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새와 돼지씨 포스터

▲ 작은새와 돼지씨 포스터 ⓒ 필름다빈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대단했던 시절이 있었다. 방송국이 얼마 없고 프로그램도, 심지어는 텔레비전조차 귀했던 시절 이야기다. 손바닥만 한 휴대폰에서 세상만사 모든 이야기를 다 찾아볼 수 있는 요즘 같은 때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카메라가 귀하니 앞에 서는 건 늘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대통령부터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어쩌다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까지, 주변에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을 텔레비전에서 보는 건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카메라는 그렇게 권위가 됐다. 특별한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 도구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권위가 깨져나가는 시대다.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전파를 산 이들만 쓸 수 있다고 여겨지던 공중파 방송의 권위를 케이블 채널들이 위협하더니, 이제는 아예 골방에서 카메라 하나로 찍고 편집하는 각종 크리에이터들이 방송국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한다. 너도나도 방송국이 되고 특별한 사람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시대다. 모두가 모두를, 전 시대의 권위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컷

▲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컷 ⓒ 필름다빈

 
딸이 찍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여기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카메라를 든 건 어느 가정의 다 자란 딸이다. 1985년생으로 실험적인 단편 몇을 찍은 경험이 있는 감독이 이번엔 제 부모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자연히 영화의 주인공은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 이들 가족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대개 그러하듯 뜯어보면 특별하고 멀리 보면 평범해진다.

영화는 큰 고민 없이 제 부모의 일상을 뒤따른다. 다른 많은 가족들이 그렇듯 이들에게도 나름의 특징이랄 게 하나 있는데 영화 위에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는 글쓰기를 즐겨하고 어머니는 그림 그리길 즐겨하며 딸은 영화 찍기를 즐겨한다는 것이다. 곧 이들은 모두 무언가를 만들어내곤 하는데, 만들어지는 것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란 점에서 예술이 이들 가족의 화두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시대 젊은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편지로 깊어졌다. 아버지는 특유의 낭만적인 글로 어머니에게 다가섰고, 어머니는 마음 담은 편지 위에 정성 들인 그림을 덧붙여 아버지를 사로잡았다. 감독은 둘 사이에 오간 편지를 그대로 화면에 띄워 관객이 그 순간을 나누도록 한다.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컷

▲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컷 ⓒ 필름다빈

 
글쓰는 아버지와 그림 그리는 어머니

이들의 오늘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웃게 한다. 아버지는 귀퉁이 찢어진 낡은 종이 위에 나름의 글을 써내려간다. 제대로 된 시라고 보긴 어려운 언어의 나열이지만 쓰는 이를 즐겁게 하는 글인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늘 넉넉한 풍채만큼이나 넉넉한 웃음을 흘린다. 제 글과 닮은 낭만적인 말투로 흘러온 오늘을 담담히 받아낸다.

어머니도 여적 그림을 그린다. 취미삼아 그리던 것을 조금씩 배우고 발전시켜 개인전까지 열 정도가 되었다. 주변에선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제법 생겼다고 했다. 감독은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카메라 너머로 넘겨보며 이제껏 알지 못했던 그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글과 그림은 버거운 현실을 이겨내는 창구였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아버지는 시인이었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어머니는 화가였으니까.

글과 그림이 감독의 부모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었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들의 그런 감성이며 노력이 닿아 제 자식에게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담아내게끔 이끌었을지 모를 일이다.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컷

▲ 작은새와 돼지씨 스틸컷 ⓒ 필름다빈

 
감독에게 묻는다, "이건 예술인가?"

김새봄 감독은 시종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제 부모를 바라본다. 작은새는 어머니며 돼지씨는 아버지로.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 묻는다. "아빠는 자기가 예술가라고 생각해?"하고, 또 "엄마는 자기가 예술가라고 생각해?"하고 말이다. 아버지는 자기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 답하고, 어머니는 아마추어 화가라고 말한다.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프로는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관객에게 가 닿는다.

영화는 비록 예술과 프로에 대한 별다른 통찰 없이 흘러가고 말지만 부부가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은 그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난 거의 모든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부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리라.

때로 어떤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영화 안팎에 담긴 마음이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때로 어느 영화는 그저 찍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를 만들고 다큐를 찍고 예술과 가까운 무엇을 하려는 창작자라면 마땅히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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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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