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춘향전(春香傳, 작자 미상)>은 한국 고전문학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연애소설이자 원조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작품이 만들어진 조선 시대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춘향전>은 판소리로 민간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1754년에는 이를 집대성한 최초의 출판본인 만화본(晩華本)이 등장했다. 이후로 각종 이본만 무려 300여 종이나 출판될 정도로 시대와 신분을 뛰어넘어 남녀노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알려진 춘향의 캐릭터는 아름답고 순종적이며 연인 이몽룡에게 그저 일편단심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순정파'의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원작 속의 춘향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신분질서와 남녀차별이 엄격한 조선시대에 이몽룡과의 거침없는 직진 로맨스와 수위 높은 성적 묘사, 래퍼 뺨치는 독설가 기질에 분에 못 이겨 자신의 옷을 찢어버리는 불같은 성질머리까지. 소신있고 자존감 넘치는 원조 춘향의 진짜 모습은 차라리 오늘날 현대 여성의 캐릭터에 더 가깝다.
 
3월 27일 방송된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 101회에서는 '과격한 춘향? 파격적 대반전의 결말은? 춘향이는 왜 떠난 이몽룡을 잊지 못했나'편을 통하여 춘향전의 진실과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조명했다.
 
능동적이고 강단있는 여성이었던 춘향이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춘향전>의 작중 시대 배경은 조선 숙종시대다. 춘향은 전라도 남원에서 참판 벼슬을 지낸 아버지 성씨와 어머니인 퇴기 월매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작에서는 본래 이름만 존재하던 춘향에게 아버지의 존재와 성씨가 붙어 지금의 성춘향(成春香)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후기의 이본에서 추가된 설정이다.
 
춘향의 부친 성 참판은 사대부였지만 어머니 월매는 기생 출신이었다. 조선 시대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으로 노비 소생의 자녀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야 했다. 기생은 신분계급상 천인으로 분류되었고 본래 춘향은 어머니처럼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성 참판이 월매를 기적(妓籍, 기생의 호적)에서 제외해준 덕분에 춘향 역시 함께 기생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춘향은 성장하면서 '봄의 향기'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용모와 화사한 자태를 뽐냈다. 남원 부사 이한림의 아들 이몽룡은 5월 5일 단오절에 그네를 타는 춘향의 모습을 처음 보고 한눈에 반한다.
 
본래 이몽룡은 춘향이 비천한 기생의 딸이라는 것을 듣고 단지 가벼운 하룻밤 노리개로 삼을 심산이었다. 이몽룡은 하인 방자를 심부름꾼으로 보내어 춘향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하지만 춘향은 "엊그제 오신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부르신단 말이냐"라고 어이없어하며 이몽룡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춘향은 상전의 위세를 믿고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방자를 향해 "춘향이니 난행이니 기생이 비생이니 종조리새 열씨 까듯 시앙쥐 씨나락 까듯 똑똑 꼬아 바치라더냐. 이 쥐구녁으로 쏙 빠질 녀석아!"(김세종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라고 걸쭉한 입담을 선보이며 참교육까지 시전했다. 그만큼 춘향이 능동적이고 강단있는 여성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몽룡은 다시 방자를 보내 이번엔 춘향의 글솜씨를 칭찬하면서 정중하게 예의를 차려서 만남을 신청한다. 마침 춘향의 어머니 월매는 간밤에 청룡이 나오는 꿈을 꿨다면서 이몽룡과의 운명적인 인연을 직감하고 딸에게 만남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이러한 설정은 춘향의 비천한 신분이나 사대부인 이몽룡과의 금지된 로맨스를 고귀하게 연출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에 해당한다.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드디어 마주하게 된 춘향과 이몽룡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한눈에 반한다. 수려한 외모와 지적인 분위기의 이몽룡 역시 춘향이 원하던 이상형이었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16세 동갑으로 조선시대에는 성인으로 분류되던 나이였지만, 오늘날로 치면 혈기왕성하고 갓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춘기 남녀였다.
 
