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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망할 거라고? '바빌론'을 보라

[미리보는 영화] <바빌론>

23.01.27 17:49최종업데이트23.01.2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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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롯데엔

가장 화려했지만 그만큼 가장 타락했던 도시 바빌론. 성경에서 이 도시는 온갖 죄악의 상징이자 타락한 인간상을 투사한 곳으로 묘사된다. 이 도시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 <바빌론>이 영화 그 자체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 해보인다.
 
적확히 말하면 <바빌론>은 영화 중에서도 할리우드, 즉 미국 상업 영화 태동기와 부흥기를 소재로 한다. 상대적으로 예술 및 실험 정신이 빛났던 유럽에 비해 고도의 대중문화 산업 영역으로 영화를 끌어오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유성 영화의 탄생과 발전기인 1950년대까지가 주요 시대 배경이다.
 
영화는 무성 영화 시대 톱스타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와 이제 막 그들을 보며 영화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청년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의 시선을 오간다. 그리고 그 틈을 악바리 근성으로 영화계에 발 딛기 시작한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의 시선으로 채운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듯 할리우드, 즉 미국 LA의 밤은 환락과 쾌락의 무대였다. 마약과 섹스 파티, 눈의 초점을 잃은 수많은 영화계 거물들이 마치 배설의 욕구를 충족하듯 뛰어노는 장면은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완전 상업화 된 현대 대중 영화의 이면을 풍자한다. 이에 비해 광활한 평원에 세워진 세트장을 정신없이 오가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모습은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중독성 강한 마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요 사건은 신구의 변화, 그리고 스타 배우의 탄생과 타락과 맞물려 있다. 늘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카메라 앞에선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곤 했던 잭 콘래드는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한물간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대신 그의 곁에서 잡무를 보던 매니는 특유의 창의력을 인정받으며 신진 제작자로 거듭난다.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롯데엔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롯데엔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를 사랑한 사람들의 성장기로 볼 수 있지만 넬리 라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영화적 주제가 확장된다. 시골 빈민가 출신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예쁜 얼굴과 몸, 그리고 타고난 감정 표현력 뿐이던 넬리 라로이는 우연한 기회로 무성 영화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다. 그를 보고 감탄한 제작자들로 인해 돌연 스타로 급성장한 넬리 라로이는 빠르게 얻은 명성과 부에 취한 채 도박과 마약에 손을 대고 만다.
 
넬리 라로이를 만난 직후 사랑에 빠진 매니는 거물 제작자가 된 후에도 어떻게든 그녀를 챙기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한 남자의 순정이 한 여성의 몰이해와 이기심으로 배반당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말하면서 동시에 두 남녀의 어긋난 마음, 그리고 산업화된 대중 영화의 어둔 이면을 폭로하는 복잡다단한 주제 의식을 품고 있다. 한때의 추억팔이나 회고록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곳곳에 배치하는 영리함이 빛난다.
 
우리에겐 <위플래쉬> <라라랜드>로 잘 알려진 데이미언 셔젤이 연출을 맡았고, 그와 모든 장편 영화에 힘을 보탠 저스틴 허위츠가 음악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라라랜드>에서 선보인 여러 노래와 그 분위기가 비슷한 노래들이 등장한다. 경쾌한 리듬이 강조된 피아노 선율, 스윙 요소와 강렬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강조된 재즈 음악은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18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일부 관객 입장에선 부담으로 다가올 법하다.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여러 블록버스터 요소가 있지만, 온전히 영화의 모든 것을 즐기기엔 분량이 많이 길다. 영화 그 자체에 큰 애정을 지닌 감독의 고집스러운 선택이겠지만, 편집의 묘미가 또 하나의 미덕인 현대 상업 영화 관점에선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극장을 나서고 나면 아마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 입장에선 영화의 종속성, 빠르게 변하는 요즘 콘텐츠 업계의 흐름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무성영화 시대에도 유성영화 태동기에도 늘 영화의 위기라는 말이 등장했고, 보란 듯 영화는 계속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영화 예찬론자들이 펼치는 이 블랙 코미디의 등장이 일단은 반갑다.
 
한줄평: 풍자와 헌사를 오가는 감독의 명민함
평점: ★★★★(4/5)

 
영화 <바빌론> 관련 정보
감독 및 각본: 데이미언 셔젤
출연: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디에고 칼바, 진 스마트, 조반 아데포, 리 준 리, 토비 맥과이어
수입 및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188분
북미개봉: 2022년 12월 23일
국내개봉: 2023년 2월 1일
바빌론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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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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