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교야구의 '투고타저'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올해 고교야구에서는 노히트노런이 3번(정식대회 2번, 지역예선 1번)이나 나왔다. 15년 만에 나온 만큼 흔한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진기록에 마냥 고무되긴 이르다. 잦은 노히트노런은 고교야구 팀 간 전력이 더욱 불균형해지고 있다는 것과, 2004년부터 사용한 나무 배트가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도 이러한 우려가 없진 않았다. 전국대회에서 이름을 알린 몇몇 수준급 투수들 치고 한 경기에서 10개 이상의 삼진을 기록하지 않은 투수가 없었다. 투수들의 기량을 나무 배트를 사용하는 야수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무 배트 사용으로 무엇을 얻었나

 장충고의 이두환은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홈런 4개를 몰아치며 팀을 두번 우승으로 이끈 고교야구 최고의 타자였다.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2군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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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대한야구협회는 대학야구(2001년부터 사용)에 이어 고교야구도 나무 배트를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청소년급 대회에 나무 배트를 전격 도입하기로 하면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조치였다.

물론 성과는 있었다. 지난해 쿠바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6년 만의 감격적인 우승으로 한국야구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고교야구 선수들이 이렇게 빠르게 나무 배트에 적응한 것은 스스로의 성실성이 빚어낸 결과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적응을 마친 선수들이 늘어났다. 간간이 대회에서 홈런을 때리는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나무 배트에 대한 적응이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관하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고졸 야수들은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심지어는 대졸 야수들도 고전하고 있다. 단순히 나무 배트의 적응이 프로에서의 경쟁력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나무 배트 사용의 악영향

고교야구의 나무 배트 사용은 타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기본기를 배우고 익혀 나가야 하는 야수들은 타격의 '기교'를 배우느라 바쁘다. 그 결과 고교야구의 수비와 조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프로야구도 이런 추세에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프로야구는 11년 만의 흥행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었지만 숱하게 벌어지는 실책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해법이 없다. 젊은 야수들의 기본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책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시즌 초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의미있는 자료를 내놓았다. 34경기가 치러진 시점에서 지난해와의 기록을 비교하는 자료였다. 가장 돋보인 것은 단연 실책수. 지난해 49개의 실책이 나오는 동안 올해는 무려 70개가 나오며 21%의 실책 증가현상을 보였다. 그리고 21일 현재 243경기가 열린 가운데 벌어진 실책은 무려 303개나 된다.

프로는 기본기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기본기가 다져져야 한다. 그러나 기본기를 꽃피워야 할 고교야구에서 나무 배트 사용으로 투고타저 현상이 나타나고, 타격에 대한 부담을 준다면 야수들의 기본기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무엇보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일본의 고교야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수준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선수들의 기본기다. 현재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쓰고 있다.

알루미늄 배트 회귀, 고려해봐야 할 시점

 중학야구는 여전히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KIA 타이거즈기 중학야구에 출장했던 화순중 김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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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교야구에서는 선수들이 앞 다투어 투수를 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중 상당수는 야수로서의 재능도 뛰어난 선수들이다. 투수가 프로 지명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순번으로 많은 몸값을 받을 수 있고, 출전 기회를 잡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신인 2차 지명에서 상위 10순위 안에 든 선수중 단 두 명만 야수였고(LG·박용근, 두산·이두환) 모두 투수였다. 2006년에도 8개 구단 중 현대를 제외한 7개 구단이 1순위에서 모두 투수를 지명했다(현대는 포수 강정호 지명).

설상가상으로 나무 배트의 사용은 이런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야수들은 나무 배트의 적응을 거의 마쳤지만 장타력의 감소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장타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상대적으로 장타가 줄어든 투수들은 상당한 '이익'을 보고 있다. 투고타저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토양에서 뛰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나무 배트는 고교야구 선수단의 운영비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경쟁력을 갖춘 국내산 나무 배트는 10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문제는 나무 배트가 가진 '속성'이다.

나무 배트는 부러지거나 금이 가기만 해도 사용할 수 없는 소모품이다. 때문에 실전과 연습을 통해 나무 배트가 부러질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야구선수 학부모들의 몫이 된다. 반면 알루미늄 배트는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무 배트 때문에 열악한 환경의 팀들은 운영 문제로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이 넉넉한 팀들도 숱하게 부러지는 나무 배트에 부담이 가긴 마찬가지다.

만약 야구 선수들의 학부모가 현재와 같이 선수 뒷바라지를 위한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면, 야구 선수들은 잠정적으로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야구계가 입버릇처럼 부르짖는 '저변확대'도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나무 배트의 사용은 사실 행정편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대회에 대한 경기력을 높인다고는 하지만 열악하기 짝이 없는 야구 저변에 더욱 어려움을 가져다 준 조치가 바로 나무 배트의 사용이다. 야구선수의 학부모들이 한 달에 수십만원의 운영비를 지출한다는 사실을 감안했다면 쉽게 이런 조치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나무 배트를 도입해서 선수들의 기본기는 떨어지고 있으며 투고타저가 조장되고 있다. 여파는 고교야구에 그치지 않고 최고 수준의 리그인 프로야구까지 미치고 있다. 실질적인 경기력 향상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나무 배트 도입의 부작용에 대한 대처를 신중히 고려해 볼 시점이다. 그 해법이 신속한 '알루미늄 배트'로의 회귀라면 더욱 좋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prealist
투고타저 고교야구 나무배트 알루미늄배트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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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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