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세월호 10주기이자 광화문 폭식농성으로부터 10년 후
 
2024년 4월이 다가온다. 2014년 4월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을 충격과 침묵에 빠뜨렸던 그날이다. 마땅히 애도해야 할 슬픈 사건이지만 그 이후 한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상식이 힘을 잃어가고 극단주의가 창궐하고 있다는 씁쓸한 증명으로 한층 더 큰 충격을 주기에 차고 넘쳤다. 그 여파는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해소되기는커녕 한층 더 기승을 떨치는 중이다.
 
그해 여름,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농성 중이던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폭식 투쟁'이라는 듣기도 보지도 못한 대항시위였다. 실체를 겪지 못한 이들에겐 일종의 풍자와 해학의 발로인가 싶겠지만, 실상은 말 그대로 사랑하는 육친을 잃고 제대로 사체인양도,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못해 울분에 찬 이들 앞에서 조롱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물론 이후로 그들의 사회적 대접은 끝 간 데 없이 추락했지만 말이다.

21세기 들어 사회가 양 극단화되고 이를 중화시켜야 할 정당정치가 이에 오히려 편승하면서 대한민국은 극심한 사회적 분열로 치닫는 중이다. '아전인수'를 넘어 '지록위마'가 아무렇지 않게 구사된다.
 
폭식 투쟁이 대다수시민들에겐 경악스럽고 생소했다지만 실은 부정한 권력이 저항하는 이들을 매도하고 희화화시키기 위해 자주 구사했던 수단이다. 1980년대 서슬 푸른 4공 군부독재에 맞서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투쟁 중 쓰러져 입원한 병실 앞에서 안기부(현 국정원) 요원들이 일부러 불판을 펴놓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고사를 떠올리면, 자신들의 불의에 항거하는 이들의 도덕적 우위를 매도하기 위한 저열한 책동의 역사는 유구한 선례를 갖춘 셈이다. 하지만 결국 '닭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오게 마련'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은 거짓에 맞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공법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동병상련의 억울함을 품은 이들이 제일 먼저 만나고 서로 이해하게 마련이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그런 극적인 만남의 과정을 기록한 작업이다.
 
시공을 초월한 사회적 참사의 반복을 목격하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씨네소파

 
영화의 출발은 모 방송국 팟캐스트 방송에서 비롯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세월호 유가족 '예은아빠' 유경근은 대담 파트너로 자신이 겪은 기막힌 체험을 먼저 치렀던 이들과 차례로 대면한다. 황명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희생자 고(故) 한상임 어머니인 황명애, 1999년 씨랜드수련원 화재 참사 희생자 故 고가현, 고나현 아버지인 고 석, 1987년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국가폭력으로 사망한 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고(故) 배은심이 그들이다. 자식의 시신을 찾은 뒤 오히려 삶의 의지를 잃고 방황하던 진행자 유경근은 자신이 경험한 기막힌 체험을 이미 오래전에 먼저 겪은 이들과 대화하면서 오히려 안정을 찾고 그들과 공감하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참 잔인한 표현이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위로 효과도 있었을 법하다.
 
그 과정에서 유경근과 이 과정을 기록하던 카메라 너머의 감독은 기이한 점을 발견한다. 2014년 세월호 ↔ 2003년 대구지하철 ↔ 1999년 씨랜드수련원은 각각 다년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마치 평행우주를 보듯 닮은꼴이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믿을법한 공신력을 가진 거대 여객선/공공 대중교통시설/허가받은 대형 레저시설에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황당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혹은 최소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부분조차 무력하게 놓쳤다는 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명을 희생시키고도 유해 수습조차 졸속으로 대충 처리했다는 점, 게다가 진상규명은 뒷전이고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 정당하게 항의하는 유족들을 핍박했다는 점까지 거울을 보는 기분이 들 지경이다.
 
대체 왜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걸까? 그저 어쩌다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이 묘하게 일치하는 걸까? 그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니 재수가 없는 걸까? 유가족들은 반문한다. 차라리 그렇다면 슬픈 과거를 묻어두기엔 오히려 나을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짚어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이들은 현실을 망각하는 '파란 약' 대신에 진상을 규명하고 교훈을 남기려는 '빨간 약'을 선택하고 만다. 그 결과는 팟캐스트에서 이들이 담담하게 토로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난의 기록이다. 유경근은 어찌나 자신과 흡사한 경험담들인지 화들짝 놀랄 지경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은 말한다. 참사현장 수습이 끝났다며 현장 전역을 고압호스로 물청소를 하고 난 뒤에, 도저히 의심스러워 유가족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을 한 번 더 샅샅이 수색해보니 백단위의 뼈를 추가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식 사망자 192명에 포함되지 않은 이의 유해도 찾아냈다고 한다. 192명은 오직 객차에서 발견된 시신에 불과하고, 차량 밖으로 튕겨나갔거나 하면 공식조사에서 누락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또한 기를 쓰고 인양이 무익하다며 가로막던 정권이 몰락하고 인양 후 숱하게 유품과 유해가 발견된 바 있었다.
 
