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버킷>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버킷>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1.
버킷
김보영 / 2021 / 애니메이션 / 15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뽑아 쓸 수 있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서는 거리 곳곳에 세워진 자판기에서 원하는 것 모두를 뽑을 수 있다. 집이나 공이나 악기 같은 작은 물건에서부터 집이나 탱크까지 없는 게 없다. 심지어는 살아있는 생명체, 강아지나 사람도 필요에 따라 뽑아 쓰고 반납할 수 있다. 산책을 함께할 친구가 필요할 때는 산책 친구 자판기에서, 운전을 대신해 줄 기사가 필요할 때는 운전기사 자판기에서 사람을 뽑아 쓰는 식이다.

김보영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산책>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 체험 공원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이 가상 도시를 통해 현실을 비스듬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비춰낸다. 극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은 한 소녀다. 그녀 역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자판기로부터 꺼내 쓰지만, 문제는 이 자판기를 이용하기 위해서 일정량의 코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필요한 코인을 벌기 위해 직접 자판기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소녀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코인 10개를 모아 음악 도시로 떠나기 위해 오늘도 운전을 하고, 공원 안내도 하며 코인 벌이에 나섰다.

"들으셨어요? 듣고 있나요? 제 말 들리세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체험 도시의 슬로건은 있는 그대로 좋아 보이지만, 결국 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노동으로 교환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기타를 연주하는 일로는 돈을 많이 벌 수 없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로는 기타를 연습할 시간을 마련할 수 없는 아이러니. 때문에 이 도시의 어떤 반납들은 지금까지 간직해온 꿈을 유예하거나 버리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무표정하고 건조한 대사들은 소녀의 작은 외침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겹치며 하나의 의미를 완성해 낸다. 꿈을 좇는 일 따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현재의 사회와 재화를 얻기 위해 쳇바퀴 같은 매일을 이어가는 현재의 우리.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리뷰왕 장봉기>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리뷰왕 장봉기>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2.
리뷰왕 장봉기
신기헌 / 2022 / 극영화 / 19분

"저는 맛이 없으면 리뷰를 남기지 않습니다."

아파트 관리인인 장봉기씨(김종구 분)는 리뷰왕이다. 그는 맛이 없는 가게에는 리뷰를 남기지 않는다. 그가 음식을 시켜먹고 리뷰를 쓰기만 하면 그 가게는 잭팟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리뷰왕의 리뷰가 자신의 가게에 달리기를 기다리기만 할 뿐. 한편 장봉기씨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대표 갑두(황재열 분)는 동네의 작은 식당의 주인이다. 그 역시 리뷰왕의 리뷰를 애가 타게 기다리지만, 감춰진 내막은 잘 알지도 못한 채 주민 대표라는 지위를 갖고 봉기씨를 괴롭히고 무시한다.

단편 영화 <리뷰왕 장봉기>는 시의적절한 소재와 재기 발랄한 연출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변화한 배달 문화와 그 중심에 놓여 있는 리뷰 문화를 소재로 갑과 을의 전복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구현해내고자 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배달을 직접 하는 기사(진아진 분)에게까지 갑두의 갑질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봉기씨가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리뷰로 갑두와의 위치를 역전시키고 맞서 대립하는 이야기가 러닝타임을 통해 그려진다.

이 영화를 연출한 신기헌 감독의 노련함은 이 글의 가장 처음에 쓰인 '맛이 없으면 리뷰를 남기지 않는다'는 대사에 있다. 갑두의 갑질을 처단하기 위하여 리뷰를 쓰고자 하는 봉기씨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나쁜 내용의 리뷰를 남길 것이라는 유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맛이 없으면 리뷰를 남기지 않는 리뷰왕이 그런 의도로 리뷰를 남길 정도면 얼마나 나쁜 내용을 쓸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갑두를 단번에 을의 위치로 강하시키는 장치가 된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에서 등장하는 봉기씨의 결정적인 행위는 이 문장의 의미와 뜻이 조금도 변형되거나 훼손되지 않은 채로 영화 전체를 아우를 수 있게 하기에 일종의 복선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이 대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그 영리한 선택에 놀라게 될 것이다.

