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여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 모자가 있다. 은희(이정은)의 말마따나 "옆집에 빤스 쪼가리가 몇 장인지, 숟가락 젓가락이 몇 짝인지도 아는" 제주 '푸릉'에서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의 관계는 유독 도드라진다. 동석은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옥동을 본체만체하고, 옥동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겨우 받아도 '죽을 때 아니면 하지 말라'고 차갑게 쏘아붙인다.  

동석은 옥동, 그러니까 자신의 엄마를 '작은 어멍(엄마)'라 부른다. 옥동을 바라보는 동석의 눈빛에서 경멸이 읽힌다. '도대체 엄마한테 왜 그러냐?'는 주변의 참견과 잔소리에 아버지 친구이자 친구 아버지와 재가한 옥동에 대한 증오를 쏟아낸다. 옥동은 그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동석의 저 싸늘한 눈빛을 옥동은 어째서 아무런 말없이 받아내고 있는 걸까. 

목포행 결심한 동석
 
 tvN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tvN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 tvN

 
 tvN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tvN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장면. ⓒ tvN

 
tvN <우리들의 블루스>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최후의 블루스 한 곡이 남았다. 은희의 영원한 첫사랑 한수(차승원)도, 30년 지기 미란(엄정화)도 푸릉 마을을 다녀갔다. 오해는 풀렸고, 우정은 깊어졌다. 용감한 청소년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박지환)과 호식(영준)의 해묵은 갈등도 해소됐다. 그들은 기꺼이 사돈을 맺었다. 

영옥(지민)과 정준(우빈)의 사랑은 깊어졌다. '헤프다'는 오해를 받았던 영옥의 상처가 그려졌고, 우직한 정준은 영옥의 손을 꼭잡았다.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정은혜)는 감동적인 그림을 선물하고 떠났다. 가족을 모두 잃고 기구한 삶을 살았던 춘희(고두심)의 막내아들 만수(김정환)는 교통사고로 잃었던 의식을 회복했다. 바다 위에 100개의 달을 띄운 춘희의 기도가 이뤄진 셈이다. 

"그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 그저 바다만, 바보처럼. 아니, 우리 엄마 얘기야. 아버지 배 타다 죽고, 동희 누나 물질하다가 죽고.. 엄마는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턱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버지, 동희 누나 죽은 바다도 안 볼 수 있는데. 그저 바다만 미워하면서도 바다만." (동석

많은 이야기들을 매조지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제 '옥동과 동석'의 이야기 정도를 남겨놓고 있다. 가장 오래된 갈등이고, 풀어내기 어려운 상처이기에 노희경 작가도 드라마 끝자락에 다루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선아(신민아)와의 관계에서 동석의 캐릭터를 촘촘히 쌓아갔고, 아들을 향한 춘희의 사랑을 통해 옥동의 감정선을 담아냈다. 게다가 옥동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사실 동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트럭만물상을 하는 동석은 거처 없이 트럭에서 잠을 자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어떤 이들은 엄마에게 눈을 부라리는 그를 '후레자식'이라 불렀다. 정작 엄마와 절연한 그는 잠시라도 마음을 누일 곳이 없어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여자는 그를 거절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동석의 삶이 참 기구하다 싶었다. 

더 난해한 건 어쩌면 옥동이었다. 입을 꾹 닫고 감정 없는 사람마냥 살았다. 장사를 하는 동석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남들 눈에는 한없이 순해 보이는 할머니지만, 아들에게는 왜 그리 모질게 구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암에 걸린 사실을 안 후에도 살기 위해 애쓰기보다 삶을 정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삶도 기구하긴 마찬가지였다. 

평생 겉돌기만 했던 두 사람이 마침내 충돌했다. 옥동은 동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목포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종호· 종철 형제의 아버지 기일이 다가왔으니 자신을 제사에 데려가라는 것이다. 불같이 화가 난 동석은 "내 아방 기일도 못 챙기는데, 내가 거길 왜 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옥동은 단호했다.

"너도 그 양반 밥 먹었다."

동석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엄마한테 물을 수 있을 때 물어. 따질 수 있을 때 따지고. 나중에 더는 궁금한 거 하나 없게." (선아)

동석은 엄마를 이해할 길이 없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도무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 말고, 자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 말고 무엇 하나 해준 게 없는데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 있을까. 동석은 선아에게 한맺힌 기억을 토해냈다. 물질하던 누나가 죽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배 타다 죽은 아버지 친구 집에 첩으로 들어간 엄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을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 했던 건 옥동이었다. 종호· 종철의 엄마가 네 엄마니까 자신을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는 말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뺨을 수십 대나 맞았다. 종호· 종철 형제에게 두들겨 맞을 때도 눈만 껌뻑껌뻑하며 지켜보던 엄마에게 무슨 정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그 집에서 금붙이를 훔쳐 나와서 서울로 가자고 했을 때도 "도둑놈의 새끼"라고 했던 옥동이었다. 

동석은 이제와서 엄마 행세를 하려는 옥동이 난감하기만 하다. '암에 걸린 게 벼슬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자신을 '그지 새끼'라 부르고 허구헌날 때렸던 이복형제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동석에게 선아는 엄마에게 직접 물으라고 조언했다. 자신은 아빠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며, 동석에게 자신처럼 물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말라고 깨우쳐줬다. 

선아의 말이 동석을 움직였다. 목포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옥동은 첫배를 타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기어코 동석을 새벽 4시까지 오게 만들었다. 출발 시간이 다 됐는데 난데없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동석에게 짐을 내다 버리라고 한다.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춘희를 태우러 가라고 한다. 둘이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배를 놓치고 말았다. 

춘희는 커피를 외치고, 옥동은 밥부터 먹자고 한다. 동석은 이 모든 걸 참는 중이다. 목적은 단 하나, 평생 가슴속에 담아온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아빠을 황망히 잃고, 누이마저 보내고, 유일한 피붙이였던 엄마로부터 거부당했던 동석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엄마를 '작은 어멍'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엄마에게 개 맞듯 맞았던 그날에 묶여 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얼마나 더 부딪치고 싸워야 할지 모르는 옥동과 동석의 블루스가 시작됐다. 어쩌면 가장 처연하고, 가장 안타깝고, 가장 슬픈 블루스가 아닐까. 동석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던 옥동의 사연은 무엇일까. 노희경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어떤 위로와 희망을 들려줄까. 또, 최고의 배우 김혜자와 이병헌은 어떤 연기로 시청자를 울릴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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