씨랜드수련원 화재 참사 유가족은 말한다. 애초에 시설 허가가 내려질 수 없는 조건에서 안전 조건을 무시하고 세워진 수련원이 버젓이 영업을 했고, 화재에 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자재로 이뤄진 노후시설에서 불이 나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지만, 공공기관에선 필사적으로 부주의에 의한 '인재'라 주장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모기향을 피워놨다 불이 번졌다는 것이다. 화면에는 분노한 유가족들의 '모기향' 항의구호가 가득 들어찬다. 노후된 중고선박에 일상화된 과적과, 석연찮은 사건 발생 전후 처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유경근은 말문을 잃고 만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우 외에도 현대 한국사회를 뒤흔들다 기억에서 사라져간 무수한 참사를 회고한다. 복사해서 붙여놓은 양 시기마다 반복되는 동일한 패턴이 개별의 참사를 초월한 '사회적 참사'의 연대기를 완성시키고 만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기득권 카르텔이 수익을 위해 혹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방조한 안전문제를 이 유가족들이 앞장서서 또 다른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모두 그날의 사건 이후로 지역과 분야에서 안전문제를 고민하고 활동하며 국가가 해야할 몫을 감당하고 있었다. 유경근 또한 그렇게 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덕분에 여전히 이들은 공권력에겐 불편한 대상이 된다.
 
'슬픔의 공동체'가 한국사회에 제공하는 선물이자 해법을 기록하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씨네소파

 
여기에서 영화는 자칫 주제를 확장하다 밸런스 붕괴에 빠지거나 균형을 잃기 쉬운 주제 확장에 도전한다. 사회적 재난과 참사로 널리 공인된 해당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과 다른 범주로 인식되기 좋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유가족과의 만남이다. 바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어머니의 출연이다(2022년 작고). 평범한 이들이 겪은 불행한 사고라는 공통점과 뭔가 유리되는 느낌이 확 들 만하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배은심 어머니 역시 착하고 열심히 공부하던 아들이 공권력의 과잉진압에 희생당한 뒤 '인생이 바뀌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 해도 사회의 안전망과 공공서비스를 통해 사전에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국가의 존재근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필수적인 정부의 역할을 방치한 책임이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애초에 진정성 있게 역할을 다하려는 자세가 결여된 것이었는지 불의한 공권력은 오히려 정당한 주장을 하는 이들을 갈라치기하고 모욕하며 소수의 극단주의로 매도해 가두려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던 이들이 대부분 처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 구조적인 한계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조명하는 데에 배은심 어머니의 증언과 활동은 중요한 방향타 역할을 도맡는다.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추가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헌법전문에 수록될 만큼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다. 즉, 2024년 한국 역시 헌법상으로도 실제 사회적 양상으로 봐서도 1987년 6월에서 비롯된 체제, 즉 '6공화국' 상황의 지속인 셈이다. 그런 시대사적으로 중대한 시기를 완성하는데, 곧 과격파나 극단주의로 매도당하던 소수가 실제로는 대다수 시민의 정당한 요구였음을 입증하는 사례인 동시에, 그런 묻혀진 사회적 희생으로 세워진 (독재정권에 비해)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현재 한국사회체제에 대한 조명과 개선지점을 환기하려는 정치적 시야와 통찰의 기획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도구적 목적으로 제작된 작업은 아니다. 제작진은 오랫동안 세월호 유가족 및 생존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과 활동을 기록해 왔고, 어느 순간 한국사회에서 세월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끊이지 않는 사회적 참사들이 '동시성'을 통해 다뤄져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테다. 거대한 품이 들어가는 기획이지만 다행히 팟캐스트 방송이 이뤄진 덕분에 그 선발작업으로 1987년부터 2014년, 그리고 2024년으로 통하는 한 시대를 아우르는 전망을 구현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선보이는 '슬픔의 공동체'는 그저 체념이나 회한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각성한 한국사회의 이면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으로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통과 눈물로 쌓아올린 소중한 경험은 작금의 한국사회가 처한 불치병을 고치기 위한 백신으로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런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작품정보>
 
세월: 라이프 고즈 온 Life goes on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4.03.27. 개봉│99분│전체관람가
감독 장민경
출연 유경근, 황명애, 고석, 故 배은심
제작 독바위 프로덕션
배급 씨네소파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6회 인천인권영화제
25회 서울인권영화제
23회 제주여성영화제
세월라이프고즈온 장민경감독 유경근 세월호 사회적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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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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