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 준비한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은 김태형 전 감독.

팬이 준비한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은 김태형 전 감독. ⓒ 김다은씨 본인 제공

 
7년 연속으로 두산 베어스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김태형 감독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김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두산은 신임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이 없는 이승엽 감독을 '파격 선임'하며 2023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김태형 전 감독은 올 시즌부터 SBS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덕아웃이 아닌 중계석에 앉게 된 가운데, 최근 두산 팬들로부터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팬들은 감사패를 비롯해 유니폼 액자, 사진 액자, 캐리커처 액자, 피규어, 댓글북 등 직접 제작한 기념 선물들을 전달했다. 머플러와 강아지 장난감 등 센스 있는 선물도 건넸다.

김 전 감독은 28일 오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인증 사진을 올리면서 감사함을 표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선물을 어떻게 전달하게 됐을까. 작업을 총괄했던 두산 팬 김다은씨와 28일 오후 연락이 닿았다. 김씨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감독님을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 싶어 준비"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베어스의 10번 타자 중 한 명인 김다은입니다. 처음으로 공에 사인을 받았던 선수이자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양의지 선수 유니폼을 구매해서 야구장에 갔던 2011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두산을 응원했습니다. 현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팬 계정을 만들어 활동 중이고, 여전히 (두산을) 응원 중입니다."

- 언제부터 선물을 전달할 계획을 하셨는지, 또 기획 의도도 궁금합니다.
"지난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10월 8일 키움 히어로즈전) 종료 후 선수단 단상인사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단상인사는 없었고, 시즌이 끝나고 나서 기사를 통해서 감독님의 재계약 불발 소식을 접했습니다. 8년 동안 7번의 한국시리즈를 보여준 감독님을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 싶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전하고 싶은 팬들의 목소리를 담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 김태형 감독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감독님께서 개인 SNS에 2015년 우승 사진을 올리시면서 '그동안 행복했다'고 글을 남겨주셨는데, 팬들도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우리가 이렇게 당신의 야구를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두산의 황금기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 일인데요. 준비 과정에 있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은 '아쉬움이 남지 않게 팬들의 마음을 다 담아낼 수 있는 품목'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댓글북과 감사패, 꽃다발 정도만 생각했는데 팬분들의 의견에 따라 모자이크 액자가 추가됐어요. 또 감독님께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이 내 자부심'이라고 인터뷰하신 것을 보고 유니폼 액자도 추가되면서 점점 품목이 늘었어요(웃음)."
 
 김태형 감독이 받은 유니폼 액자.

김태형 감독이 받은 유니폼 액자. ⓒ 김다은씨 본인 제공

 
- 사진 사용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굿즈 특성상 사진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저작권 문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좋은 일을 하고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사진을 정하고 나서 사진기자님들께 직접 연락을 드렸습니다. 친절하게 도와주신 여러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은 누구였나요?
"제가 이런 것을 처음 하다 보니 좀 막막했어요. 포토샵이 가능한 디자이너 스태프부터, 아이디어 회의를 도와준 스태프분들, 응원 댓글을 정리해준 댓글북 제작 지원자분들까지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가 있을 수 있었기에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또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 패치를 구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도움을 주시겠다고 했던 팬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예상보다 제작 기간이 길어진 점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2월 안에 끝내는 게 목표였는데, 포토 모자이크 액자 제작 과정에서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좀 늦어졌고요. 게다가 저의 본업이 있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모든 작업을 새벽에 해야 했어요. 굿즈에 문제가 없는지 현장에서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 마침내 지난 27일, 직접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이 마련됐습니다. 현장에서 선물을 본 김태형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요?
"팬들의 정성이 들어간 선물의 실물을 엄청 궁금해하셨어요. 중간중간에 제 SNS에 올렸던 제작 과정 사진들을 감독님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감사패 정도만 개봉해서 기념사진을 남길지 고민했는데,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다 보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내심 기분이 좋았습니다. 크기가 컸던 유니폼 액자만 댁에서 사진을 찍고 인증하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웃음)."

