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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띈 잔인미학 <게임의 법칙>

[전단지로 보는 영화②] 박중훈 이경영 주연, 전화박스신 압권

05.05.25 13:22최종업데이트05.05.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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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는 한국 영화의 암흑기였다. "한국영화는 돈 주고 안 봐"란 말이 흔하게 나오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 중에서 골랐고, 한국영화는 뒷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빈정거림을 무색하게 했던 영화 중 하나가 <게임의 법칙>(감독 장현수, 1994)이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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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는 안 본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도 "그 영화는 예외"라고 논외로 할 정도였다. 사람들 내에선 곧바로 박중훈이 전화박스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1987년 장국영이 <영웅본색2>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에 빗대기도 하고, 더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97년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가 전화박스에서 우는 명연기를 보일 때도 <게임의 법칙>을 떠올렸다. 그만큼 당시 받은 느낌은 강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영화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할리우드 영화는 극장에서, 한국영화는 비디오로'라는 암묵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94년 <게임의 법칙>은 서울개봉관 기준 8위를 기록했지만 관객수는 13만여명에 불과했다.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봤다.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할리우드영화는 비디오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임의 법칙>도 단연 놓칠 수 없었던 영화. 당시 제일 잘 나가는 배우였던 이경영과 박중훈이 출연해 일단 배우면에서 신뢰가 갔다. 폭력적이며 거친 질감을 주는 영화 포스터와 줄거리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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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단지엔 전체 줄거리를 상징하는 한 컷의 장면이 등장한다. 박중훈이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진 가운데 옆엔 전화기 수화기가 늘어져 있다. 방향을 잃은 채 공허하게 보이는 박중훈의 눈빛은 그 자체로 모든 걸 말해준다.

박중훈이 맡은 배역은 용대. 인물소개는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방은 지하다. 길가로 난 작은 창으로 가끔 여자들의 벗은 다리가 보인다. 14인치 중고 비디오로 '주윤발'을 보고 또 보고…. 하지만, 세차장에서 남의 자동차나 닦는 내 구겨진 인생은 언제쯤 저렇게 확 펴질까. 주먹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있는데….'

또다른 주인공인 이경영이 맡은 배역은 만수. 사기로 돈을 벌고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생활을 반복한다.

'삼류 카바레 제비가 내 직업이다! 장바구니 든 배 나온 아줌마들이 내 먹이다. 카바레, 냄새나는 여관, 그리고 담배연기 가득한 도박판으로 스며드는 게 나의 하루 일과다. 언젠가 빅판에서 위너가 되는 게 내 꿈이다. 그래서, 춤추고 몸팔아서 번 돈으로 나는 오늘도 포카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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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모습은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도철 역)과 이정재(홍기 역)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주먹은 강하지만 단순한 도철과 그를 등치며 살아가는 홍기. 우성의 여자 미미(한고은)처럼 태숙(오연수)이 나오는 3인 구도도 비슷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당하는 도철과 달리 '게임의 법칙'에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관계에 가깝다. 만수는 용대에게 사기치지만 그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잃는다. 우직하게 보이는 용대는 순진한 도철과 달리 애인인 태숙을 포주에게 팔아먹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지방 세차장에서 일하는 용대는 영웅이 되고 싶어 주먹세계 대부 유광천을 찾아 서울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도중 만수에게 돈을 몽땅 털린다. 그래도 우연한 기회에 유광천을 구하고 그의 수하가 된다. 용대에게 맡겨진 첫번째 임무는 유광천의 돈을 떼어먹고 달아난 만수를 잡아들이는 일.

결국 용대를 잡은 만수는 점차 지위가 올라간다. 유광천에게 다리 한쪽을 잘린 만수는 용대에게 책임지라며 주위를 빙빙 맴돌며 애증의 관계가 이어진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이 <게임의 법칙>에 열광한 이유는 진한 비장미와 함께 선보인 특유의 잔인 미학. 그리고 주인공이 죽는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유광천을 밀명을 받아 조직을 위협하는 김검사를 암살한 용대는 결국 조직에 의해 살해된다. 한 사람은 살해되고 또 한 사람은 다리가 없는 불구…. 게다가 또 한 사람은 애인에 의해 술집에 팔린 호스테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비극적인 결말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극중에선 유광천에게 선물로 바쳐지는 반대파들의 손가락과 입으로 들어가 볼을 찢고 얼굴을 관통해 나온 포크, 얼굴에 세로로 길게 그어진 칼자국 등 잔인한 장면도 심심찮게 나왔다.

전단지엔 <게임의 법칙>을 '폭력적이다' '거칠다' '액티브하다' 등 강한 느낌을 주는 단어들로 수식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모든 갱 영화와 선을 긋고 있다는 점. '기존의 깡패 이야기가 50∼60년대 주먹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가 대부분' '홍콩이나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폭력,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닌 철저히 남의 것' '김두한 시라소니는 더 이상 우리 시대 우상이 아니다'라는 말로 전혀 새로운 갱 영화임을 강조했다.

전단지엔 '특수분장'에 대해 별도로 소개돼 있다. 특수분장을 맡은 팀은 미국 버몬 특수분장학교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해외유학파 출신의 '빌드업'(문경선, 이애경)팀. 이들의 주 전공은 폼(Form). '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얼굴을 석고로 직접 떠서 나이든 모습이나 주름살을 재현(< E.T >의 분장)해내거나 신체 중 일부분만을 변형시키는 기술(<배트맨2>의 펭귄코)'

당시 출연진 중엔 <장군의아들>에서 모습을 보였던 이일재를 비롯, 폭력 영화 전문 배우 장세진, <라이방> <남자의 향기> <누구나 비밀은 있다> 등 장현수 감독 단골 출연 배우 김해곤, <애마부인> 시리즈로 유명했던 김부선 등이 눈길을 끈다. 극본은 장현수 감독과 강제규 감독이 공동 작업했고, <파이란> <역도산>을 만든 송해성 감독이 당시 조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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