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의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다시금 환상적 동화와 신랄한 풍자를 솜씨 있게 조합해 매혹적인 판타지 드라마를 선보인다.

자신의 세대가 물려받은 고대 신화와 역사 + 이탈리아 영화사의 레퍼런스들 + 낭만과 갈망이 혼재된 순애보가 황금비율을 이룬다면 나올법한 감독의 신작 <키메라>는 꿈과 현실을 오가다 마침내 경계를 무너뜨리고 관객을 화면 속으로 빨아들이고 말 테다.
 
'키메라' 증후군에 시달리는 도굴꾼의 이야기
 
"키메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키메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아르투'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돌아가는 중이다. 유럽 기차여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인 좌석에서 그는 한자리에 앉은 여성들에게 고대 유물이나 벽화 속 여인들과 닮았다며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제법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라 같은 칸 여성들도 호의적이다. 하지만 양말 행상인이 나타나 짓궂은 농담을 던지자 갑자기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는지 그를 거칠게 내쫓고 만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한다. 짧은 등장부터 그에게 뭔가 사연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졌다는 게 은연중에 각인된다.
 
열차에서 내린 그를 정거장에서 또래 청년이 찾는다. 아르투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자 궁리하지만 좁은 동네에서 모습을 숨긴다는 건 한계가 또렷해 보인다. 곧 왁자지껄한 지인 무리가 총출동해 그를 환영하려 한다. 하지만 아르투는 불편해하면서 귀환 축하연을 하자는 이들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향한다. 가파른 경사의 산골 마을 한 귀퉁이에 얼기설기 조잡한 판잣집이 돌아온 그에게 안식이 허락된 거처다. 그는 어느 낡은 저택으로 향한다. 그곳의 주인인 '플로라'는 아르투를 반겨 맞지만 우루루 나타난 그의 자녀들은 플로라가 아르투를 편애한다며 왁자지껄 궁시렁댄다. 그는 이곳에서 노래 교실을 운영하는 플로라의 입주 문하생 격인 '이탈리아'를 만난다. 플로라가 시키는 온갖 잡역을 묵묵히 수행하지만 정작 '음치'이기에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기보단 그저 가정부에 가까워 보인다.
 
아르투의 귀향을 환영하러 나왔던 패거리는 실은 도굴꾼 좀도둑 무리다. 아르투는 그들과 함께 도굴을 벌이던 중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가 막 출소한 참이다. 그에게는 수맥 탐사 전문가처럼 땅속에 묻힌 고대 유물을 찾아내는 신비한 능력이 있기에 이들 패거리는 아르투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아르투는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이 산간벽지 곳곳에는 로마제국 이전, 고대 에트루리아 문명의 자취가 담긴 무덤들이 가득하다. 아르투가 수맥탐지 도구와 비슷하게 생긴 양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를 들고 주변을 살피다 '키메라' 상태라 패거리가 표현하는 환각 상태에 빠지면 그 발밑에 반드시 무엇인가가 묻혀 있다. 이들은 그렇게 은밀히 파낸 고대 유물을 중간거래상에게 가져가 감정을 맡기고 팔아치워 생계를 유지한다. 꽤 큰 손으로 보안 조치가 철저한 판매상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음성변조와 중개인을 통해서만 그들과 소통한다.
 
한편 플로라의 심부름으로 아르투와 종종 만나게 된 이탈리아는 그와 점점 가까워진다. 이름은 이탈리아지만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같은 근처 남유럽 국가에서 넘어온 모양새인 이탈리아는 역시 영국 출신인 아르투와 비밀스러운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동료들과 벌이는 도굴 행각을 알게 되자, 이탈리아는 망자의 안식을 방해하는 건 죄악이라며 아르푸를 비난하고 떠난다. 하지만 아르푸는 그저 도굴로 한탕을 꾀하는 동료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한편 그들 패거리는 지금까지 소소하게 파헤쳤던 것들과 비교 불허인, 고고학적 발견 수준의 고대 신전 유적을 찾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모종의 사건에 휘말린다.
 
시골 도굴꾼 패거리와 미술상 커넥션의 치부는 얼마나 다른가?
 
"키메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키메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주인공은 기구한 사연을 품은 도굴꾼이다. 그의 무리 7명은 자신들을 '톰바롤리'라 자처하며 고향 토스카나 산골 일대를 뒤져 고대 선조들의 유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들이다. 조상들의 안식을 방해하고 신성한 망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괘씸한 패륜아 후손들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향은 빈부격차가 격심한 이탈리아 현실을 반영하듯 거칠고 가난한 땅이고, 이들에겐 농사를 짓거나 일용직으로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봐야 근근이 생계에 풀칠하는 삶이냐, 위험을 감수하고 '베짱이'처럼 한탕 잘해서 큰돈을 만져보느냐 양자택일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들이 아지트에서 허세를 부리며 평생 농부로 일해온 친척을 비아냥거리며 시골 동네에서 그들만의 '멋진 인생'을 예찬하는 장면과, 후반부에 그들이 휘말린 모종의 사건에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혹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에 딱 들어맞는 구조적 단면은 제법 신랄한 현대 이탈리아에 대한 냉소적 풍자일 테다.
 
