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멋진 세계> 포스터

영화 <멋진 세계>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1_제법 오래 기다렸던 감독의 신작
 
당대 일본감독들 중 신작을 주시하는 몇몇의 일원인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신작이 곧 개봉한다. 이 감독의 영화는 일단 잔잔하게 느껴지지만 결코 빤하거나 가볍지는 않다. 격렬히 밀어붙이는 돌파와 직진의 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안일하다거나 문제를 회피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이면을 단순하지 않게 응시하고, 남은 거들떠보지 않을 지점도 곱씹어가며 꾹꾹 눌러쓰고 담아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후련하거나 화끈한 느낌은 덜하지만 꽤 오래 생각해볼 거리를 남기는 여운이 가득해 두고두고 곱씹게 만든다.
 
1974년생. 히로시마 출신으로 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니시카와 미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스태프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고레에다 감독과는 오랜 인연과 교류를 이어오는 중이다) 2006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진출하고 마이니치영화콩쿠르대상을 수상했던 <유레루> 이후로 이 감독의 작품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블루리본 감독상 수상작인 2009년 <우리 의사 선생님>, 2012년 <꿈팔이 부부 사기단>, 그리고 2016년 작품인 마이니치영화콩쿠르감독상 수상작 <아주 긴 변명>을 본 후로 한동안 작품 소식이 뜸했던 기억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작업 스타일은 쑥쑥 신작을 뽑아내주는 스타일보다는 비교적 과작에 가깝다. 물론 쉬다 심심하면 영화를 작업하는 그런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로도 필력을 뽐내는 감독이라 자신의 영화 대부분은 본인이 직접 쓴 소설이나 각본에 기반하고 있다. 국내에 작가로 집필한 에세이집이 세권쯤 출판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런 감독의 제법 오랜만인 신작이 도착했다. 그런데 거의 처음으로 본인이 아닌 다른 작가의 원작을 가져왔다고 한다. 사키 류조의 소설 <신분장>이 문제의 원작이다. 얼마나 대단한 작가이기에 한 글 솜씨 하는 걸로 알려진 감독이 최초로 원작 각색을 감행했는지 궁금해 작가를 검색해본다.

세상에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 원작자였다! 하드보일드한 사실주의 작풍으로 이름 높았던 작가답게 <복수는 나의 것>도 실제 발생한 사건, '니시구치 아키라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본 작품의 원작인 <신분장> 또한 실제 인물의 사연을 기반으로 써진 것이라 한다. (아쉽게도 국내엔 정식 발행은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원작이 30여 년 전에 쓰인 것인지라 영화 속 시간대인 2019년을 배경으로 감독이 상당부분을 현재화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2_일본 '국민배우'의 비길 데 없는 존재감
 
감독과 원작에 이어 영화에 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건 주인공 '마사오'를 맡은 일본의 몇 안 되는 '국민배우'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명배우, 야쿠쇼 코지의 존재감이다. 본 작품 <멋진 세계>는 요즘 영화답지 않게 이것저것 테마별로 여러 종의 포스터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에 오직 단 1개의 포스터만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이것만으로 영화의 색깔과 주제의식을 압축해버리는 마력을 발산한다. 그 메인 포스터의 중심엔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주연배우 야쿠쇼 코지가 산봉우리 마냥 응시하고 서 있다.
 
근래에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작이자, 현대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1997년 작품 <큐어>가 무려 25년 만에 지각 개봉중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사반세기를 초월해 그의 과거와 현재의 색깔이 서로 다른 명연기를 함께 확인할 기회가 생긴 셈이다. 일단 <멋진 세계>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그 말고 누가 이 캐릭터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아득해질 정도로 몰입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그만큼 영화 속 마사오를 맡은 그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불민하여 배우의 연기를 온전히 구분하지는 못하지만 영화 속 야쿠쇼 코지는 실제 현실의 인물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장담한다.
 
야쿠쇼 코지의 어마어마한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를 돕는 다른 배우들의 캐스팅도 대충 이뤄지진 않은 모양새다. 주인공 미카미 마사오가 온몸으로 끌고 나가는 이야기 구조이지만 그의 주변에 포진해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 또한 제 몫을 해내며 실제 주변 이웃의 얼굴을 한 채 스크린을 메우고 있다. 일본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이라면 이름은 외우지 못해도 얼굴은 눈에 익은 배우들 - 사회복지사 역의 키타무라 유키야, 야쿠쟈 의형제 역 하쿠류, 신원보증인 역 하시즈메 이사오 등 - 외에도 주연급 배우이자 청춘스타인 나가사와 마사미와 나가노 타이가가 비중 있는 역할을 소화해낸다.
 
