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를 통해 제주 근해에서 남방큰돌고래 암컷이 갓 출산 후 죽은 새끼를 어떻게든 살려보려 며칠째 등에 업고 헤엄치는 장면이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중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대와 폭력에 관한 뉴스가 연일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는 가운데 전해진 소식이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짐승도 자기 자식을 저렇게 대하건만 왜 인간은 갈수록 각박해지는 걸까하며 씁쓸한 기분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래가 약한 개체를 무리에서 보호하고 부양한다는 사실은 여러 종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고 있다. 심지어 기형으로 태어난 돌고래를 아예 종이 다른 향유고래 무리가 거둬들여 같은 무리로 다닌다는 관측도 확인되었을 정도다. 혼자선 생존하기 어려운 장애나 불구가 된 개체를 집단이 보호하는 것은 고등동물의 특징이다. 고래는 포유동물 중에서도 특히 임신과 출산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지라 자식 사랑 또한 각별하다고 한다.
 
1_위기에 처한 남방 정주 범고래들을 관측하다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 Andrew LUBA

 
2018년에 캐나다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목격된 'J35'라 불리는 범고래의 일화는 그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부류에 속한다. 발견 당시 전 세계 뉴스를 장식했던 해당 케이스 내용은 놀라웠다. 남방 정주 범고래 어미인 'J35'가 죽은 새끼를 무려 17일 동안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저 금수도 자기 새끼를 저렇게 돌보건만! 이란 반응과 함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불거졌던 일화다.
 
이런 소식은 대개 금방 잦아들게 마련이다. 자극적인 소식에 우리는 중독될 지경이니까. 하지만 이 감성 터지는 일화에는 덜 알려진 이면과 후일담이 있지 않을까? 즉자적 감상 너머 실재하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게 마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공존과 멸종>의 공동감독이자 환경정의 활동가인 둘은 J35 관련 상황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우선 이들은 지역의 고래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범고래 무리는 예전부터 정기적인 관찰과 보호의 대상이 되어 왔기에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었다. 개체별로 식별번호와 개성적 특징이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을 정도다. 그저 미담으로 스쳐지나갔던 J35의 특이행위에 대한 소상한 분석과 해설은 상당한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전문가를 통해 범고래 J35의 행위가 동족이자 자식에 대한 추도의 행동인 동시에 일종의 퍼포먼스 시위일 수 있다는 충격적 가설이 소개된다. 제작진은 그 가능성에 대해 고찰해본다. 연구자들이 이런 가설을 제시하는 근거가 하나둘 등장한다. 우리에겐 범고래는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한 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 정착한 지역과 집단의 개성을 가진 것처럼 고래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범고래의 경우 서식지 별로 고유의 집단과 공동체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영화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 북미대륙의 북태평양 연안지대 범고래는 무엇 때문에 추모 시위를 벌인 걸까?
 
영화에서 소개된 남방 정주 범고래는 북미대륙의 캘리포니아부터 알래스카에 이르는 서부 태평양 연안에 서식하는 소규모 집단이다. 이들은 연어를 주식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전혀 천적도 없고 현재는 포경의 대상과도 거리가 먼 이 집단이 멸종 위기라는 의아한 소식이 등장한다. 이제는 불과 70여 마리만 존재가 확인된다는 것이다. 지속적 모니터링 과정이 이뤄지는 개체군인지라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수치는 정확도가 높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선 그들이 서식하는 연안해역 환경오염 문제다. 해안 지역이 인구 증가로 인해 개발되는 것은 물론, 항구를 통해 내륙에서 생산된 석유와 가스, 역청이 배에 실려 입출항하면서 벌어지는 환경오염은 주로 연해에서 활동하는 이들 범고래에겐 악재임이 틀림없다. 거기에다 거대한 화물선과 유조선이 내는 소음은 고래들에게 또 다른 치명타를 안긴다.
 
고래는 물속에서 먹이 찾기 등 일상 활동과정에 시력 대신 초음파를 발생시킨다. 잠수함의 '소나'도 이와 같은 원리다. 잠수함 영화에서 서로 적대적인 잠수함 간에 어뢰나 미사일 공격 대신 위협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액티브 소나'라 해서 상대편에 공격적인 소나를 날려 먹통으로 만드는 행위다. 이런 액티브 소나의 공격적 발사와 대형 선박의 소음은 유사한 효과를 발산해 조용한 바다에서 섬세한 초음파로 생활하던 고래 무리에 일대 교란을 일으킨다. 가끔 원인모를 대형고래들의 실신 사건은 이런 경우가 많다. 범고래는 거대한 덩치만큼 많은 먹이를 먹기 위해 활발히 움직여야 하는데 수시로 쏟아지는 해양 소음은 범고래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둘째는 보다 근본적인 위협이다. 범고래는 해당 지역 바다의 먹이사슬 정점에 있다. 범고래가 위기에 처했다는 건 그 지역 야생동물 생태계 전체가 위험하다는 지표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범고래만의 사안이 아닐 테다. 이 지역 전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2_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 Andrew LUBA