리뷰의 등록과 관련한 일련의 난장이 끝나고 난 후에 영화를 마무리하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서로를 공격하기에 급급하고 상대의 잘못을 덮어주거나 두둔할 줄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 속 사회와는 달리, 악을 악으로 벌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안는 모습은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온점과도 같다. 별점 테러와 같은 리뷰의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의 정석적인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한 끼의 배달 음식을 잘 대접받은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트랜짓>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트랜짓>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3.
트랜짓
문혜인 / 2022 / 극영화 / 28분

조명기사 미호(우지현 분)는 현장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장의 몇몇 동료들은 그가 참여했던 전작 <밤차>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현장 복귀를 반긴다. 랜턴 2개만으로 조명을 만들어낸 초반 10분이 이 영화의 백미란다. 하지만 모두가 그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느니 정신적인 문제라느니 하는 뒷담화들이 그의 곁을 맴돈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견디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이모라고 알려줘도 굳이 삼촌이라 부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역 배우 백호(김규나 분)도 사실 불편하다. 그는 트랜스젠더다.

문혜인 배우의 연출작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작품 <트랜짓>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고자 하는 두 인물 미호와 백호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서로가 불편했던 두 인물이 의도하지 않게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두 인물의 접점은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상황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연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현장에서도 집에서도 혼자라서 외로운 백호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성전환 수술을 받았지만 외로운 미호가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톤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두 인물이 현재 놓여 있는 현실의 반영과도 같다. 각자의 진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겪게 될 수많은 부정적 상황과 감정들을 영화는 부정하거나 억지로 밝게 그려내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의 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의지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백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미호의 모습도, 미호의 사고 소식에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더 아파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도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 영화를 완벽히 매듭짓는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영화편지>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영화편지>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4.
영화편지
유시형 / 2022 / 극영화 / 25분

다섯 사람이 숨을 죽인 채 담을 넘는다. 작은 소리에도 움찔하는 이들은 지금 무언가를 공모 중이다.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까지 따고 들어가 집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는 사람들. 이들은 이제 집안 곳곳으로 흩어져 작은 스크린도 설치하고, 춤도 추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녹음하고 촬영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말 한마디 없이 사전에 모든 것이 계획이라도 되어 있었다는 듯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다섯 남녀. 그들의 행동이 대사 한마디 없이 이어지는 동안 영화는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볼 따름이다.

유시형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 <영화편지>는 어쩐지 기묘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촬영 방식과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서 지금 이 시대에 영화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으로부터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그는 영화가 금지된 시대를 상정하며 극을 완성했다고 한다. 기억이 머물러 있는 어떤 공간에 도착한 다섯 사람이 각자의 방식대로 사라진 영화를 생각하고 추억하는 것이다. 흑백에서 컬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영화의 발전이 이루어져 온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톤이 다운된 방식으로, 대사를 잃어버린 형식으로 극을 끌고 가는 것은 지극히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사소한 문제 하나는 영화가 스스로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인 대사가 존재하지 않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해석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감독의 연출 의도와 작법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 다섯 사람과 가까운 존재의 부재를 추모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스토리가 두드러지고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품의 경우에도 감독의 의도와 관객의 이해가 서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 자유도가 너무 높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유시형 감독은 관객이 다양한 시선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좋은 면이라고 하면서도 이 작품의 경우에는 현재는 자취를 감춘 고전적 의미의 영화들의 부재를 추모하는 느낌도 분명히 담겨 있다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극 중 다섯 인물은 또 다른 곳을 향해 길을 떠난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영화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모든 매체의 발전 과정과 이제 지나간 옛 기술과 포맷에 대한 그리움이나 안타까움과 같은 마음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영화편지'라는 타이틀의 뜻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영화로 만들어진 편지가 아니라 이제 떠나간 영화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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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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