주인공이 워낙 총천연색 연기를 골고루 다 소화해버리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덜 조명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세계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관객의 공감대를 얻을만한 현실적 캐릭터를 각자 고루 나눠 소화해내는 조화에 주목해서 영화를 소화한다면 좀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낼 법하다. 그만큼 조역들도 개개의 매력과 특징이 '살아 있다.'
 
3_과거의 일본을 상징하는 '야쿠자' 쇠락을 활용하다
 
다음으로 영화의 주요 키워드가 되는 건 일본을 상징하는 (부정적) 아이콘 중 하나인 '야쿠자'란 존재가 현재 일본사회에서 맞이한 명암이다. 일본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인 '와패니즘'에서는 야쿠자가 과도하게 낭만적으로 미화된 캐릭터로 등장해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한국의 조폭미화물이 이제는 상업영화에서도 종말을 맞이한 것에 비해 야쿠자는 여전히 일본영화의 단골소재다. 물론 다루는 방식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실제 조직폭력배의 말로라는 게 대부분 빤한 것처럼 많은 부분에서 현실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일본에선 1990년대 이후 거듭 강화된 야쿠자 부류의 범죄단체 처벌법 때문에 조직원이 급감한 상태다. 게다가 특히 조직의 활력을 유지해주는 신입 조직원 유입이 거의 사라져버려 고령화가 극심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힘쓰는 일을 주로 하는데 50대 이상이 과반을 차지한다고 통계에 드러난다) 물론 기반을 확고히 한 대형조직 상층부는 사업을 합법화 및 다각화해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중간 이하나 하부말단조직은 와해되고 그 빈자리를 외주하청을 주듯 '한구레'(외톨이 범죄자나 소집단)나 외국 갱단에 맡겨 처리하는 방식으로 변화된 상태다.
.
<멋진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현실은 야쿠자가 나이 먹고 끈은 다 떨어진 상태로 오랜 격리 끝에 바깥세상에 나오면 어떤 대접과 상황 하에 놓이는지를 세밀히 묘사한다. 그런 내용의 영화이기에 본 작품은 아주 당연한 수순인 것 마냥 그런 주인공 마사오를 대하는 현재 일본사회의 표정을 민낯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주력한다. 야쿠자가 일본사회와 문화의 일부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만큼 야쿠자가 현재 일본사회에서 받는 취급은 곧 일본사회 자체의 평가와 진단으로 전환된다. 감독이 노리는 바다.
 
4_'마사오짱'의 사회적응 수난기
 
 영화 <멋진 세계> 스틸

영화 <멋진 세계> 스틸 ⓒ (주)엣나인필름

 
마사오는 14살에 처음 소년원에 들어간 후 갈 곳이 없어 야쿠자 주변을 배회하다 일원이 된다. 그런 인생의 결과로 그는 총 10번 전과를 얻고 6번 실형을 살았다. 결국 환갑이 다 된 그는 총 28년을 교도소에서 살았고, 특히 마지막 실형에서는 살인죄로 13년 꼬박 복역해야 했다. 흔히 일본 느와르-갱스터 물에서 어둠의 세계에 몸담은 이들에게 친숙한 장소인 아바시리 형무소가 소재한 홋카이도의 또 다른 강력범 전문 교도소, 일본에서 가장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동네 '아사히카와'에서도 줄곧 사고를 치고 독방신세만 지던 마사오는 형기 만료 후 도쿄로 향한다.
 
도쿄에는 의지할 곳 없는 그의 신원보증인이 되어준 쇼지 츠토무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변호사의 도움으로 마사오는 당장 생계를 위해 생활보호대상자로 수급자 신청을 하러 가지만 창구에서부터 폭력단 전력으로 문전박대를 당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간곡한 호소로 사회복지 공무원 이구치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급한 거처는 마련되었지만 마사오는 수급자 지원으로 무위도식할 생각은 없다. 이제 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얻어야 하지만 야쿠자 전력은 늘 그의 발목을 잡는다.
 
