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 22일 중국과 월드컵 1차전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9월 22일 호주 시드니에서 개막하는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다. 우리나라는 22일 오후 4시 30분(한국시간) 중국과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사진은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FIBA 인터넷 홈페이지 사진)

▲ 한국 여자농구, 22일 중국과 월드컵 1차전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9월 22일 호주 시드니에서 개막하는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다. 우리나라는 22일 오후 4시 30분(한국시간) 중국과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사진은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FIBA 인터넷 홈페이지 사진) ⓒ 연합뉴스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22 FIBA(국제농구연맹) 여자농구월드컵에 도전했던 '정선민호'의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표현이다. 비록 1승으로 최소한의 자존심은 세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농구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암울한 현실도 확인했다. '희망'과 '희망고문' 사이의 분기점에 놓여있는 한국 여자농구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정선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지난 27일 푸에르토리코 전을 끝으로 호주 농구월드컵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대표팀은 조별리그 A조에서 1승 4패로 5위에 그쳐 조 4위까지 주어지는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16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대표팀은 에이스 박지수가 대회 직전 공황장애 증세를 호소하며 전력에서 이탈하는 초대형 악재를 맞이했다. 여기에 배해윤-최이샘 등도 결장하며 가뜩이나 국제대회에서 열세인 높이가 더욱 약해졌다. 우려한 대로 한국은 대회 내내 리바운드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한 수 위의 힘과 높이를 갖춘 상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12개 나라가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서 FIBA 랭킹 13위 한국은 미국(1위), 벨기에(5위), 중국(7위), 푸에르토리코(17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26위)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일찌감치 최약체 후보로 꼽힌 한국은 우려한 대로 패배한 4경기에서 모두 일방적인 대패를 당했다.
 
중국과의 첫 경기(44-107)를 시작으로 벨기에(61-84), 미국(69-145), 푸에르토리코(73-92)전은 모두 사실상 전반에 일찍 승부가 갈린 '가비지타임' 완패였다. 그나마 가장 점수차가 적었던 푸에르토리코전이 19점차였고, 세계 최강 미국전에서는 무려 76점차로 벌어졌다. 패배한 경기의 평균 점수차는 무려 45.25점에 이르렀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평균 69.2점을 득점하고, 98.8점을 실점하며 평균 -29.6점의 공수마진을 기록했다. 33점차 대승을 거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을 제외하면 득점은 61.75점으로 줄고 실점은 무려 107점까지 상승한다. 사실상 만만한 1승 제물이자 동네북이나 마찬가지였다.
 
달갑지 않은 기록들 경신

좋지 않았던 경기내용만큼이나 정선민호는 이번 대회 내내 '기록제조기'라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수식어를 얻었다. 첫 경기였던 중국전에서 63점차는 역대 한중전 최다 점수차 패배다. 지난 2020년 2월 세르비아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60-100, 40점차로 패하며 세운 종전 기록을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경신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미국전에서는 '농구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최다실점'이라는 또다른 불명예 신기록을 작성했다. 농구가 아무리 다득점 스포츠이고 상대가 세계 최강 미국이었다고는 해도 145실점은 충격적이다. FIBA에 따르면, 145점은 1953년 여자 월드컵이 시작한 이후 1990년 브라질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올린 143득점 기록을 무려 32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제물로 역대 최다득점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물론 좋은 기록도 있었다. 세 번째 경기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강이슬의 37점 맹활약을 앞세워 대승을 거두며 2010년 체코 대회 일본전 이후 무려 12년만의 월드컵 본선 1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강이슬은 보스니아전에서 37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3점슛 7/14 50%, 야투 13/21 61.9%)의 맹활약을 선보였다. 경기당 선수 공헌도 효율지수(Efficiency) 44점으로 2018년 호주의 센터 리즈 캠베이지(2018년 대회 4강 스페인전, 33득점 15리바운드 4블록슛)가 기록했던 효율지수 41점을 뛰어넘은 농구월드컵 신기록을 작성하며 FIBA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는 '인생경기'를 펼쳤다.
 
