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게임> 포스터

영화 <더 게임> 포스터 ⓒ 알토미디어(주)

 
<더 게임>은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헝가리 첩보물이다.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 동구 사회주의권에 속하던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시공간적 배경이다. 공안경찰 첩보부 소속인 언드라시는 막 대령으로 승진했고 동료이자 아내인 에버와 함께 만족스러운 인생을 보내는 중이다. 극 중에서 언드라시 부부의 생활만 봐도 괜찮은 집과 차를 소유하고 있다. 

다만 곧 영전해 모스크바로 갈 예정인 부서의 수장, 장군의 후계를 놓고 동료인 쿨차르 대령과의 보이지 않는 경합이 신경 쓰이는 상태다(정보부서 관계자는 동일한 일반 계급에 비해 직급을 2단계 정도 더 위로 대접받게 마련이니 이들은 상당한 권력층이다). 더 강한 권력과 지위를 누리고픈 이들간 수면 아래 불꽃튀는 경쟁이 벌어질 것임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어느 날 언드라시는 한때 상관이었던 마르코가 소련공산당 기관지에 전쟁영웅으로 소개된 기사를 보게 된다. 과거 스페인 내전 시절부터 활약했던 전설적인 투사인 그와 언드라시는 과거에 심상치 않은 악연이 있다. 마르코는 아내를 병으로 잃었고 본인도 그 충격으로 뇌졸증으로 쓰러진 뒤 오랜 투병생활을 거쳤다. 이제 정치적으로 퇴물이 된 지 오래인데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함께 어쩌면 다시 권력에 접근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도래한다. 앞으로 마르코의 행보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그는 아내 에버, 라이벌 쿨차르와 함께 마르코의 동향을 캐기 위해 사적인 작전에 돌입한다.
 
옛 동료의 딸 어비겔을 돌봐줄 테니 부다페스트로 상경을 권유한 마르코의 편지를 입수한 이들은 어비겔을 중간에 빼돌려 장래를 보장한다며 회유한 뒤 정보원으로 삼는다. 어비겔은 마르코의 집에서 살면서 대학에 진학한다. 언드라시는 어비겔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마르코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지만 정작 그에게선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언드라시의 정보기관원 육감은 무언가 석연찮은 기운을 놓치지 않는다. 한편 안전가옥을 구해놓고 젊고 총명한 어비겔과 접촉하면서 그는 긴장과 불안 가운데 점점 아슬아슬한 상황에 빠져들곤 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모호한 가운데 마르코 또한 과거의 명성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수상쩍은 낌새를 알아챈 듯하다. 아내 에버도 언드라시의 초조함에 점차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짜임새 있는 본격 추리 스릴러의 세계
 
 영화 <더 게임> 스틸 이미지

영화 <더 게임> 스틸 이미지 ⓒ 알토미디어(주)

 
<더 게임>은 참 오랜만에 접해보는 본격 첩보 추리물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성공을 쫓는 자 vs 그가 은혜를 입었지만 이용하고 버렸던 자 vs. 그와 끈끈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독자적인 계산을 하는 자 vs. 이용해야할 대상이지만 내심을 통 포착하기 어려운 낯선 자가 서로 교차하며 엉킬 대로 엉킨 상태로 복잡한 경우의 수를 형성한다. 주요 캐릭터 4명에다 주변의 관련자들까지 도무지 속내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이가 없다.
 
영화 내내 가득 심어놓은 복선과 암시가 속속 드러나긴 하지만 나무는 보여도 숲의 전모는 확인하기 어렵도록 꾸며져 있다. 거기에 더해 어렴풋하게 미심쩍지만 결과가 공개되기 전에는 도무지 실체를 판단하기 힘든 중의적인 장치들이 관객을 속일 함정을 가득 준비해놓은 채 기다린다. 마치 거미줄을 촘촘하게 쳐놓고 끈기 있게 먹잇감을 기다리는 여왕거미의 집념이 가득 깃든 것처럼 종종 느껴질 정도다. 영화가 전부 끝나고 난 뒤에야 본 작품이 얼마나 정교한 구성으로 극중 인물들과 보는 관객들을 동시에 낚아채는지 실감하게 될 테다. 그 트릭들은 직접 영화를 통해 체험해보길 권한다.
 
첩보물이 기존의 여타 추리물들에서 분화되어 나오게 된 상이한 지점이라면 국가라는 거대조직의 사정이 핵심적인 갈등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자연히 스케일 규모가 차이가 확 나게 마련이다. 007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거기에서 늘 빌런의 포지션이던 공산권 정보기관 소속 인물들이 주인공이 된 버전 격이다. <더 게임>은 그런 배경 활용 측면에서도 비밀경찰의 전성기 중 하나인 냉전 치하 동유럽 국가의 정보 기구 내부 암투가 배경이다. 그런 시대 배경의 전용을 고도로 활용하기 때문에 첩보물 장르의 밀도가 극한으로 올라가는 짜임새 좋은 이야기를 구현해낸다.
 
1963년 부다페스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영화 <더 게임> 스틸 이미지

영화 <더 게임> 스틸 이미지 ⓒ 알토미디어(주)

 
<더 게임>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 관객은 1963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소화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막판, 나치독일과 동맹을 맺고 추축국으로 가담해 있던 미클로시 호르티 섭정의 우파 독재정권은 내부에서부터 붕괴된다. 그 무너진 자리에 소련의 통제를 받는 인민공화국이 세워진다. 하지만 1956년에 너지 임레가 집권한 헝가리는 급진적 개혁과 자유주의 정책을모색한다. 하지만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블록에서 이탈할까봐 우려한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을 받고 만다. 헝가리 시민들은 훗날 '헝가리 혁명(의거)'라 불리는 저항을 시도했지만 숱한 희생자를 내고 무력에 진압되고 만다. 그 결과 너지 임레가 처형되는 등 기존 지도부가 소멸한 자리에 카다르 야노시가 모스크바의 승인 아래 새롭게 집권한다.
 