세상이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많이 바뀌었음이 서서히 확인된다. 층간소음이나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사소한 시비가 붙어도 무조건 마사오가 일방적으로 험한 꼴 당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이다. 그가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배운 기술은 이제 환경이 바뀌어 일거리를 가져오는데 아무 도움이 못된다. 야쿠자 시절에는 외제차를 굴리고 다녔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갱신을 못해 운전면허도 말소된 상태로 처음부터 새로 시험을 쳐야 한다.
 
동네에선 그의 과거가 소문나 주변의 꺼림칙한 시선에 둘러싸인다. 하지만 그런 시비 끝에 화해하게 된 동네 마트 주인 마츠모토와 다행히 친분을 쌓으며 '이웃'이 생긴다. 그리고 자신을 소재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방송국 피디 요시자와와 작가 츠노다와도 만난다. 하지만 여전히 마사오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척척 단칼이던 운전도 낯설어졌고, 나이가 들면서 얻은 질환인 고혈압은 툭하면 재발해 생명을 위협할 정도다. 뭐 하나 되는 게 없자 마사오는 점점 좌절감에 빠져든다. 절반 이상의 야쿠자 출신 출소자들처럼 그는 다시 평생 몸담았던 세계로 복귀를 꿈꾼다. 출소하면서 꿈꿨던 '멋진 세계'로 진입할 자신이 없어졌기에 익숙한 공간만이 남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실상은 어쨌건 야쿠자라는 조직이 표방해온 정체성, 즉 사회에서 낙오된 오갈 데 없는 자들을 받아들인다는 개방성과 그 바깥의 현재 일본사회가 날카롭게 비교된다. 하지만 그를 반겨준 고향 큐슈의 의형제 조직이 처한 상황을 체감한 마사오는 다시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하고자 다짐을 굳힌다. 그리고 그가 얻은 주변의 인연들에 힘입어 조금씩 바깥 세계의 문을 열어나간다.
 
5_마사오의 흥망성쇠를 통해 일본사회를 진단하다
 
비온 뒤에 땅 굳듯 새롭게 마음을 다잡은 그에게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회복지 공무원 이구치는 그에게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구해준다. 마침내 자신의 노동이 사회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출소 후 그를 진심으로 염려해주던 지인들이 생일파티도 열어준다. 이제 그의 고난은 서서히 끝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직장에서도 마사오가 평생 참지 못했던 약자에 대한 부당한 괴롭힘과 폭력 앞에 화를 억누르고 참아내야 하는 지경에 처한다. 마사오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또 다른 무력감을 느끼고 만다. 그런 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해나가려던 주인공은 (마치 오 헨리의 단편들이 제대로 보여주는 반전처럼) 급작스런 결말을 선보인다.
 
야쿠쇼 코지가 선보인 주인공 마사오는 평생 동안 한군데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꽤 유명한 야쿠자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게이샤 어머니와 손님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보육시설에 버려진 그를 받아준 곳은 결국 야쿠자뿐이었다. 그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정의감을 가졌지만 그것을 사회규범에 맞게 풀어내는 방식은 어디에서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거친 무법자들의 뒷골목에만 머물렀던 셈이다. 그래도 겨우 손을 털고 조직에서 벗어나 오래 마음을 교환해온 여인과 결혼도 했지만 원한을 품은 적대조직의 킬러가 습격해 아내를 구하려다 그만 사람을 죽인 탓에 모든 걸 잃었다.
 
그런 마사오에게도 다행히 소수의 친절한 '이웃'들이 있어줬기에 그는 '멋진 세계'로 늘그막에나마 돌아올 꿈을 꾼다. 하지만 현대 일본사회의 복지 시스템과 사회적 분위기는 그렇게 간절히 갱생하고픈 주인공을 온전히 바라봐주지 않는 체제였다. 방송국 사람들은 마사오의 갱생 과정이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화제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일종의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를 제안한다. 그 뒤풀이 자리에서 그들은 현재 일본사회가 출소자인 마사오에게 왜 그리도 각박한지 설명한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비록 양지에 있더라도 날로 급격해지는 변화와 냉혹한 경쟁 체제에 하에 놓여 있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엔 둔감해져 있다는 것이다. 요시자와와 츠노다는 그 주제로 마사오 앞에서 열띤 토론을 펼친다.
 