 
범고래가 연근해에서 먹이사슬의 최고정점에 있는 포식자라면 육지에는 회색 곰이 그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늑대와 독수리 같은 육식동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예상했던바 그대로 제작진은 그들 모두가 집단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당혹스런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범고래의 문제는 모두를 공통적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어느 특정종만 멸종하고 다른 종이 그 위치를 차지하는 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핵심 연결고리는 대체 무엇일까 제작진은 조사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연어'다!
 
해당 지역은 '왕연어(King Salmon, Chinook Salmon)'가 서식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이 부근에 서식하던 야생 연어는 100년 전에 비해 불과 1% 이하로 감소한 상태다. 매년 3000만 마리가 산란을 위해 강으로 회귀하던 장관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른 걸까?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연어의 수가 줄어들면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다른 동식물들의 개체 수에도 민감한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연해와 강 유역의 동식물 전체가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대형 육식동물은 연어에 의지하는 삶을 종 대대로 유지해 왔다. 그리즐리 회색 곰이 겨울잠을 준비하기 전 영양 섭취를 위해 강에서 연어를 사냥하는 장면은 자연 다큐멘터리의 대명사일 정도다. 곰은 지방질이 풍부한 껍질 등을 주로 먹기 때문에 남은 잔해는 하위 포식자들의 몫이 된다. 서열에 따라 골고루 먹게 되는 것이다. 산란을 마치고 (일부는 그 후에도 생존한다) 죽은 연어는 강바닥에 가로앉아 분해되어 미생물과 식물의 영양분이 되어준다. 생태계 전체가 서로 연결된 것이다. 여기에서 주요한 영향력을 가진 연어의 몰락은 순환 전체를 파괴할 위력을 갖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지역 앞바다에는 연어가 넘쳐난다. 조금 전까지 연어가 씨가 마를 지경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연어는 오히려 1세기 전보다 숫자로는 더 많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기이한 상황이 이어서 진행된다. 북태평양 연안바다에 '대서양연어'가 넘쳐나고 있다. 연어가 북미대륙을 횡단이라도 했단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이 대서양연어는 바로 양식 연어의 대표주자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인근의 연어가 격감하자 노르웨이 수산회사가 대규모 투자로 연어를 양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장제 축산업 방식 그대로 생산된 연어는 우리 식탁에 오르는 연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양식 언어의 폐해는 공장제 축산의 문제를 고스란히 가진다. 회귀 대신 인공수정으로 부화해 항생제를 포함한 먹이를 주면서 밀집된 공간에서 사육되는 연어는 다양한 질병을 안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다시 항생제를 먹이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양식 언어가 양식장을 벗어나 섞여들면 면역이 되지 않은 왕연어에겐 파괴적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격감한 왕연어에게 전염병까지 설상가상으로 닥친 셈이다. 여기에 강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던 연어의 물길을 댐과 인공수로가 가로막아 번식도 여의치 않아졌다. 이런 위기 상황은 야생동물을 넘어 지구상의 1순위 포식자에게도 영향을 안 줄 수가 없다. 바로 인간의 생존에도 위기로 들이다긴 것이다.
 
3_원주민 수난의 역사는 현재형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 Andrew LUBA

 
이제 이야기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주 내용인 야생동물 보호 담론을 어느새 훌쩍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제 제작진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 개척자들에 의해 겪어왔던 수난과 약탈의 역사를 파헤친다. 광대한 북미지역 선조들의 땅을 빼앗기고 극히 일부만 남은 그들 각 부족의 고유한 영토에 이제는 자원개발과 경제성장 명목으로 다시 침공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수백 년 전 과거사로 치부되던 원주민 침략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형태로 재개된 지 오래다. 그들이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던 보호구역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자연파괴와 난개발 광풍은 바로 지금 현재형이다. 제작진은 원주민 활동가들과 함께 지역 생태계에 파괴적 결정타를 날릴지 모르는 위협, 새롭게 건설되는 송유관 공사를 저지하고자 힘쓴다. 그리고 연어의 회귀를 가로막는 댐 철거와 야생연어의 자리를 빼앗고 치명적 질병을 옮기는 연어 양식장 문제를 함께 제기한다. 범고래 보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이제 해당지역 전체의 미래로 확장된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이 지역 원주민들의 식량자원 역시 연어에 크게 의지하고 있었음이 해설된다. 남획이 아니라 꼭 필요한 양만 어획해 백인들의 상품 위주 낭비가 아니라 알뜰하게 이용해 버릴 것 없이 활용하던 원주민들의 연어 어업과 노르웨이 대기업의 연안 양식장은 소농과 공장제 축산의 대조를 정확하게 재현한다. 변변한 일자리가 드문 원주민 영토에서 전통적 산업 역시 어획량 급감으로 파괴되는 과정, 범고래와 회색 곰과 연어의 운명은 원주민의 미래와 여기에서 통합된다.
 