하지만 국내의 여론을 확인한 새 정부는 민의를 그저 무시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헝가리 공산당은 (소련의 눈총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설정한) 상대적인 온건개혁노선을 유지하며 제한적 시장경제와 자유개방 정책 도입을 유지한다. 그런 정책기조 덕분에 <더 게임>에 펼쳐지는 1960년대 헝가리 상황은 그럭저럭 동구권에선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방과 비교하면 답답한 상태를 벗어나진 못한 상태다. 즉 비유하자면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 중에선 제법 괜찮은 처우를 받지만 바깥의 자유와는 비길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시절의 헝가리인 것이다.
 
비교적 온건한 행보를 보이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동구권 맹주인 소련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반체제운동 감시를 위한 경찰국가로 기능하던 당대 헝가리는 제법 안정된 상황이긴 하지만 정작 사회주의의 대의와 이상을 쫓아가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던 상태다. 일단 굶주리진 않은 채 먹고 살만 하고 서방문물도 비교적 자유롭게 유입되는 편이긴 하다. 주요 배경 중 하나인 대학 캠퍼스나 도심지 상점의 분위기는 여느 서유럽이나 미국 도회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코가 자신의 과거 경력과 지위를 이용해 구하려 해도 해외출국 가능한 여권 발급이 거부되는 것처럼, 자유로운 해외여행이나 체제에 대한 도전은 불가능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국외 망명을 꾀하는 지식인 부부를 언드라시와 에버 듀엣이 공동작전으로 체포하는 것만 봐도 겉으론 평온해보이는 당시 헝가리 체제의 기본 속성을 간파할 수 있다.
 
첩보 스릴러로 동구권 '현실 사회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다
 
 영화 <더 게임> 스틸 이미지

영화 <더 게임> 스틸 이미지 ⓒ 알토미디어(주)

 
고위층에 속하는 언드라시와 동료들은 정작 국가의 실제 안보와 국민생활 향상에는 별로 유용한 활동을 펼치는 게 없다. 그들에게 초미의 관심은 소련에서 온건 개혁파에 속하던 당시 권력자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스탈린주의의 후예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세력 간 갈등이 어떻게 결론이 나는지 여부다. (영화 속 시간대에서 1년 후 흐루시초프는 브레즈네프 세력의 쿠데타로 실각한다) 헝가리 정보부 관료들은 모스크바의 향방에 따라 자신들 각자가 쥔 출세와 안정을 담보하는 동아줄이 들썩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적이 정적이나 상급자에게 허물이나 과실로 비쳐질지 늘 초조하게 관망하는 중이다. 그런 첩보부 내의 기류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추구하던 사회변혁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대안사회를 향한 가열 찬 노력이 증발한 대신에 그 빈자리에는 각자의 보신과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 견제와 감시의 이전투구를 벌이며 속고 속이기를 거듭한다. 오직 현재 누리는 자리보전에 최우선 순위를 설정한 현실의 관료주의와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세력을 철저히 감시하는 비대한 권위주의 경찰기구가 존재한다면 과연 그 사회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릴까. 관객은 이미 사반세기 후에 일어난 동유럽 민주화를 통해 그 귀결을 확인한 바 있다. <더 게임>은 시대 배경을 단지 첩보물의 스릴 유지로만 꺼내온 게 아니라 관객에게 그런 징후적인 조짐을 상상하게 만들려 한다.
 
결국 2시간 가까이 관객에게 결말을 기다리게 만들던 이 헝가리산 첩보 스릴러의 뒷맛은 오묘한 반향으로 돌아올 테다. 치밀한 두뇌 게임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승패가 결정되는 과정은 보는 이들을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등장인물들이 매달리던 작전의 결과가 어떤 긍정적인 결실을 맺었는지 살펴보면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누군가는 반전을 이끌어내며 승리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배자로 전락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내부투쟁은 어떤 유의미한 생산적 열매도, 정의의 심판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나마 노장의 안락한 은퇴생활만 차마 실현되지 못 할 거라 체념하던 이들에게 약간의 반전으로 짜릿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정도다.
 
영화 속에서 내내 숨 막히게 진행되던 암투의 결말을 눈으로 확인한 이들이라면 그 당시 동유럽 현실사회주의의 실체와 유기적인 자율이 소거된 채 정체된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1980년대 말 동구권의 붕괴가 왜 그렇게 산사태처럼 휘몰아쳤는지 이해하게 될 테다. 개인의 자유도, 빛나는 미래 낙관도 부재한 중에 그저 답답하고 소모적인 기운만 횡행하던 당대 시대적 초상을 영화는 큰 누수 없이 압축해뒀다 개방해버린다. 그런 역사의 결코 작지 않은 조각들을 전시하는 순도 높은 작업이다.
 
작품정보

더 게임 The Game, A játszma
2022|헝가리|스릴러/드라마
2022.12.08. 개봉|112분|15세 관람가
감독 페테르 퍼자카스
주연 야노시 쿨카(팔 마르코 역), 졸트 너지(언드라시 융 역),
       거브리엘 허모리(에버 역)
출연 페테르 슈체레르(에밀 쿨차르 역), 빅토리어 슈터우브(어비겔 역)
수입 및 배급 알토미디어(주)
 
2022 헝가리 영화 시상식
최고 주연상(야노시 쿨카), 최고 조연상(거브리엘 허모리),
최고 음향상(가보르 발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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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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