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캐쉬백>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캐쉬백>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1.
캐쉬백
박세영 / 2019 / 극영화 / 25분

한 남자가 자신의 몸 만한 가방을 들고 도시의 밤을 누비며 중고 거래를 이어간다. 그가 지금 필요한 돈은 200만 원. 어떻게든 이 금액을 맞추기 위해 집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은 모두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급매로 내놓은 물건을 사서 친구에게 되파는 일까지 하는 걸 보면 돈이 급하긴 한 모양이다. 중고거래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빠른 시간 안에 빨리 돈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는 더욱 어렵다. 평소 같으면 거래를 취소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법한 상황들도 최대한 성사되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캐쉬백>은 중고 거래라는 소재를 중심에 놓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계와 서사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고우(이태우 분)라는 이름의 남자다. 그의 중고 거래는 6시간 전에 나눈 전화 통화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물건 하나를 구입하기로 한 그는, 내일 아침까지만 그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심지어 현금 50만 원을 더 줄 테니 꼭 자신에게 넘겨달라는 것을 보면 쉽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 같아 보인다. 어렵게 약속을 받은 듯한 그에게 남은 시간은 6시간뿐. 중고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그의 중고 거래가 시작된 이유다.

이 작품은 여러 지점에서 '긴장감'을 극의 주된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의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중고 거래의 특성상 발생하는 감정이다. 상대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또 구매를 정말 할 것인지와 같은 여러 불확실한 부분들이 극의 긴장을 유발한다. 영화적으로는 빠르게 전환되는 컷과 편집이 이를 강화한다. 특히 신이 바뀔 때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은 인물이 이렇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는 장치가 된다.

중고 거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군상들 역시 극을 구성하는 주요 서사에 해당된다. 판매자가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거칠고 매너가 부족한 구매자들의 모습은 중고 거래라는 행위의 특성을 드러내는 부분이자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지점이다. 특히 가장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우표 구매자와의 에피소드는 고우가 목표로 했던 금액을 모으기 직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작은 학 우표 하나를 분실했다는 이유로 모든 계획이 무너질 처지에 놓인 인물의 절박함을 극대화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의문이 남는 것은 그래서 인물이 애초에 사고자 했던 물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극의 시점에 따라 인물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요소로 활용된다. 기대, 초조, 실망 그리고 간절함까지.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구매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기지국>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기지국>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2.
기지국
박세영, 연예지 / 2023 / 극영화 / 31분

"전자파랑 내가 아픈 거랑 아무 상관없는 거 아냐?"

울창한 숲 속의 땅굴로부터 두 사람이 기어 나온다. 처음부터 계속 이렇게 살아온 것처럼 문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두 사람. 이든(연예지 분)과 현호(우요한 분)는 오누이다. 누나 이든은 동생 현호가 전자파로 인해 아프다고 믿고 있다. 동생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 때 시도 때도 없이 코피를 흘리며 항상 피곤해했고,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했었다. 지금 이 숲 속에서 주기적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땅굴을 파고, 전자파 차폐 텐트를 설치하고, 자신들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위장, 은폐하는 이유다. 이렇게 지낸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정작 현호는 자신의 상태가 이런 생활 속에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코피를 흘리고 있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굳이 이렇게 힘든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 생활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누나의 뜻이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함께 따르고 있을 뿐, 도시가 그리운 마음이 훨씬 더 크다. 어느 날, 이들이 머무는 마지막 숲에도 기지국을 설치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 숲도 더 이상 전자파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며 도시의 사정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영화 <기지국>은 기술의 발전과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현시대에 대한 고발이자 경계와도 같은 작품이다. 디지털 디스토피아 속에 갇힌 한 남매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통신 장치와 그를 위한 전자파의 이면을 향하고 있다. 박세영, 연예지 감독은 이 작품의 시작이 20세기 중 많은 시간을 일반적인 관행으로 삼아 온 흡연이라고 말한다. 대중이 담배의 해악에 대해 무지하여 쉽고 빠르게 길들여져 가는 동안 그 너머에 존재했던 산업 및 이해 관계자들의 비도덕적이고 근시안적인 행동에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다.

이제 그 자리는 휴대폰과 인터넷,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위를 언제나 맴돌고 있는 전자파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산업 너머에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는 이들의 모습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두 감독은 세기가 달라지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는 시대의 흔적을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류하는 누나를 뿌리치고 문명의 이기로 가득한 도시로 내려가는 현호의 탈선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충동이 숲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문명에 대한 반동으로 그려진다. 다만 그런 동생을 따라 함께 내려왔지만 이든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그 목적 자체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숲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든이 도시의 도움을 얻고, 동생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문명의 기술을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자발적인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이라면 현호의 말처럼 두 사람이 그 힘든 생활을 계속 이어갈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여기에는 해악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고 일부 피하고 줄이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기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캐쉬백 기지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