이미 춘향에게 홀딱 빠진 이몽룡은 그녀와의 재회만을 기다리며 천자문을 읽는 시간 동안에도 춘향과의 잠자리를 상상한다. "원앙금침 부용당 훨신 벗고 잘 숙, 동락동침 깊은 정회 사양 말고 벌 열" 등의 표현들은 한자에 성적 은유를 빗댄 언어유희로서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노골적인 '섹드립'이다. 겉으로는 점잖고 지적인 양반의 이미지를 하고 있지만, 이몽룡도 내면은 결국 어리고 미성숙한 10대 사춘기 소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몽룡은 그날 밤 춘향의 집을 찾아가 재회한다. 그런데 이몽룡은 춘향이 직접 쓴 시와 명화들을 접하게 되고, 그녀가 단순히 미색만이 아니라 학식과 예술적 소양까지 갖춘 여중군자(女中君子)라는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여 더욱 감탄하게 된다. 이몽룡이 춘향을 단지 순간적인 성적 욕망의 대상을 넘어 '인생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다.
 
이몽룡은 그날로 춘향에게 정식으로 청혼한다. 어머니 월매는 두 사람간 신분의 차이를 우려했지만 이몽룡은 춘향을 평생 정실부인처럼 대하겠다고 약속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월매도 혼인을 승낙하고, 이몽룡과 춘향은 그날밤 혼례를 치르고 바로 함께 동침하여 하룻밤을 보낸다. 이 모든 것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 불과 24시간 만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춘향전>의 판소리와 출판본들에서는 모두 이몽룡과 춘향의 첫날밤에 관한 수위 높고 적나라한 '19금'급의 성적묘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아무리 당시 기준으로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 어린 10대 청춘남녀가 만난 지 하루 만에 사랑에 빠지고 깊은 관계까지 맺는 모습은 지금 봐도 엄청나게 파격적이다. 이를 두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소설가 이해조는 <자유종>에서 "춘향전은 음탕교과서"라는 표현을 쓰며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적나라한 표현이야말로 <춘향전>만의 진정한 매력이기도 하다. 당시의 고전소설들이 대부분 인간을 도덕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춘향전>은 마치 서양의 누드화처럼 인간의 육체와 쾌락도 '인간다움'의 일부분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치마 찢고 화장대 집어던진 이유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두 사람이 혼례를 치르고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몽룡은 춘향과 헤어지라는 가문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비천한 기생의 딸을 며느리로 인정할 수 없었던 이몽룡의 어머니는 한양으로 떠나기 전에 춘향과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부모의 반대를 이기지 못한 이몽룡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춘향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비록 첩살이를 하더라도 이몽룡을 따라 한양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춘향은 연인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분을 이기지 못한 춘향은 자신의 치마를 찢어버리고 머리를 쥐어뜯는가 하면, 거울과 화장대를 밖으로 집어던져버렸다. 춘향의 분노는 신의를 저버린 이몽룡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지만, 자신을 천한 여자이자 하룻밤 노리개 정도로만 취급하는 양반들의 차별적 인식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있었다.
 
이몽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돌아오면 너를 데려갈 것"이라고 춘향을 달랬다. 월매 역시 분노하여 이몽룡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지만, 춘향은 그런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이몽룡을 보내주기로 한다. 이몽룡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춘향은 자신을 향한 이몽룡의 진심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결심한 것.
 
이몽룡이 한양으로 떠난 이후, 춘향은 머리에 비녀를 꽂고 쪽을 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유부녀가 된 사실을 드러낸다. 비록 정식혼례가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이몽룡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선언이었다.
 
이몽룡이 떠나고 얼마 뒤 신임 남원부사로 변 사또(변학도)라는 인물이 부임한다. 여색을 밝히는 인물로 유명했던 변학도는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기생들을 점고하고 명부를 확인하며 춘향의 이름부터 찾았다. 춘향이 절세미녀라는 사실이 어느덧 한양에까지 알려졌던 것. 변학도는 춘향이 기생이 아니어서 명부에 이름이 없고 혼인한 유부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도 인정하지 않는다.
 
변학도는 춘향을 불러들여 "자신의 수청을 들라"고 지시한다. 당시 변학도의 나이는 40대 이상, 춘향은 17세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춘향은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으니 저도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이에 변학도는 "이몽룡은 한양 사대부의 자제로서 명문거족의 사위가 되었을 것이다. 한순간 사랑으로 잠깐 기생질하던 너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겠느냐? 네가 수절한들 열녀라고 표창해줄 사람이 있느냐"라며 비웃었다.
 