'아르투'와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시골 마을에선 보기 드문 이방인들이다. 그의 무리는 다들 그를 '아르투'라 부르지만, 원래 영국인인 그의 본명은 '아서'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영국식 본명으로 부르지 않는다. 한편 '이탈리아'란 역설적 이름을 가졌지만 정작 이탈리아인이 아닌 여성은 어린 두 딸과 함께 더부살이하는 신세다. 이 이방인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인해 토박이들에게 이용당하며 불안정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 동병상련 때문에라도 그들은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들이 친숙해지는 과정을 마치 '극 중 극' 형식으로 표현하는 필담과 신체 언어의 조합 장면은 언어 습득과정을 활용한 교감의 상징화로 활용된다. 그렇게 아르투는 이탈리아와 어느새 이성적인 감정을 나누게 되지만, 그에겐 '베니아미나'라는 과거의 연인이 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사랑의 열병에 휩싸인 것처럼.
 
'톰바롤리' 무리는 자신들의 행각에 어떤 죄의식도 없다. '개미'의 삶을 거부하고 '베짱이'가 되겠다는 그들의 행태는 경찰로 표상되는 공권력에겐 감시대상이지만 마을 주민들은 별로 경원시하지 않는 것처럼 묘사된다. 호기롭고 친절하며 동네 축제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이웃의 전형이다. 이탈리아의 뿌리 깊은 동네 자경단 문화(이게 심화되면 '마피아'가 된다)가 저런 식으로 형성되는구나 싶을 정도다. 반면에 지역 주민이 아니라 더 큰 손의 개입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우리 조상들의 유물은 훔쳐도 후손들이 훔치는 게 맞다는 식의 향토애 혹은 지역주의적 면모다. 물론 좀도둑들의 허울 좋은 논리일 뿐이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충격적으로 드러나는 비공개 경매장면은 이들 '톰바롤리'의 행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며, 큰 도둑질은 힘 있는 자들이 행한다는 어두운 이면을 극단적 상징으로 터뜨린다. 무척 신랄한 풍자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뒤통수를 치고 진귀한 유물을 빼돌린 업계 선수들이 전 세계 박물관 큐레이터들을 호수 위에 떠 있는 배 안에 차려진 고도로 은폐된 경매장으로 불러들이는 장면은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인 박물관과 수집가들의 컬렉션이 어떤 과정으로 축적되고 형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냉소적 형상화다. '톰바롤리' 무리의 자화자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관객들은 진짜 도둑은 따로 있다며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좀도둑과 큰 도둑의 대립 속에서 주인공 아르투는 자신이 대체 뭘 저지르고 있는지, 신성한 망자와 신들의 영역에 불손한 인간들이 끼어드는데 주구로 부역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회의에 빠져든다. 실은 그는 촉망받던 고고학자였고, 쏠쏠한 벌이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에겐 물질적 부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무엇인가를 애타게 추적하는 탐정에 가까운 그는 맹목적인 집착의 대상인 무엇인가에 넋이 나가 있다. 과연 그가 삶을 내팽개친 채 추적하는 건 어떤 존재일까.
 
고대 에트루리아 신화와 지독한 사랑이 교차되다
 
"키메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키메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지독한 순애보에 가깝다. 아르투에게는 그가 놓쳐버린, 하지만 현재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해가며 불가능한 재회를 꿈꾸는 과거의 연인 '베니아미나'가 있고, 지금 새롭게 시작할 가능성의 기로에 놓인 현재의 연인 '이탈리아'가 있다. 그가 애타게 찾는 대상을 추적하는 유일한 길잡이가 되는 양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는 어떻게 보면 땅으로 파고드는 사람의 형상이고 어찌 보면 두 방향으로 나눠진 길의 모습이다. 전자는 아르투의 집착적 태도를, 후자는 그 앞에 놓인 선택의 기로를 은유하는 것일 테다. 전자의 태도는 과거에 사로잡힌 채 탈출하지 못하는 퇴행인 동시에 평범한 이들은 불가능할 순전한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다. 고대 유물에 대한 주인공의 감식안과 불가사의한 능력은 그런 과거회귀적 무한 루프를 정당화하는 기제일 테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대상을 발견하지만 마치 저승에서 자신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연인을 데리고 나오다 금기를 어기는 바람에 다시 잃고 마는 오르페우스의 비애처럼 금방 놓치고 만다. 그 대상은 '밀로의 비너스'나 '시모트라케의 니케'에 비견된다는 '에트루리아의 키벨레' 여신상이다. 여기에서 감독은 고대 로마의 후예인 이탈리아인들만이 가능할 법한 과감한 신화적 상상력을 소환해 <키메라>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극대화한다. '키벨레'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기도 하지만 본래 그리스의 신성이라기보다는 튀르키예 지방의 토착 신앙에 등장하던 존재에 가깝다. 키벨레 신화를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들에서 반복되는 사랑에 빠져 광란에 치닫는 남신의 존재는 곧바로 영화 속 '아르투'의 '키메라' 환각과 매치된다. 은근히 신화와 연계고리가 명확한 편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에서 많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그리스에 정신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선조는 정작 그리스에 멸망당한 트로이의 유신들이라는 신화를 창안한다. 로마의 대표적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왕자 아이네아스가 그들의 시조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튀르키예에 위치한 트로이 인근 프리기아 지방의 토착신 '키벨레' 신앙이 로마에서 각광받게 된 것인데, 이 신앙은 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본 줄거리로 하며 이를 주관하는 여신의 존재가 강조된다. 이런 고대 로마의 신앙은 로마제국을 계승한 중세 유럽의 기독교 신앙에도 영향력을 은연중에 행사하게 된다.
 
