맹수로 성장하는 요람이었던 것이다. 10승대 투수를 동시에 6명이나 배출했던 93년도의 진기록은 누구보다도 장채근의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투수들이란 예민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다. 퍼펙트를 구가하던 완벽한 구위의 투수가 주심의 애매한 볼 판정 하나에 흔들려 순식간에 패전투수로 전락하기도 하고, 타자의 눈빛 하나에 기가 질려 팔의 궤적을 잃고 폭투를 던지기도 한다. 그런 투수에게 한 경기 내내 눈빛을 마주하며 호흡을 맞추는 포수가 가지는 심리적 결정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투수리드란 볼배합에 관한 두뇌싸움 이전에, 투수를 안정시키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그를 노지심으로 길러낸 것은 설움의 세월 @IMG4@그 자신 대학 시절까지는 꽤 인정받던 '엘리트'였음에도 프로에서는 한 차원 다른 '미트질'을 선보였던 재일교포 포수 김무종에 밀려 오랜 후보시절을 지냈던 장채근이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 한희민이 뛰는 빙그레 이글스로 보내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던 세월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바닥에서 눈물젖은 빵을 씹으며 기량을 쌓아올린 세월에 더해 후보 선수의 설움까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넓이를 키울 수 있었기에 그는 최고 포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채근의 별명은 '노지심'이었다. 10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에 코믹할 정도로 전형적인 '산적형' 얼굴. 그래서 선동열을 비롯한 타이거즈 투수들이 흔히 장채근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는 '워낙 덩치가 큰 포수가 앉아있으니 마음이 편했다'는 것이었다. 일단 공이 뒤로 빠질 걱정이 적고, 또 워낙 '과녁'이 크니 적중할 것 같은 안정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100kg의 몸집이 지닌 물리적 부피 이전에 그 눈빛에 실려 있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넓이였다. 그래서 영 곤란한 순간에 마스크를 벗고 마운드에 올라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이냐'는 식으로 씩 웃는 얼굴을 보자면 나는 항상 '봉구'와 '백두산'을 떠올렸다. 교체인원을 빼고도 10명으로 구성된 팀간의 대결에서 한 선수의 압도적 활약은 보기보다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10명이 화합하고 분발하는 것이다. 더구나 투수와 야수의 미세한 심리적 흔들림 하나가 삼진과 홈런, 적시타와 병살타를 가르는 야구라는 경기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눈에 띄고 기록에 남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다. 그러나 강팀을 만드는 것은 그 이전에 화합과 분발을 끌어내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다. 바로 그 역할을 해준 장채근이 있었기에 비로소 타이거즈는 최강의 팀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CBS라디오 표준FM (98.1MHz) '파워스포츠'(월~토 21:05 - 21:30)의 '(김은식의) 야구의 추억' 코너(토)에서도 방송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연재

김은식의 <야구의 추억>

추천 연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