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진짜야, 사만다"

영화 < her > 속 사랑에 빠진 한 남자. 사실 그는 사만다의 얼굴을 본 적도, 그와 손을 잡아본 적도 없다. 사실상 사만다의 실존을 경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만다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이다. 영화는 우리가 사랑하는 건 사람의 형체가 아닌 사람다운 '무언가'라고 이야기 한다. 결코 너머의 얼굴을 알지 못해도, 손에 잡히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진짜'가 있다.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 X(@plave_official)

 
지난 9일 <쇼! 음악중심> 1위를 차지한 건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였다. '버추얼 아이돌'은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 세계에서 존재하는 아이돌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외형만 보면 사람이 아닌 가짜 캐릭터 같다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브를 파면 팔수록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아이돌 스타를 만나게 된다. 버추얼 아이돌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 나는 영화 < her >처럼 그들과 사랑에 빠지기로 했다.
 
'수박씨 뱉기' 게임하는 버추얼 아이돌이 있다고?

플레이브가 출연한 영상에는 "진짜 사람처럼 움직인다", "모션이 자연스럽다" 등 현실성에 놀라는 반응이 많다. 플레이브의 남다른 구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가상 아이돌, 혹은 사이버 가수는 주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완성되었다. 즉,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직접 그려서 만들어 낸 창작물인 것이다. 반면, 플레이브는 '모션 캡처'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모션 캡처' 기술이란 사람의 동작을 녹화해 이를 후가공하여 실제 사람에 가까운 캐릭터로 구현한다. 캐릭터 뒤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 사이버 가수와 다르며, AI 캐릭터와도 차별화된다. 특히 유튜브에서 유행 중인 버튜버(버추얼 유튜버) 또한 실제 사람에게 이미지를 덧씌우는 형식이지만, 그들은 전신을 드러낸 플레이브와 달리 상반신만 보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람과 AI 캐릭터 사이에 걸친 플레이브. 분명히 실존하는 사람을 본체 삼아 활동하는 그룹이지만, 캐릭터 뒤 사람의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종종 플레이브의 실체를 폭로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지만, 순식간에 삭제되는 이유다.
 
 플레이브의 여름 방학 특집 방송

플레이브의 여름 방학 특집 방송 ⓒ Youtube(@plave_official)

 
플레이브 뒤에 '진짜'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현실성은 '가짜'가 흉내 낼 수 없는 팬들과의 문화적 접점을 만든다. 시험을 마친 학생처럼 교복을 입은 채 노래방에 가서 열창 라이브 방송을 펼치고, 여름 방학 시즌에는 멤버들이 시골집에 놀러 가 '수박씨 뱉기' 게임과 불꽃놀이를 즐기는 콘셉트로 촬영한다. 라이브 방송을 하다가 갑자기 발에 쥐가 나고, 게임 방송을 하다가도 한국인답게 K-성질을 표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숨길 수 없는 플레이브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외형이 낯설다가도, '연습실 올 때 커피 사 오기' 약속을 정하거나 '<아는 형님>에 출연하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타 K-POP 아이돌 그룹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보이그룹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지난 21일 멤버 예준이 성대결절 초기 진단을 받아 활동을 최소화하게 되었다. 가상 세계 속 아이돌이 어떻게 성대 결절에 걸리나 싶지만, 이 또한 플레이브라서 가능한 '진짜다움'이 아닐까.
 
가상 아이돌의 열정에 반하다
 
 멤버 '노아'의 홍대 버스킹 영상 갈무리

멤버 '노아'의 홍대 버스킹 영상 갈무리 ⓒ Youtube(@plave_official)

 
단지 '사람 같다'는 이유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가 사랑받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아이돌과 팬덤이 합심해 전략적으로 그룹 띄우기에 나서는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랑을 얻고 나의 편이 되어달라고 하려면, 아이돌에겐 열정과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플레이브는 그러한 측면에서도 충분히 현실적인 '버추얼 아이돌'이다.

플레이브 멤버들은 작사, 작곡, 안무 등 앨범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는 자체제작 아이돌이다. 첫 번째 싱글 앨범 '아스테룸(Asterum)'부터 최근 발매한 '아스테룸(Asterum) : 134-1'까지 모두 멤버들이 직접 만든 노래와 안무로 앨범과 뮤직비디오를 채웠다. 또한 멤버들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 녹음, 앨범 디렉팅 비하인드를 털어놓으며 팬들에게 제작 과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게다가 가상 세계 속 아이돌이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성장 서사'가 있다. 지난 2월 26일 앨범 쇼케이스 현장에서 이성국 대표는 "처음에는 라이브 콘텐츠 시청자가 30명이었다. 지난해 콘서트 대관을 할 때는 버추얼 아이돌이란 이유로 대관을 해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에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로 처음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이다" 등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성공 공식은 기존 K-POP 아이돌 그룹의 성장 과정과 흡사하다. 포화된 아이돌 시장에서 자체 제작이란 타이틀로 희소성을 얻고, 바닥에서부터 성장하여 팬덤이 열광할 법한 성장 서사를 구축하는 일. 어쩌면 '버추얼 아이돌'로 사랑받는 건 플레이브가 처음일지 몰라도, 결코 마지막은 아닐 거란 예감이 든다.
 
'버추얼 아이돌'의 한계? 그럼에도

플레이브의 성장세는 대단하지만, 여전히 K-POP 문화 내에서 주류는 아니다. 플레이브가 다른 K-POP 아이돌과 틱톡 챌린지를 찍은 영상에는 "이건 또 뭐냐", "혼란스럽다", "위화감이 든다" 등 낯선 반응이 있고 소위 말하는 '오타쿠(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몰두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칭하는 표현) 문화의 일환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근래 K-POP 산업에선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혼란스러운 사건이 벌어졌다. 특정 아이돌의 열애설이나 불화설, 태도 논란 등 연예인이 사람이라서 벌어졌던 일, 그리고 이에 대한 팬덤의 거센 입장 표명 또한 팬들이 사람이라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속에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가 등장했다. 과연 K-POP 팬들은 사람이 아닌 아이돌 스타를 사랑하게 될 것인가. 영화 < her > 속 인공지능을 향한 주인공의 애달픈 고백이 이젠 당신의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플레이브 버추얼아이돌 플리 PLAVE P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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