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다. 통상은 같은 제목을 피하는 것이 업계의 상례지만, 때로는 그 같은 격식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제목이 흔하게 쓰이는 단어라거나 먼저 나온 작품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경우 이런 사례가 생겨나고는 한다.
 
제목이 같아서 생기는 문제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영화를 찾으려 검색을 할 때면 찾으려는 영화와 상관없는 정보가 잔뜩 딸려 나온다거나, 다른 이와 대화를 할 때 서로 다른 영화를 놓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보다도 더 나쁜 건 한 영화가 다른 것을 잠식하여 모두가 두 작품의 제목으로 어느 하나만 떠올리게 되는 일이다. 특히나 같은 제목 쓰기를 강행하는 뒤에 나온 영화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규모에 밀린 먼저 나온 영화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드물게도 먼저 나온 영화가 자리를 지켜내는 때도 있다. 뒤의 영화가 더 크고 화려할지라도, 저만의 매력으로 존재감을 잃지 않는 작품이 드물게나마 있는 것이다.
 
패신저스 포스터

▲ 패신저스 포스터 ⓒ 소니픽처스

 
끝내 살아남는 영화의 비결
 
<패신저스>가 이와 꼭 맞아떨어지는 사례다. 2008년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연출하고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영화가 먼저 제작됐고, 2017년이 되어 모튼 틸덤이 연출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뒤의 영화는 할리우드에 수년 동안이나 떠돌던 유망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당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던 제니퍼 로렌스와 크리스 프랫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SF영화로 우주선이 배경인 작품답게 출연료 외에도 세트 제작, 특수효과 등 들어간 비용이 엄청났다.
 
반면 먼저 나온 <패신저스>는 앤 해서웨이가 원톱 주연을 맡아 연기했으나 전반적으로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은 작품이다. 촬영은 실내 위주로 진행됐고 출연진도 앤 해서웨이를 제외하곤 유명한 배우를 쓰지 않았다. 마케팅 또한 활발히 하지 않은 관계로, 영화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 대신 입소문을 타고 작품을 좋게 본 이들 사이에서 조금씩 알려졌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9년 뒤 같은 제목의 대작이 만들어진 이유가 되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끝내 살아남았다. 대중에겐 제니퍼 로렌스가 출연한 <패신저스>가 이 제목을 가진 유일한 영화인 것처럼 알려졌으나,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두 영화가 조금은 다른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블록버스터는커녕 저예산 영화로 분류되어야 마땅한 앞에 나온 영화가 뒤의 것에 비해 밀리지 않는 매력을 갖추고 있는 탓이다. 특히 기존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사이에서 나름 독창적이라고 해도 좋을 이야기와 구성, 기법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생존자 단 10명, 그들에게 일어난 일
 
패신저스 스틸컷

▲ 패신저스 스틸컷 ⓒ 소니픽처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영화는 승객들을 주요하게 다룬다. 109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에 주인공인 클레어(앤 헤서웨이 분)는 당장 사고현장으로 소환된다. 그녀는 트라우마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재난치료사로, 생존자 10명을 치료할 담당자로 지정된다. 재난 후 스트레스 장애엔 기억을 최대한 복원하는 초기 치료가 중요하기에 그녀는 곧장 생존자들을 모아서 상담모임을 개설한다. 그들이 가진 파편적 기억을 끌어내 사고 당시 상황을 복원하는 게 치료의 출발이다.
 
10명의 생존자가 모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몇은 아예 종적을 감춰버리고, 참석자들 중에서도 치료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가 여럿이다. 그중 에릭(패트릭 윌슨 분)이라는 환자는 아예 집단치료를 거부하고 클레어가 자기 집에 왕진을 올 때만 상담을 하겠다 고집한다. 그로부터 클레어와 에릭의 기묘한 상담이 이어지게 된다.
 
영화는 생존자들의 서로 다른 증언과 이를 맞춰나갈수록 의문이 가중되는 상황, 또 기억의 파편을 맞추는 걸 막으려 하는 듯 보이는 항공사 관계자의 존재 등을 통해 긴장감을 창출한다. 항공사 관계자는 클레어에게 사고가 기장의 개인적 과실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몇 생존자가 날개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증언을 내놓으니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에게 사고의 책임을 돌리는 태도가 클레어에겐 비겁하게까지 느껴진다. 클레어는 이내 그와 대립각을 세우기에 이른다.
 
항공사가 생존자를 납치한다?
 
패신저스 스틸컷

▲ 패신저스 스틸컷 ⓒ 소니픽처스

 
그렇다고 해서 전문성이 있지 않은 클레어가 사고의 원인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저 생존자들의 심리치료나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고 일에 열중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문제가 거듭 발생하는 것이다. 예고도 없이 생존자가 한 명씩 나오지 않기 시작하고 누구도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급기야 모임을 남몰래 훔쳐보다 도망가는 사내까지 나오니 클레어는 항공사가 모임을 방해하고 생존자를 납치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건이 거듭될수록 극의 긴장 또한 높아지는 가운데, 조금씩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까지 주변에 일어나게 시작한다.
 
<패신저스>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무엇을 알아가려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클레어와 에릭의 관계는 금기를 넘어 점차 로맨스로 접어들고, 다른 상담자들과의 모임 또한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외부의 방해와 내부의 어려움이 모두 클레어를 억누르는 가운데 그녀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불안을 해결하려 시도한다.
 
반전영화의 목록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패신저스 스틸컷

▲ 패신저스 스틸컷 ⓒ 소니픽처스

 
영화는 2000년에 접어들며 크게 유행한 스릴러의 한 전형, 즉 결말에 반전을 둔 스타일을 추구해 만들어졌다. 결말부의 반전은 영화 전반을 온전히 뒤집어 냄으로써 보는 이에게 탄성을 자아낸다. 이전에 성공한 걸출한 반전영화, 즉 <식스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 <프라이멀 피어> <아이덴티티> 등이 보여주듯 반전영화는 반전이 드러나기 이전까지 관객을 얼마나 몰두하게 하느냐가 생명줄이라 할 수 있다. 몰두한 관객에게 이전의 이야기를 단박에 뒤집고 또 그 뒤집기를 납득시킬 수 있는 개연성을 던지는 것이 반전영화의 성공방정식인 것이다.
 
<패신저스>는 수많은 반전영화가 기발한 반전에만 몰두한 나머지 서사를 쌓아올리는 데 소홀했던 문제를 경계한다. 앤 해서웨이라는 뛰어난 배우의 역량에 더하여 그녀가 느끼는 감정적 어려움과 책임감을 적절히 비추어낸 드라마 또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결말의 파격을 철저히 감춘 채로 전진한 영화는 마침내 결말부의 충격을 극대화하니 적잖은 이들이 이 영화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패신저스>는 앤 해서웨이의 팬뿐만 아니라, 반전영화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극적 재미를 자아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 반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를 효과적으로 챙겨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작품으로 제 위치를 굳혀냈다. 그 결과 콜롬비아 출신의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연출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라는 걸 그가 스스로 증명해낸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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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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