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르는 이야기> 포스터 이미지
㈜마노엔터테인먼트
1895년 공식적인 최초의 영화(뤼미에르 형제의 '단편영화 모음집')가 탄생한 이후, 영화는 12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형태에 고착되지 않고 가파른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초의 영화는 단순히 실제를 기록하는 짧은 클립에 불과했지만 10년도 되지 않아 스토리텔링을 갖추게 되고, 무성영화는 곧이어 '토키'(유성영화)로, 흑백 화면은 컬러 화면으로 교체된다.
영상을 바탕으로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시각효과로 다수의 관객을 동시에 공략하는 영화 매체의 특성 덕분에 영화는 '대중예술'인 동시에 산업에 속하는 문화 장르가 되었다. 상업성이 멍에나 굴레 같지만, 그 덕분에 단시간에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다채로운 단면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극지방부터 열대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디에서나 영화를 만들고 즐긴다. 물론 대부분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할애되긴 해도, 세계에는 측량하기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형태와 방법론으로 차별화된 영화가 넘쳐난다.
그리고 영화의 위기를 논하는 와중에도 후발 주자는 여전히 급격한 변화에 놓여있다. 21세기 영화 실험의 핵심이라면 역시 텍스트 중심의 서사 구조에서 영상 문법으로만 구현 가능한 형태적 도전일 테다. 대중적으로는 낯설기 그지없지만, 영화제 같은 쇼케이스 공간들에서 목격되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영화들은 화산이 끊임없이 분출하는 것처럼 용트림을 치고 있다. 영화는 여전히 완성된 형태가 아닐뿐더러, 어쩌면 세상이 끝나거나 장르 자체가 소멸할 때까지 계속 진화와 생성을 거듭할 것만 같다.
종종 국제영화제들이 자신 넘치게 소개하는 21세기 새로운 영화 실험의 최전선을 목격하며 충격과 흥분에 빠지곤 한다. 반면에 국내 신진 감독들이 선보이는 관성화된 형태 영화들에 실망하는 반대급부도 자주 겪는다. 실험보다는 관습에 얽매이거나, 세계관과 시야의 한계를 노출하는 작업을 경험할 때마다, 이러다 넷플릭스에 팔기 위한 양산형 작업만 남는 것은 아닌가 염려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근심과 우려가 굳어지려 할 때마다 뭐라 형언하기 힘든 독특한 결의 영화들이 목격되곤 한다. 물론 제대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 실험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남들이 하지 않은 것,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도전은 늘 신선한 자극으로 작동한다. 촬영 감독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양근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모르는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우리가 근래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풍경과 모호한 전개로 가득 차 있다.
현실의 답답함을 꿈의 세계로 돌파하려는 모험담
두 명의 젊은 남자와 여자가 연이어 등장한다. '기은'(정하담 분)과 '기언'(김대건 분)은 현실에서 무기력하다. 그들의 일상은 미래를 향한 꿈과 전망 따위는 찾을 수 없는, 그저 시간의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들 또래의 청년 중 적지 않은 숫자가 비슷한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두 사람의 경우는 확연히 궤가 다르다. 이들은 척추질환을 앓고 있기에 병원과 집을 오가는 게 사실상 생활의 전부다. 간신히 좁은 실내를 힘겹게 이동하거나 병원 행차 정도만 가능할 뿐, 이들에게 취업이나 사회활동은 요원해 보인다.
두 사람은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지낸다. 척추의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병원에선 이들에게 진통제 처방을 반복한다. 처방 약의 부작용 때문에 이들은 몽롱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무기력한 삶에서 도무지 벗어날 방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둘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의 공간이 있다. 바로 '꿈'이라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어차피 다르게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진통제에 취하듯 꿈의 세계로 진입한 그들은 현실에서 그들이 희구하던 것들을 꿈에서 풀어낸다. 그 안에서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활짝 웃거나 춤을 춘다. 꿈은 수면 중에도 뇌 일부가 활동을 멈추지 않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현실의 반영이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셈이다. 기은과 기언의 답답한 삶을 확인한 관객이라면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우울한 현실과 극적 대비를 선보이는 꿈 속 총천연색의 역동적인 풍경을 흐뭇하게, 하지만 서글프게 바라볼 법하다.
하지만 그들의 무의식 세계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기점'이란 이름으로 꿈속에서 화가가 된 기언은 작업에 매진하고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한다. 전시회에 가득 진열된 기점의 작업은 기이하게도 '노란색'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풀어내는 중에 화가를 취재하러 유튜버가 현장을 방문한다. 취재하러 온 유튜버 '기지'는 기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기지는 기점이 금기시하는 노란색 니트를 차려입은 데다 기점에게 노란색 꽃을 건네준다. 기지의 모자 위에 달린 장식 또한 노란색이다. 풀이하기 쉽지 않은 상징 표현이 거듭 이어지지만, 기지의 등장 이후 화면에 퍼지듯 확장되는 노란색은 기점이 잃어버린 색깔임은 분명해 보인다. 현실의 기언이 꿈에서 활동하는 화가 기점에게 기은의 형체를 한 유튜버 기지가 노란색을 되돌려주는 행위다.
이번에는 기언이 치과병원에 환자 '기수'로 등장한다. 기수의 구강 안에 부자연스러운 무엇인가가 돋아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치과의 모든 것이 형상화된 것 같은 병원 진료실 내에서 의사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이물감을 제거하는 존재도 또 다른 기은이다. 다음 장면에서 기은과 기언은 데이트를 즐기며 연인으로 발전한다. 둘은 꿈속에서 결혼하고 부부 생활을 이어 간다. 이제 기언은 아빠 '기태'로, 기은은 엄마 '기윤'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둘은 토끼 같은 아들과 딸을 낳고 교외로 소풍을 가 캠핑 요리도 즐기고 낚시도 해본다. 보통의 가족들처럼 다투기도 하고 실쭉하기도 한다. 남들에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평범한' 삶이 꿈에서야 완성된 것이다.
무의식의 왕국에서 그들이 쟁취해 낼 수 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