- 저도 선물 내역을 봤는데, 그중에서도 감사패가 눈에 띄었어요.
"감사패 문구를 쓸 때 어떻게 하면 두산 팬들의 마음을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작성한 문구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도 유출이 우려돼 그럴 수 없었고 오롯이 저 혼자 고민하여 썼답니다."

- 그리고 약속 대로 이튿날 김태형 감독의 SNS에 '인증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게시물을 보고 너무 뿌듯한 마음으로 웃어서 그런지 집에서 이 모습을 본 저희 어머니께서 '혹시 보너스가 나왔냐'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웃음)."
 
사령탑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김태형 감독에게 전달한 감사패.

김태형 감독에게 전달한 감사패. ⓒ 김다은씨 본인 제공

 
- 지난 시즌 좋지 않은 성적이 팬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법도 합니다. 9위라는 순위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아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8년 중에서 무려 7년 동안, 가장 길게 두산 팬들이 야구를 볼 수 있었잖아요. 행복한 시간을 거쳤지만 선수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팬들의 기대치도 그만큼 높아졌고요. 무엇보다도, FA(자유계약선수) 이적으로 주축 선수들이 여럿 팀을 옮겼습니다."

- 특히 2022년은 김태형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느낌이 더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올겨울에 양의지 선수가 돌아온 것을 보고 아쉬움이 더 커진 것 같아요. 김태형 감독 재임 기간 양의지 선수에게 '부감독'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만큼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는데, 두 분이 함께 두산 유니폼을 입었으면 좋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웃음)."

- 김태형 감독과 함께했던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만 꼽자면, 언제일까요?
"아, 어렵네요. 그래도 저는 2015년 우승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다른 팀들 우승할 때 박수만 치는, 그저 '명품조연'에 그칠 것만 같았던 두산도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팬들에게 알려준 우승이었어요." 

- 유독 이 순간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면서요?
"네, 감독님께서 한국시리즈 4차전 이후 '총력전 펼치겠습니다'라고 인터뷰를 하셨던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 세 글자가 리더로서 김태형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는 울림과 확신을, 팬들에게는 자부심과 안정감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큰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에게 '이런 생각을 갖고 경기를 운영하니까 믿고 보시라'는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아요."

- 두산 팬으로서 '김태형 감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두산다운 야구를 보여주신 감독님'이자 '팬 퍼스트를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리더'입니다."

- '두산다운 야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자면, 어떤 야구일까요?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고, 팬들이 9회까지 경기장을 떠나지 않게 하는 야구예요. 2019년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날(10월 1일 NC 다이노스전)이 그 두산다운 야구를 보여줬던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야구는 분위기가 정말 중요한 스포츠인데, 상대를 압박해야 할 때 압박하는 것도 '두산다운 야구'라고 생각합니다."
 
 올 시즌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김태형 전 감독, SBS스포츠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올 시즌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김태형 전 감독, SBS스포츠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 SBS스포츠

 
- 이제는 마이크를 잡고 야구팬들과 만납니다.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하는 김태형 전 감독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감독님! 한국시리즈 경기만큼이나 기대됐던 것이 감독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신 가을야구 미디어데이였습니다(웃음). 감독님의 입담에 전문성과 내공이 더해져 맛깔나는 해설을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산의 개막전(4월 1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 중계방송사가 SBS이길 바라면서, 그 경기에서 두산이 승리해 김태형 해설위원이 수훈선수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다은씨는 올 시즌부터 두산을 이끌게 된 이승엽 감독에게도 격려를 잊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팀 내 중심타자들이 대체로 부진했는데, 양의지-김재환-양석환 세 선수 모두 활약하길 바란다. 이승엽 감독의 색깔이 두산 베어스라는 스케치북에 잘 칠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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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 김태형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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