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FIFA(국제축구연맹) 카타르월드컵에서 연일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현재 조별리그가 2라운드에 돌입한 가운데 아직 팀당 1-2경기 밖에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우승후보들의 발목을 잡는 '언더독들의 반란'이 이어지며 누구도 16강행을 장담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혼전 양상에 빠져들고 있다. 개막 전 피파랭킹의 격차나 전문가들의 예상을 무색케하는 결과다.
 
2라운드의 첫 이변은 A조에서 에콰도르가 네덜란드의 발목을 잡았다. 26일 오전 1시(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칼리파 국제경기에서 열린 A조 2차전서 1-1, 네덜란드와 에콰도르는 무승부로 승점 1점씩을 나눠가졌다. 네덜란드는 FIFA 랭킹 8위, 에콰도르는 44위다.
 
양팀은 지난 1차전에서 나란히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2연승에 도전하는 상황이었다. 네덜란드는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코디 각포가 지난 1차전 세네갈과의 선제 결승골에 이어 전반 6분만에 다시 한 번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에 맞서는 에콰도르에게는 에네르 발렌시아가 있었다. 1차전 카타르전에서 멀티골을 이끌었던 발렌시아는 후반 4분 동점골을 터뜨리며 3골로 대회 득점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에콰도르의 전설인 발렌시아는 모국이 최근 월드컵 본선에서 기록한 6골을 모두 홀로 터뜨리는 괴력의 신기록을 썼다. 발렌시아는 지난 2014년 브라질 대회 스위스전(1골)-온두라스전(2골)을 포함하여 이번 대회에 기록한 3골까지 월드컵 통산 5경기 6골(2018년 월드컵은 탈락 으로 불참)으로 이미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에콰도르의 역대 월드컵 개인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다.
 
네덜란드는 다른 우승후보들에 비하여 비교적 수월한 조편성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난한 조별리그 통과가 예상되었으나 뚜껑을 열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차전에서도 간판스타 사디오 마네가 정강이뼈 부상으로 낙마한 세네갈을 상대로 팽팽한 승부를 벌이다가 후반 40분 이후에야 2골을 터뜨리며 겨우 승리한 바 있다.
 
에콰도르전에서도 네덜란드는 고작 슈팅 2개(유효슈팅 1개)에 그치며 오히려 비긴 게 다행일 만큼 제대로 된 공격을 거의 하지 못했다. 경기 초반에 터진 득점 상황을 제외하면 이후로는 골대로 향한 슈팅이 전무했다. 유럽예선에서 14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던 에이스 멤피스 데파이가 부상 때문에 월드컵에서 선발출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공격력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언더독으로 예상되었던 에콰도르는 슈팅 14개(유효슈팅 4개)를 퍼부으며 네덜란드를 강하게 밀어붙여서 더 많은 득점찬스를 만들어냈다. 네덜란드는 첫 경기였던 세네갈과의 경기에서도 슈팅숫자에서 7-11로 밀렸다. 2경기 연속 중원싸움에서 밀리며 골키퍼 안드리스 노퍼르트의 선방, 중원싸움의 열세를 높이와 역습으로 간신히 만회한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조 선두를 지킨 네덜란드는 최종전이 최약체인 개최국 카타르전이라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언더독 팀들에게도 고전하는 이런 경기력이라면 토너먼트에서 만날 우승후보들을 상대로는 가망이 없다는 평가다. 한편 세네갈과 에콰도르는 최종전에서 16강 진출을 놓고 단두대 매치를 펼쳤다.
 
반면 개최국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에서 1호 탈락이라는 불명예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1차전에서 에콰도르에게 0-2로 패했던 카타르는, 25일 열린 세네갈과의 2차전마저 1-3으로 완패했다. 네덜란드와 에콰도르가 비겨서 나란히 승점 4점을 확보하며 카타르는 네덜란드와의 3차전 경기결과와 무관하게 탈락이 확정됐다. 카타르는 후반 33분 교체투입된 모하마드 문타리가 카타르의 역사적인 월드컵 1호골을 기록한 데 작은 위안을 삼아야했다.
 