<키메라>는 그런 키벨레 신앙을 이탈리아에 뿌리내리게 한 에트루리아 문명 유적지 도굴 ↔ 주인공의 잃어버린 옛 연인에 대한 집착과 그를 되찾으려는 기이한 반복을 연결해 신화에 모티브를 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거대한 풍경화로 그려내고자 한다. 자신들이 물려받은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21세기 영화에 창의적으로 접목하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도전인 셈이다.
 
옛 것에서 취할 건 취하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감독의 역작
 
그 과정에서 또한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 역사의 위대한 참고사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네오리얼리즘과 그 뒤를 이은 초현실주의 사조를 능수능란하게 오마주하는 바, 고대의 벽화를 발견하는 장면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 속 벽화 등장을, 주인공 아르푸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쫓기며 환상을 보는 순간들은 파졸리니의 초기작 <아카토네> 속 주인공의 환각적 체험을 재연하듯 선보인다. 여기에 또 신랄한 조소가 추가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그저 낭만적 모험담으로 포장된 백인 남성 탐험가(의 탈을 쓴 제임스 본드 캐릭터)들의 초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즉 '인디아나 존스' 캐릭터 무너뜨리기를 주인공의 초라한 행색으로 멋들어지게 그려낸다. 역시 셀지오 레오네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배출한 영화 강국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메라>는 역시 신화 속 상상동물 '키메라'처럼 불가능한 것들을 희구하는 주인공의 지독한 순애보로 귀결된다. 어떻게 보면 절절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롭고 안타까운 집착과 망상으로 점철된 주인공의 행보가 결국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안식을 얻게 되는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알 수 있지만, 행간에서 묘사되는 은근한 풍자들이 깨알같이 소소한 재미도 넘치게 제공해준다. 중간중간 마치 고대 음유시인들처럼 배경 설명을 순식간에 소화해내는 거리의 악사들의 즉석 공연과, 후반에 등장하는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두의 것이 되는' 폐선된 기차역의 재활용 광경은 풍자문학의 전통과 남유럽의 유서 깊은 전통인 공동체 '코뮨'의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해준다.
 
'우화' 혹은 '동화'라 하면 우리는 흔히 아이들에게나 보여줄 법한 단순한 이야기라는 편견을 갖곤 한다. <키메라>는 신화적 상상력을 제대로 활용한 현대판 우화이지만, 현실의 어두운 단면과 치열한 정치사회적 쟁점을 놓치지 않는 감독의 시야가 투영된 작가주의적 영화로 손색이 없는 결과물을 선보인다. 그런 탄탄한 바탕 위에 건축된 마술적 우화는 각박한 21세기 한국 사회를 견뎌내는 이들에게 찰나의 휴식과 대안적 상상력을 선사해줄 모험으로 충분한 자격을 지닐 만하다.
 
<작품정보>
 
키메라 La Chimera
2024│이탈리아│드라마, 판타지, 코미디
2024.04.03. 개봉│131분│12세 관람가
감독 알리체 로르바케르
출연 조쉬 오코너(아르투 역), 캐롤 두아르테(이탈리아 역),
       이사벨리 로셀리니(플로라 역), 빈첸소 네모라토(피로 역),
       알바 로르바케르(스파르타코 역), 루 루아레콜리네(멜로디 역),
       일 비아넬로(베니아미나 역)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2023 76회 칸영화제 경쟁
2023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미술상
2023 상파울루국제영화제 국제영화-관객상
2023 시카고국제영화제 실버휴고(국제경쟁) 앙상블 연기상, 촬영상
2023 미국비평가협회상 국제영화 톱5
키메라 알리체로르바케르 행복한라짜로 조쉬오코너 이탈리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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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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