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리

박규리 ⓒ 채널A


화려한 성공을 거둔 인기 아이돌 그룹의 영광 이면에는 깊은 상처와 고독이 있었다. 지난 24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레전드 걸그룹 카라의 리더 출신이자 배우인 박규리가 출연하여 고민을 상담했다. 박규리는 카라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아픈 개인사, 동료였던 고 구하라의 안타까운 사망이 남긴 충격 등을 솔직하게 고백하여 눈길을 끌었다.
 
카라는 대한민국 아이돌 역사에서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과 함께 이른바 2세대(2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를 대표하는 레전드 걸그룹으로 꼽힌다. '미스터' '프리티걸' '점핑' '루팡' '맘마미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한국과 일본에서 초메가히트를 기록했다. 박규리는 이런 카라의 리더이자 맏언니였고 스스로 만들어낸 '여신'이라는 별명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규리는 최근 SNS에 카라 멤버들과 함께 커플옷을 입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사진을 올리며 관심을 모았다. 박규리는 "함께 모여서 여러 가지를 구상 중"이라며 조만간 카라 완전체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암시하기도 했다.
 
항상 자신감넘치고 당당하던 박규리였지만 "나의 밑바닥을 보이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까 두렵다."는 숨겨진 고민을 털어놨다. 어린 나이대 아역부터 시작하여 아이돌 걸그룹의 리더까지 오랜 세월 연예계 활동을 해왔던 박규리는, 자신의 역할 때문에 나의 흠을 누군가에게 알려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컸다고 고백했다.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야한다는 부담을 속으로 삭히다보니 쌓여가는 고민들로 마음의 병까지 생겼다고.
 
오은영은 "바닥이란 곧 깊은 마음속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깊은 속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는게 왜 어려울까."라고 질문했다. 박규리는 "아이돌은 판타지를 지켜줘야하는 존재라고 늘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우상이 될수 있는 존재이기에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항상 조심해야했고 정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해서 속상하고 힘들었다."고 밝혔다.
 
연예인들은 방송과 일상에서는 모습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박나래는 개그우먼으로서의 유쾌하고 거침없이 들이대는 모습과는 달리, 일상에서는 애교도 없고 얌전한 성격이라고 밝혔다. 정형돈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자유롭게 소신을 이야기했던 반면, 방송생활을 하고 20년차가 넘어서면서 오히려 하고싶은 말을 삭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정형돈은 "방송에서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밖에서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며 깊은 속이야기를 꺼리게 되면서 자연히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고 오히려 혼자가 편해졌다고.
 
박규리도 정형돈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최근들어 편했던 지인들과의 만남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오은영은 이러한 박규리의 상황에서 '위로포비아(속마음을 꺼내고 위로받기를 두려워하는 공포증)'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람은 보통 어렵거나 힘든 상황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럴 때 위로를 받고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마치 나의 약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박규리는 위로포비아 진단테스트에서 모든 항목에 해당되는 '만점'이 나왔다.
 
 박규리

박규리 ⓒ 채널A


박규리는 가장 마음에 와닿은 항목으로 "나는 괜찮지 않은데 누군가 괜찮아라고 하면, 그런 의미없는 리액션에 화가 난다."고 고백했다. 박규리는 "연예인은 항상 대중의 선택을 받는 직업이지 않나. 좋은 점만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내 흠과 약점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 살을 깎아먹는 일이 아닐까"라며 속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이야기를 경청하던 오은영은 "박규리가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은영은 "가까운 사람과 마음속 아픔을 나누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면서 "속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립과 단절을 의미한다. 마음이 힘들수록 고립을 선택하면 혼자 감당하기 힘든 부분은 오히려 점점 곪아버린다."고 지적했다.
 
박규리는 지난 2~3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박규리는 올해초 강릉으로 떠나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한달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오히려 자발적 고립을 통해서 편안함과 평화를 느꼈다고.
 
오은영은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하는 상황이나 자극은 본인을 위하여 피하는 게 맞다. 회피는 사람의 생존본능 중 하나다."면서도 "그런데 완전한 고립은, 인간에 대하여 오만가지 정이 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박규리는 '인류애의 상실'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SNS에 직접 올린 일이 있었다. 박규리는 한동안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 원인으로 박규리는 원치않게 비연예인 남자친구와의 연애 사실이 공개된 이후 언론과 대중의 지나친 관심, 부정적인 반응에 큰 상처를 받았던 사실을 뒤늦게 고백했다. 여기에 카라 활동 이후 새롭게 계약했던 소속사의 파산도 박규리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박규리는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반복되는 사건 속에 박규리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점점 상실하게 됐다. 홀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며 박규리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내 선택이 그렇게 잘못됐나. 내가 선택한 일들은 왜 다 잘못될까."라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오은영은 박규리가 "제가 선택한 것"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쓰며 본인의 선택에 대한 강박적인 후회와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을 지적했다. 만일 본인이 음주운전을 저질러 처벌받는다면 본인의 책임이지만, 연인이 음주운전을 저질렀다면 막지 못했다고해서 나의 책임은 아니다. 그런데 박규리는 연애도 소속사 선택도 애초에 시작을 했던 자신의 선택을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
 