정선민 감독은 8강 탈락으로 대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고, 귀중한 1승도 거둘 수 있었다"며 대회를 총평했다. "우리 선수들이 월드컵같은 큰 무대를 경험해볼 기회가 부족하다. 젊은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서도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펼쳐줬고 희망을 봤다. 이런 대회를 통해서 선수들이 많이 배우고 자신들이 어떤 점을 발전시켜야 할지 느낀 게 수확이이라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감독과 선수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에이스 박지수가 있었다면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다른 누가 나섰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성과를 올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초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고생한 감독과 선수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지원, 투자 빠진 여자농구... 일본-중국 사례 보라

하지만 희망으로 적당히 미화하기에는 한국 여자농구의 현실이 너무 암담하다.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의 경우, 전주원 감독이 이끈 한국은 비록 조별리그에서 전패를 당했지만 세계적인 강호 스페인(69-73), 세르비아(61-65) 등과 막판까지 접전을 펼치며 끈끈한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점수차가 벌어진 캐나다전(53-74)전에서도 마냥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고 제법 상대를 괴롭혔다. 물론 당시는 박지수가 건재한 것을 비롯하여 전력누수가 적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하여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의 경쟁력은 오히려 퇴보했다. 이는 박지수의 공백이나 정선민 감독의 역량 문제를 떠나 한국 여자농구의 근본적인 한계에 가깝다. 주전급 선수 1~2명만 빠져도 사실상 대안이 없을 만큼 선수층이 빈약하고, 대표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나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여자농구의 현실에서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던 일본이 과감한 투자와 과학적인 육성을 바탕으로 도쿄올림픽 은메달까지 차지했던 것은, '졌잘싸'와 희망고문에만 안주하는 한국농구의 현실과 비교하여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본 대표팀의 평균신장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기술과 조직력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또한 이미 아시아 최강이던 중국은 풍부한 인적자원과 신체조건을 앞세워 한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일본과 중국 여자농구의 지속적인 성장과 세계무대 도전은, '동양인은 농구라는 종목에 불리하다'는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반면 한국농구의 여자농구 유소년 인프라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여자농구는 전주원, 정선민, 정은순, 박정은, 변연하, 이미선, 김지윤 등 각 포지션에 걸쳐 확실한 스타급 선수들이 있었고 이들은 국제무대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제는 박지수 정도를 제외하면 국제무대에서 통한다고 말할 만한 선수가 손에 꼽는다.
 
박지수가 없었던 여자대표팀은 이번에도 사실상 외곽슛에 의존하는 '양궁농구'를 펼쳐야했다. 골밑이 장악 당한 상황에서 확률이 떨어지는 3점슛으로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푸에르토리코전에서는 3점슛이 무려 15개나 터졌음에도 이미 초반에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힘과 높이에서 뒤진 선수들은 체력과 몸싸움에도 상대 선수들보다 열세였다. 단지 정신력이나 조직력으로 극복하기에는 선수들 개인의 기량차가 워낙 큰 데다 국제 경험마저 부족한 선수들은 한 번 흐름을 빼앗기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일쑤였다. 정선민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은 데 의미를 부여했지만, 장신가드 박지현 정도를 제외하면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친 선수는 많지 않았고, 식스맨이었던 유망주 윤예빈은 대회 중 십자인대파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토종선수 보호를 명분으로 WKBL에서 외국인 선수제도가 폐지되면서 겉으로 국내 선수들의 기록과 몸값은 상승했지만, 정작 선수들의 실질적인 기량 향상과 육성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외국인 선수 폐지 이후에 박지수의 독주만 더 심해졌을뿐 수준급 빅맨 자원 육성은 지지부진하다.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과 경험할 기회를 상실한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자신보다 크고 빠른 해외 선수들을 만났을 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구월드컵을 대비하면서 대회보다 한 달이나 전에 열린 라트비아와 두 번의 국내 평가전을 제외하면 대표팀의 전력 강화를 위한 별다른 노력도 없었다. 농구월드컵에 대한 관심도 없고 협회의 구체적인 지원이나 비전도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야할 만한 절실함과 동기부여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분야이든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와 시간, 계획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여자농구는 이번 농구월드컵에서 오히려 더 높아진 '세계의 벽'만을 다시 확인했다.

이웃나라 라이벌들은 한 발자국씩 앞서나가고 있는데 한국 여자농구는 몇몇 유명 선수들의 이름값에만 기대고 있을뿐 더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슈퍼스타 김연경의 대표팀 은퇴 이후 암흑기를 맞이한 여자배구대표팀의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 역시 지금으로서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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