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아이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는 따로 하나의 장르로 떼어내도 될 정도다. 무려 4편까지 나온 <벤지> 시리즈와 똑똑한 양치기개 콜리를 내세운 <래시> 시리즈 등 개가 등장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동물과 인간의 유대는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시장을 넓힌 할리우드 영화계에 좋은 소재를 제공했다. 언어를 넘어 보편적인 감동을 자아내 장기적인 할리우드 키드를 양산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나온 <프리 윌리> 시리즈가 좋은 예다. 범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채 2000만 달러를 들이지 않았음에도 무려 1억 5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뒀다. <프리 윌리>는 이후 TV 영화를 포함해 4편까지 시리즈가 나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가 있다. 범고래보다도 연기를 시키기가 어렵다는 새를 이용해 찍은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 이후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하늘을 나는 장면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발견한다. 캐나다의 발명가이자 화가인 빌 리슈먼이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기러기 떼를 캐나다에서 미국 버지니아주로 이주시킨 실화다. 영화 제작진은 그를 고용해 실제 기러기와의 교감 및 스턴트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동물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아름다운 비행>이다.
 
스톰보이 포스터

▲ 스톰보이 포스터 ⓒ (주)땡스앤러브

 
은퇴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야기

여기 또 한 편의 아이와 새의 교감을 다룬 영화가 있다. 2019년 작 호주영화 <스톰보이>다. 여러모로 <아름다운 비행>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새는 아시아부터 북미, 유럽, 호주 등에 널리 분포하는 대형 철새 펠리컨이다.

호주가 낳은 명배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제프리 러쉬가 주연한 영화는 한 은퇴한 사업가와 손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마이클(제프리 러쉬)은 애지중지하던 딸을 잃은 뒤 일궈놓은 사업을 사위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난 사업가다. 그에겐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녀(모건 데이비스 분)가 있는데, 손녀는 제 아빠의 일을 멈춰달라고 할아버지를 들들 볶는다. 이유는 아빠가 벌린 사업이 철새들의 도래지를 망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현실적인 이유로 손녀를 설득하려 들지만 손녀는 굽히지 않는다. 손녀가 성인이 되어 이사회에 들어오기까진 아직 몇 년이나 남았기에 그녀는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설득해 아빠를 막으려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손녀는 그들이 사는 바닷가 저택에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이내 할아버지의 어릴 적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스톰보이 스틸컷

▲ 스톰보이 스틸컷 ⓒ (주)땡스앤러브

 
펠리컨과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

마이클은 어릴 적 펠리컨을 키운 일이 있다. 아버지와 둘이 호주의 외딴 해안에 살던 시절의 일이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마이클은 집 주변을 쏘다니며 온갖 것을 갖고 논다. 그러다 어느 날 펠리컨들을 만난다.

여느 때처럼 놀던 중 총소리를 들은 마이클이 소리가 난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곳엔 총에 맞은 펠리컨들이 떨어져 있다. 마이클은 그곳에서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어린 펠리컨 세 마리를 본다. 이후 영화는 마이클이 그 새들을 돌보고 키우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쉬이 예상할 수 있듯, 새로 떠올린 과거가 현재의 마이클을 바꾼다.

새가 어린 시절 본 무엇을 어미로 여기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현상이다. 한국말론 각인, 영어로는 imprinting이라 불리는 현상으로, 생후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만나는 존재를 어미로 각인한다. 마이클이 발견한 펠리컨들은 마이클을 어미로 여긴다. 마이클은 새들을 키워내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는다. 그 과정이 <스톰보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사실 비슷한 영화가 없지는 않다. <스톰보이>와 같은 해 나온 프랑스 영화 <아름다운 여행>도 기러기를 데리고 유럽대륙을 가로지르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뤘다. 나오는 새가 기러기란 점이나 이들과 함께 비행을 한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여행>은 <아름다운 비행>과 닮은 점이 많다. 반면 <스톰보이>는 새도, 이야기도 상당 부분 다르다. 나름대로 액자식 구성에 제프리 러쉬의 안정된 연기가 영화의 멋을 더한다. 무엇보다 소년과 야생동물 간에 싹튼 우정은 공간은 물론 시간이 흘러서까지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이번 글이 꼬셔낸 예비 관객이 제법 있으리라 믿는다.
 
스톰보이 스틸컷

▲ 스톰보이 스틸컷 ⓒ (주)땡스앤러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톰보이 (주)땡스앤러브 숀 시트 제프리 러쉬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