박규리는 왜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성향을 지니게 된 것일까. 박규리는 유명 성우였던 엄마 박소현과의 특별한 관계를 언급했다. 박규리는 어린 시절부터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을 열심히 서포트해줬던 엄마의 영향을 언급하면서 "엄마 이름에 흠집내지 않는 딸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규리는 엄마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해내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의지와 다르게 번번이 후회를 남긴 선택들이 많았고 그럴수록 본인에게서 문제점을 찾았다.사전에 진행된 검사에서 박규리는 놀랍게도 '어머니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거리를 두어야할 것 같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했다. 박규리는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과도한 관심과 애정이 부담스러워졌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꽤 오랜시간동안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고. 오은영은 "엄마와의 애정이 부담스럽다는 본인의 모습도 싫겠다. 부모님이 걱정안하게 우뚝 서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싫은 것"이라고 속내를 짚자, 박규리는 "꼴도 보기 싫다."고 인정하며 "그래서 결론은 제 탓"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오은영은 박규리와 엄마의 관계가 편안한 모녀 관계라기보다는, 거리감이 있는 '스승과 제자' 관계같다고 지적했다. 누구보다 연예계의 생리를 잘아는 엄마는 박규리에게 여자 연예인으로서의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바른 삶을 교육시키려고 애썼다. 박규리는 어머니에게 연애 등 개인사를 먼저 솔직하게 말하지않고 뒤늦게 들통난 경우가 많았고 자연히 어머니와 마음의 골이 깊어졌다.
 
오은영은 박규리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고 평가하며, 박규리의 감정을 '죄책감'으로 분석했다. 박규리는 "항상 죄인이 되는 느낌"이라고 공감했다. 오은영은 "엄마가 인도해준 길이 행복일수도 있지만 거기에 '박규리'가 빠져있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박규리의 엄마가 원한 딸의 모습이 여성스럽고 조신하고 애교있는 여성이었다면, 박규리는 털털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했다. 오은영은 박규리가 매사에 인내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려는 강박 때문에 실제 성격을 억누르고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생활해왔다고 분석했다.
 
오은영은 자아기능(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현실에 맞게 자기 조절하는 것)과 초자아기능(도덕이나 사회적 규범 등으로 자아를 통제)을 설명하며 박규리는 "초자아기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상태"라고 우려했다. 박규리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카라에서도 리더이자 언니였다. 가끔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려놓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오은영은 "아이는 아이다워야한다. 아이가 지나치게 점잖고 의젓하다는 것은 한편으로 억압과 억제를 많이 받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억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박규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습관이 있다보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울고싶어도 눈물이 잘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심지어 박규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깜짝 고백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인내만 하다가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모든 책임이 내탓으로 귀결되면서 "나만 없으면 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문장 완성 검사에서 박규리는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이라는 항목에 '다시 살아내기 귀찮을 것 같다.'라는 답을 남겼다. '내가 정말 행복하려면'이라는 항목에는 '떠나야할까'라는 답을 남기기도 했다. 오은영은 현재 박규리의 상태가 속상한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규리는 "인생에서 중요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밝히며 자살 생각이 있었냐는 오은영의 질문에도 망설없이 "네"라고 답하여 패널들을 놀라게 했다. 오은영은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인 질문을 했다가 증상이 더 심해질까봐 걱정해서 주저한다. 오히려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차라리 고통을 밖으로 솔직하게 내놓는 '환기효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박규리는 조심스럽게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카라의 전 멤버 구하라를 언급했다. 박규리는 "그때 처음으로 제 가치관과 생각들이 엄청나게 흔들리고 무너졌다. 그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던 사람이 세상을 떠날 선택을 할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고 충격받았던 순간을 회상했다.
 
박규리는 자신의 힘든 순간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구하라를 언급하는 데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한편으로 박규리는 "20대를 함께했던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방법이 있네?'라는 생각이 일말이나마 들었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자살 소식에 동조한 모방 자살시도)와 파파게노 효과(언론이 자살관련 보도를 자제하여 시민들의 자살률을 낮추는 것)를 언급하여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맞은 편에서 경청하던 이윤지는 박규리가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본인의 슬픔 표현하는 걸 최대한 자제하려는 모습을 거론하여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규리는 "이 방송에 제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도 '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이제는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괜찮다."며 격려했다. 박규리가 "그러면 막살 것 같다."며 걱정하자 오은영은 "절대 아니다. 그냥 까부는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하며 박규리를 위하여 "다 울었니? 그러면 이제 당당하게 걷기"라는 솔루션을 제시했다.
 
유명 연예인이고 대중에게 공개된 삶을 살아야했다는 이유로 솔직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억누르고 살아와야했던 박규리의 고백은 화려한 아이돌들의 현실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박규리는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이렇게 하겠나.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위로받게 될줄 몰랐다"며 그동안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눈물을 마음껏 터뜨리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오은영과 패널들은 박규리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며 상담은 훈훈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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