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빈, 빠른 발로 득점 3월 2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롯데 7회초 1사 1루 9번 박승욱의 안타 때 1루 대주자 황성빈이 3루까지 진루한 뒤 볼이 빠진 틈을 타 홈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 황성빈, 빠른 발로 득점 3월 2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롯데 7회초 1사 1루 9번 박승욱의 안타 때 1루 대주자 황성빈이 3루까지 진루한 뒤 볼이 빠진 틈을 타 홈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KBO리그 역사상 단기간에 이토록 극과 극의 평가를 넘나들며 드라마틱하게 주목받은 선수가 또 있었을까. 롯데 자이언츠의 '신형 엔진' 황성빈이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다행히 이번에는 구설수가 아니라 온전히 야구 실력만으로서였다.
 
4월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롯데와 KT 위즈와의 '더블헤더'시리즈에서는 롯데가 1차전에서 9-9 무승부, 2차전에서 7-5로 승리를 거두며 1승 1승 1무로 우위를 점했다. 롯데는 최근 4경기에서 3승 1무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시즌 성적 7승 1무 16패로 탈꼴찌에 성공했다. 반면 KT는 7승 1무 18패를 기록하며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사실상 '황성빈 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하루였다. 황성빈은 더블헤더 1차전에서 3안타 2홈런 3타점, 2차전에서도 2안타 1홈런 3타점의 맹타를 터뜨리며 하루에만 3홈런 6타점을 몰아쳤다.
 
1차전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황성빈은 1회말 첫 타석부터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팀이 2-3으로 끌려가던 5회에도 다시 솔로 홈런을 터트리며 자신의 프로 첫 멀티홈런 경기를 달성했다. 자신감을 얻은 황성빈은 2차전에서도 같은 타순과 포지션에 선발출장하여 5회말 1사 1루에서 KT 엄상백의 초구를 통타,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터뜨렸다. 이는 팀이 5-2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는 결정적인 득점이기도 했다.
 
꼴찌 수렁에서 팀 건져낸 황성빈

더 놀라운 사실은 황성빈이 프로 통산 홈런이 1개에 그칠 만큼 장타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의 선수였다는 것이다. 황성빈은 아마추어인 소래고와 경남대 재학 시절에도 홈런을 때려낸 적이 거의 없었던 전형적인 '똑딱이' 교타자였다.
 
심지어 프로 진출 이후 롯데에서는 올시즌 이전까지만 해도 주전이 아닌 대타와 대주자 요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주일 사이에 혜성처럼 약진하여 팀을 꼴찌 수렁에서 건져낸 '복덩이'로 거듭난 것이다.
 
황성빈은 KBO리그에서 최근 '이슈메이커'로 주목받고 있는 선수다. 2020년 2차 5라운드(전체 44번)로 롯데에 지명되어 2022년부터 1군 무대에서 출전기회를 잡기 시작한 황성빈은, 김태형 신임감독이 부임한 이후 꾸준히 중용되면서 최근에는 주전급으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황성빈의 이름이 정작 야구팬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된 결정적인 계기는, '비매너 플레이 논란'을 둘러싼 구설수였다. 황성빈은 지난 시즌에는 타격 이후 '배트투척' 논란을 일으켜 도마에 오르기도 했으며, 올시즌 초반에는 상대투수들과의 연이은 신경전을 유발하며 부정적인 의미에서 야구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지난 3월 26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황성빈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하는 사건이 터진다. 당시 1루로 출루한 황성빈은 상대 선발인 좌완 양현종을 상대로 도루를 시도할 듯 말 듯 투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스킵' 동작을 수차례나 반복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당시 양현종은 정색하고 황성빈을 노려보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장면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다양한 패러디와 밈의 소재로 쓰일만큼 큰 화제가 됐다.
 
이어 지난 18일 잠실 LG전에서는 이번엔 상대 투수 켈리와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황성빈은 파울을 치고 1루로 전력 질주했다가 느릿느릿 돌아오며 시간을 지연하는 행동으로 피치클락을 위반하여 경고를 받았다. 또한 황성빈의 행동에 빈정이 상한 켈리가 이닝교대 시간에 분노를 드러내면서 양팀의 벤치클리어링으로까지 사태가 번지기도 했다.
 
황성빈의 행동에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적극적이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팀의 사기를 끌어올린다는 옹호론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행동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비매너이자 도발이라는 비판이 더 많았다.

황성빈 본인은 "열심히 플레이하려다보니 생긴 일"이라며 해명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SNS와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깐족', '밉상'같은 부정적인 수식어들과 더불어 황성빈을 향한 대중의 날선 비난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야구 실력으로 보여준 황성빈

하지만 황성빈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지 엉뚱한 '기행'만이 자신이 가진 콘텐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불과 며칠만에 야구로서 보란듯이 증명했다. 사실 일부 기행만이 부각되면서 가려졌을뿐, 황성빈의 올시즌 활약상은 순수한 실력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롯데의 최근 상승세와 꼴찌 탈출은 황성빈의 활약을 빼놓고는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켈리와의 충돌과 벤치클리어링으로 더 주목받았던 18일 LG전에서 황성빈은 5타수 2안타 2득점 1도루를 기록하며 선발 박세웅(6이닝 2실점)과 함께 팀 8연패 탈출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어 다음날 19일 사직 KT전에서는 3루타를 포함해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21일 KT와의 더블헤더에서는 2경기에서 3홈런을 몰아치며 팀 내에서 가장 물오른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야생마같은 매력은 황성빈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기에 한다.
 
최근 황성빈의 시즌 타율은 23경기에서 3할 4푼 5리(29타수 10안타)까지 반등했고, 3홈런에 7타점을 추가했다. 장기인 도루는 벌써 10개로 전체 공동 3위다. 최근의 활약을 바탕으로 출전시간이 더 늘어난다면 규정타석 진입과 커리어하이 시즌까지 노려볼 수 있는 페이스다.

무엇보다 최근 스킵 동작과 벤치클리어링 논란 등을 통하여 한창 부정적인 이미지로 더 주목을 받으며 자칫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더 놀라운 활약을 보여줬다는 점이 돋보인다. 어지간한 스타급 선수들도 팬들의 비난을 듣거나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이 되면 흔들리기 쉬운데 황성빈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만큼 강한 멘탈과 야구에 대한 집중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날 경기 후 수훈선수로 선정된 황성빈은 인터뷰에서 홈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듣고 잠시 울컥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겉으로 담담한 척했지만 황성빈 역시 자신을 둘러싼 구설수로 인한 마음고생이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황성빈은 최근의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상대 선수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오늘 경기는 제가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게 '결코 틀리지 않았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날인 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 명의 선수가 스타로 발돋움하는 과정에는 사연있는 서사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지난 시즌까지 출전기회도 장담하기 어렵던 무명의 선수가 올시즌 들어 프로야구 화제의 중심으로 올라서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수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그 절실함과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소모하지 않고 '페어플레이'에 좀더 집중한다면 비판하던 팬들도 황성빈의 열정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굳이 악동이나 빌런 노릇을 자처하지 않고도, 황성빈은 야구만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만한 매력이 충분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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