그를 가장 조건 없이 반겨 맞아준 곳은 뒷골목 시절 의형제인 지역 야쿠자 보스다. 하지만 그곳 역시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의리나 의협의 분위기는 사라진 자리에 오직 돈만 남았을 뿐이다. 오랜 야쿠자 지인은 자신들은 '될 대로 되라'며 살지만 마사오만은 이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권한다. 통장도 개설할 수 없고 건강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데다 늘 감시받고 차별당하는 야쿠자의 처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가 뿌리내리려는 '멋진 (바깥) 세계'의 풍경도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다. 마사오가 겪는 문제들 다수의 원인인 욱 하는 성격은 그가 가진 정의감이 제대로 사회화되는 경로를 찾지 못한 채 자경단의 즉자적 폭력으로 행해졌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거엔 일각에서 '의협' 대접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가 독방에서 시간을 날리는 사이에 고이즈미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냉정한 개인주의 사회가 된 현대 일본에서는 마사오 같은 이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
 
6_현재 일본영화의 저력을 집약한 추천작
 
 영화 <멋진 세계> 스틸

영화 <멋진 세계> 스틸 ⓒ (주)엣나인필름

 
그럼에도 끝까지 필사적으로 주인공은 멋진 세계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도 그곳에 들어서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성격을 죽이는 건 물론 불의를 보고도 이를 깨물고 고개를 돌리며 괴로워하고 고개를 숙이는 걸 감내한다. 자신을 도운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일생 옥죄던 어릴 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런 과거의 무의식적 기억은 곳곳에서 섬세한 터치로 암시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마주치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거처 바깥에서 아이가 부모를 찾아 울고 있으면 마사오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고 상황을 주시한다. 자신이 자랐던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다가도 감정이 북받치곤 한다. 그가 거처하는 낡은 '나가야' (원룸 같은 임대주거 공간)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유독 힘겨워하며 종종 넘어지곤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높은 곳을 힘들여 오르다 실수 연발하는 걸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아마도 그 또한 감독이 세세하게 배치해놓은 주인공의 유아기적 꿈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풍경 속에도 몇몇 정교하게 배치된 소품과 장치들을 숨겨놓았다. 그가 생일에 선물 받은 건 유년기에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탈법한 노랑 자전거다. 단정한 복장과 등에 멘 가방은 마치 '란도셀'과 교복처럼 종종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그가 다른 아이들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의 이미지다. 그리고 영화 후반에 잊지 못할 인상으로 다가오는 존재, 시골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법한 코스모스는 동아시아에서 해당 식물이 갖는 대중적인 인상과 함께 꽃말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제대로 한몫해낸다.
 
야쿠쇼 코지의 명연에 힘입어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원작의 충실함에 더해 현대적 해석을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원작에는 등장할 리 없는) 휴대전화 등 신문물과 폭력단체처벌법이 가져온 야쿠자의 쇠락 등 현대 일본사회의 세태가 감독의 필력으로 버무려져 있다. 현대사회의 변화는 점점 더 가속화되는 중이다. 인생의 장년기 13년을 송두리째 대부분 독방에서 보낸 마사오는 이미 시대변화에 도태되기 딱 좋은 조건이 되어버렸다. <쇼생크 탈출>에서 또 다른 주인공 '레드'(모건 프리먼 분)가 독백하던 것처럼, 교도소란 곳은 사회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하다 그가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나서야 내쫓는 공간인 셈이다.
 
그가 출소 후에도 내내 공중전화만 사용하고 (현재 야쿠자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 된) '보이스피싱' 등에 속을 뻔한 풍경들은 익살스럽게 묘사되지만 실은 디지털 난민의 전형 격이다. 휴대전화 기능을 배워나가며 어린애처럼 좋아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들 또한 그가 원래는 어릴 적에 타인들처럼 평범하게 배웠어야 하는 사회적 학습의 은유로 비춰진다. 그런 세심한 터치가 감독의 전작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져 보인다.
 
영화는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이전 작업들과 큰 틀을 공유하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화두를 제기한다. 과연 현대 일본사회가 약자와 소수자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멋진 세계'인가? (그리고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지독히 반어법적이다. 개인들은 선의를 갖고 있지만 사회의 방향과 제도의 설계는 이를 돕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경고를 감독은 던지고 싶은 듯하다. 그저 잘 짜인 파란만장한 인간드라마를 넘어 일본사회의 몰락을 경고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 같은 영화다. <멋진 세계>는 그렇게 대폭 확장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오랜 기다림이 충분히 보상받는 작품이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발언과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력이 어우러진 영화는 충분히 새로운 명작영화 반열로 대접받을 만하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