변학도의 말은 춘향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모욕적이고 상처를 주는 말임에 틀림없으나, 당대의 사회적 기준으로는 오히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에 가까웠다는게 반전이다. 변학도의 이야기는 이몽룡의 어머니가 춘향과의 이별을 종용하며 했던 말과 똑같았다. 당대의 신분제도와 양반들의 현실이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또한 구전 판소리나 출판본 초기에서는 변학도의 말이 춘향을 꾸짖거나 모욕을 주기 위한 의도라기 보다는, 오히려 헛된 꿈을 꾸는 춘향을 안타까워하거나 귀여워하여 달래기 위한 표현에 가깝게 묘사된다. 그만큼 변학도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춘향의 고집이야말로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향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권력에 저항하고 사랑을 선택했다. 모욕감을 느낀 변학도는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을 의자에 묶고 정강이를 매질했다. 어느새 피가 흥건하고 부러진 몽둥이가 바닥에 가득할 만큼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춘향은 굽히지 않았다.
 
어머니 월매가 찾아와 변학도의 수청을 들 것을 권유했지만 춘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춘향은 옥에 갇혀서 무려 3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친어머니조차 딸의 신념을 도저히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만큼, 자신이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 의리를 지키겠다는 춘향의 사랑 방식은 시대상을 앞서나간 파격이었다.
 
한편 한양으로 갔던 이몽룡은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한다. 암행어사로 임명된 이몽룡은 신분을 숨기고 거지 행색으로 위장하여 남원으로 돌아왔다.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고 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몽룡은 월매와 함께 춘향을 찾아온다.
 
춘향은 이몽룡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도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서방님'으로 부르며 예우했다. 마지막을 직감한 춘향은 어머니 월매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팔아 옷가지와 반찬을 장만해주라고 당부한다.
 
이 장면의 의미는 춘향에게 사랑이란 재산이나 신분 상승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진심을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다. 또한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춘향의 강인한 내면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이처럼 기생의 딸이라는 비천한 신분의 하층민 여성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주체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춘향전>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변학도의 생일 잔치가 열리는 날, 분위기가 무르익자 변학도는 다시 춘향을 불러내려고 한다. 그때 이몽룡이 수행원들을 이끌고 나타나 암행어사로서 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춘향전>에서 가장 통쾌한 클라이맥스 장면이자 판소리에서도 소리꾼과 관객들이 함께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전통이다.
 
이몽룡은 탐관오리인 변학도를 체포하고 파직시킨다. 이어 춘향을 불러낸 이몽룡은 얼굴과 목소리를 감추고 이번에는 자신의 수청을 들라고 요구한다. 허탈해진 춘향은 빨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고함을 친다.
 
이몽룡은 그제야 춘향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진실을 알린다. 사실 이몽룡은 춘향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고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춘향은 어사가 되어 돌아온 이몽룡의 모습을 확인하고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몽룡이 춘향을 구해내고도 왜 굳이 수청을 거론하며 짓궂은 시험을 벌이는 장면이 나와야만 했을까. 여기서 춘향은 변학도에 이어 암행어사의 수청 요청도 단칼에 거부하는 것으로 만민 앞에서 자신의 절개를 공개적으로 확인시킨다. 이는 춘향이 신분제라는 낡은 틀 안에 가두어질 수 없는 주체적 여성임을 드러낸 장면이자, 훗날 두 사람이 정식혼인을 인정받게 되는 명분에 개연성을 더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도 해석된다.

조선 국왕은 춘향의 사연을 듣고 갸륵하게 여겨 이몽룡과 특별히 정식으로 혼인을 허가한다. 정조와 지조를 지킨 춘향에게는 정렬부인(貞烈夫人)이라는 칭호까지 내렸다. 이후 두 사람은 자녀를 낳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춘향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신분의 벽마저 뛰어넘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춘향전>은 신분제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하층민은 물론이고 지배계급인 양반계층에게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이는 춘향이라는 캐릭터의 최대 매력포인트였던 절개(節槪)라는 요소가, 독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양반계층에서는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춘향의 신념이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유교적 '봉건윤리'에 충실한 모습으로, 또한 하층민으로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춘향의 사랑이 승리를 거두는 '반체제적 사건'으로, 어느 쪽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절묘하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었다는 게 <춘향전>의 매력이었다.
 
이처럼 <춘향전>은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뛰어넘어 신분과 세대를 초월하여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과 인간다움을 지켜낸 주체적 여성으로서 춘향의 진정한 매력이 오늘날까지 재조명받는 이유다.
벌거벗은한국사 춘향전 이몽룡 고전소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