역대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남아공은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승점 4)를 기록, 우루과이(2승 1무ㆍ승점 7), 멕시코(1승 1무 1패ㆍ 승점 4)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미 카타르는 2경기 만에 개최국 사상 가장 빠른 조기탈락-첫 2연패-역대 최저 승점(네덜란드전 결과와 무관) 등 각종 불명예 신기록을 경신하게 됐다.
 
이어 B조에서는 이란이 웨일스를 2-0 '극장승'을 거두며 아시아의 돌풍을 이어갔다. 이란은 25일 B조 2차전에서 후반 45분까지 웨일스와 0-0으로 비기며 무승부를 기록하는 듯 했으나, 후반 추가시간에만 루즈베 체시미(후53분)과 라민 레자이안(후56분)의 연속골이 터지며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이란은 이번 월드컵의 특징인 'VAR 판독'과 '고무줄 추가시간'의  수혜자가 됐다. 후반 39분 웨일스의 헤네시 골키퍼가 이란 역습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메흐디 타레미와 강하게 충돌하면서 VAR 판독 끝에 1호 퇴장을 당했다. 수적 우위를 확보한 이란은 경기막판 파상공세로 웨일스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이란의 2골은 정규시즌이 끝나고 후반 추가시간 8분과 11분에 터졌다. 무의미한 시간 지연을 방지하고 실제 경기시간을 늘리겠다는 피파의 과감한 정책 덕분에 이란은 값진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이란은 1차전에서 잉글랜드에게 충격적인 '식스투'(2-6) 참패를 당하며 전망이 어두웠으나 웨일스를 잡고 1승 1패 승점 3점(골득실 -2)으로 B조 2위에 올라 마지막 미국과의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의 희망을 이어가게 됐다. 이란의 승리는 아시아 국가로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일본에 이어 3번째다.
 
호주를 포함하여 총 6개국이 출전한 아시아는 이번 대회에서 비록 개최국 카타르가 2연패로 조기탈락했지만, 모처럼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통 강호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다. 다수의 월드컵 우승경험을 자랑하는 강호 독일(VS 일본)과 아르헨티나(VS 사우디)가 아시아 돌풍의 희생양이 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정면승부 끝에 대등한 경기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현재까지 아시아 국가가 기록한 성적은 3승 1무 4패다. 한국과 일본이 동반 16강진출에 성공했던 2002 한일대회-2010 남아공 대회 이후 아시아의 최고성적도 기대해볼만 하다는 평가다.

또다른 우승후보로 꼽히던 B조의 잉글랜드는 2차전에서 미국과 0-0으로 비기며 2연승에 실패했다. 피파랭킹 5위의 잉글랜드에 비하여 미국은 16위로 선발명단에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가 전무할만큼 전력차가 컸다. 하지만 이란과의 1차전에서 6골을 터뜨렸던 잉글랜드의 뜨거운 화력은 미국의 탄탄한 중원과 수비벽 앞에서 차갑게 식었다. 특히 후반에는 시작과 함께 약 40분간 미국의 공세에 밀려 슈팅을 한 개도 때리지 못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오히려 잉글랜드는 전반 33분에는 미국 크리스천 풀리식의 왼발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며 선제골을 내줄뻔한 아찔한 장면이 나오며 가슴을 쓸어내려야했다. 잉글랜드는 미국과의 역대 전적에서 8승 2무 2패로 압도하고 있지만, 월드컵 본선만 놓고보면 2무 1패로 한번도 이기지못하는 징크스를 이어갔다. 잉글랜드는 역사적으로 민감한 관계에 있는 웨일스와의 최종전 결과에 따라 자칫 16강 진출도 장담할수 없다는 부담을 안게됐다.
 
20년전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한일월드컵은 '강팀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당시 아르헨티나-포르투갈 등 우승후보들이 조별리그에서 줄줄이 탈락했고, 토너먼트에서도 이탈리아-스페인 등이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카타르월드컵 역시 대회 초반이지만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아직까지 연승팀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자칫 모든 조가 마지막까지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죽음의 조'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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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 네덜란드 잉글랜드 언더독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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