자연이 스스로 완성시켜놓은 정교한 지역 생태계 순환 시스템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오가지만 일단 제작진은 지금이 말보다 행동이 시급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백인과 대기업 위주 환경파괴의 위협이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고스란히 작동하고 있는지 쟁점을 물고 늘어진다. 이제 영화는 그린피스나 씨 셰퍼드, 브라질 원주민의 투쟁과 비슷한 형상으로 전환된다. 원주민 활동가들은 송유관 공사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시위를 이어간다. 영화 제작진도 시위현장에 결합한다. 연안에 설치된 대규모 연어 양식장 인근을 순찰하며 그들의 불법행위를 조사하고 샘플을 수집한다.
 
하지만 개발논리의 요체는 결국 경제, 즉 '돈'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가난한 이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송유관 공사현장에 고용되어 시위대 앞을 가로막고,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게 될 작업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다. 일부 원주민 부족은 적극적으로 공사 저지 투쟁에 나서지만, 다른 부족은 어차피 개발은 진행될 테고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라 체념하며 보상금과 지원대책에 기울어지기도 한다. 익숙한 풍경 아닌가. 한국에서도 원전이나 송전탑 공사가 계획된 지역은 대개 인구가 희소하고 가난한 농어촌이고, 공권력과 법제도가 개발세력의 손을 들어준다는 경험에 의해 포기하고 보상을 받는 이들과 맞서 저항하는 이들로 지역사회가 대치하며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우는 본질적으론 동일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투쟁은 이어지고 지방정부를 움직여 대책회의와 TF가 꾸려진다. 하지만 약간의 조치가 발표될 뿐 송유관 공사나 댐 해체 등 큰 덩치는 그대로 살아남는다. 결정적 원인은 남겨두고 양식장 축소 정도로만 생색내는 셈이다. 결국 문제를 알면서도 눈과 귀를 닫는 행정과 정치에 실망한 이들은 대행진을 진행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고 고민 끝에 활동가들은 행진을 중단한다. 방역은 중요하지만 이참에 집회시위 자유가 억압당하는 부수적 문제도 전 세계적으로 동일했던 셈이다. 이들 원주민과 활동가들이 시위와 투쟁 내내 경찰과 기업의 감시에 시달리고 견제당하는 풍경 또한 별로 낯설지 않다.
 
4_개발주의에 맞선 마이너리티들의 저항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영화 <공존과 멸종> 스틸 이미지. ⓒ Andrew LUBA

 
그럼에도 영화는 대단한 이념과 주의주장을 제작진이 설파하진 않는다. 사실 우리도 모두 머리로는 아는 문제들이다. 다만 그들은 직접 눈으로 오랜 시간 남방 정주 범고래 집단의 쇠퇴와 위기를 목격했기에 더 절박한 것이고 직접행동에 나설 용기를 얻은 것일 뿐이다. 종종 영화는 제작진이 감정에 북받쳐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내비친다. 영화적으로 소재에 접근했다면 큰 단점이 되었을 지점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무엇을 위해 작업하는지 확신에 가득차 보인다.(물론 영화를 보게 될 이들에게 호오가 나뉠 건 분명하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범고래 무리에는 예정된 비극과 작은 위안이 연달아 이어진다. 마치 희망고문과 같은 상황이다. 몇 년간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지 못한 가운데 어린 개체가 끝내 영양실조로 쇠약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과, 정말 오랜만에 번식에 성공하는 순간들이 제작진과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찰나가 교차한다.
 
한 종족의 실낱같은 명줄이 가늘게 이어지는 가운데 더 이상 개체 수 감소와 번식 중단이 지속된다면 사실상 멸종이 임박했다는 절박한 속보와 작은 희망을 가져야 할까 망설여지는 진전이 동시에 언급되고 영화는 마침표를 찍는다. 익숙한 주제인 고래 보호에서 출발해 우리가 곧잘 놓치고 마는 사회적 쟁점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생태계 보호가 사회적 소수자인 원주민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공존과 멸종>은 제법 큰 스케일과 자기완결적 논리가 갖춰진 행동주의 다큐멘터리이다.
 
<작품정보>
공존과 멸종 Coextinction
2021|캐나다|다큐멘터리|95분
감독 글로리아 판크라치, 엘레나 진
 
2022 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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