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 할리퀸의 대사 번역 문제로 SNS 상에서 논란이 일었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 할리퀸의 대사 번역 문제로 SNS 상에서 논란이 일었다. ⓒ 워더브러더스코리아(주)


한국 날짜로 8월 4일 개봉 예정인 DC 코믹스의 동명원작을 영화화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번역이 트위터를 타고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해당 번역가를 보이콧 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this guy = 이 오빠?

사건의 발단은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3차 예고편이었다. 문제적인 번역이라고 지적된 부분은 할리퀸(마고 로비 역) 의 대사인데, "I love this guy"를 "이 오빠 맘에 들어"로 번역한 것. 사실 이 자체로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작품의 맥락상 할리퀸은 DC 코믹스의 캐릭터들 중에 가장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으며 퇴폐적이며 자유분방함이 매력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그런 성격의 캐릭터를 단숨에 번역 한 번으로 고분고분하고 공손한 여성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이 영화를 기다리던 팬들의 분노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또 다른 부분이 지적받기도 했다. "내가 좀 그런 스타일이야. 좀 봐주면 안돼요? ("I'm known to be quite vexing. I'm just forewarning you.") 사전적 정의상 vex는 '성가시게 하다', forewarn은 '미리'의 뜻을 가진다. 번역하자면 "내가 좀 사람 짜증나게 하는 스타일이야. 그냥 너한테 미리 경고하는 거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까칠하기 그지없는 주체적 캐릭터인 할리퀸이 '좀 봐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광경이라니. 캐릭터의 성격상 자신이 언제 상대방을 짜증나게 할지 모르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번역을 해도 되는 사회

문제가 된 번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번역가는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007 스카이폴>에서는 'sort of thing'을 된장녀로 번역한다던지,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에서는 'I was gonna ask....'를 '그거 할래?'로 번역을 했다던지 (원래는 '내가 하려던 말은....'이 맞다) 하는 수많은 오역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번역가 개인의 자질 부족을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은 어쩌면 번역가의 자질이 없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역 투성이의 번역을 내놓으면 영화 팬들이 '제발 그에게 일 거리를 주지 않았으면'하는 말까지 할까.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007 스카이폴>의 문제적 번역에서 한국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나타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의 성격과 영화의 맥락을 반영하여 번역을 해야함을 고려할 때,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을 고분고분한 여성으로 만들어 버리는 번역의 만행(?)은 번역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여성의 주체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여성들에게 '기 센 여자구나'라고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기가 세다'라는 표현이 남자한테보다 여자에게 더 많이 쓰이고,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님을 고려하면 할리퀸의 주체성과 자유분방함은 번역가에게 단지 기가 세 보이는 것으로만 보였던 것이 아닐까.

<007 스카이폴>의 '된장녀' 번역은 그런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왜 여성이 자기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소비하는 행동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 앞에 '된장녀'라는 사려깊지 못한 번역은 번역가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성혐오적인 발언에 스스럼없는 사회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일련의 논란들은 '잘 번역했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왜 그렇게 번역했느냐' 더 나아가서 '이것이 번역가 개인의 무능력이냐'를 물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냥 그 사람 한명에게 번역을 맡기지 않으면 끝날 문제가 아님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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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수어사이드_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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