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마침내 영옥(한지민)의 마음이 드러났다. 선배 해녀들의 강한 질타에도 욕심을 내어 전복을 두 개 세 개씩 딴 후에야 숨을 한 번 쉬고, 거짓말하는 나쁜 년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결코 물질을 포기하지 않았던 영옥. 한없이 밝고 유쾌하다가도 왠지 모를 그림자가 순식간에 덮이는 영옥은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인물들 중 가장 아리송했다.

지난 14회 방송분서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정은혜)가 등장했을 때 나는 '아!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15회에 진득하게 그려진 영옥-영희의 사연을 접하면서 나는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의 마음을 깊이 만날 수 있었다.

영옥은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흔히 겪는 '자기 상실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오롯이 혼자여서 좋아
 
 영옥은 바다 속에 홀로 있을 때 '오롯한 나 자신'이 되었다고 느낀다.

영옥은 바다 속에 홀로 있을 때 '오롯한 나 자신'이 되었다고 느낀다. ⓒ tvN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성인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심리적 경험을 다룬 논문 <지적장애형제를 둔 비장애형제자매의 심리적 현상>에 따르면 자기 상실감은 비장애 형제자매의 뚜렷한 심리적 특성 중 하나다. 자기 상실감이란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다. 많은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오롯한 자기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장애 형제자매와 관련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성인기 이후 장애형제자매의 돌봄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낀다.

사회의 공적 자원이 부족한 집단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돌봄은 대체로 가족의 몫으로 남겨진다. 때문에 부모가 노년에 이르거나 사망한 후에 장애 형제자매의 돌봄은 비장애 형제자매의 몫이 되고 만다.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장애 형제자매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경험한다. 특히, 장애 형제자매로 인해 자신이 삶에 제약을 받는다는 상실감을 느끼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영옥처럼 사회 시스템을 이용하더라도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는 비난의 시선과 죄책감을 견뎌내야 한다.

아마도 영옥은 이런 '자기상실감'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을 것이다. 영희를 지하철에 두고 내리기도 하고, 영희로부터 멀리 떨어진 제주까지 온 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영희의 잦은 문자가 짜증스럽기만 하고, 제주에 영희가 온다 했을 때 날카로졌던 것도 영희의 존재가 자기 상실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옥은 결코 물질을 포기할 수 없다. 물에서는 영희의 존재를 잊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영옥은 11회 정준(김우빈)에게 "바다에 들어가면 오롯이 나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좋아"라고 하는데 이는 영옥이 갈구하는 것이 '자기 자신'임을 잘 나타낸 말이었다.

나는 재밌고 가벼운 관계만을 원해

이런 자기 상실감은 사회적 위축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다는 자각은 관계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기 어렵게 한다. 또한, 장애 형제자매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함께 느끼고 이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수치스럽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관계에서 편안하게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영옥이 그 많은 오해를 사면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심리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영옥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영희와 단 둘이 세상에 남겨진 경우다. 영옥은 영희에 대한 세상의 편견 뿐 아니라, 부모없는 아이라는 편견에도 함께 맞서야 했을 것이다.

"묻지 않는데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 부모 없이 자란 아이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서. 단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어요. 묻는 말에 대답만 한 거지."(12회)

영옥의 이 말은 불편하고 위축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장애 형제자매를 둔 성인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배우자와 같이 친밀한 애착을 나누어야 하는 관계를 맺는데 겪는다. 위에 언급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연애관계와 결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장애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고, 때문에 결혼을 전제할 만큼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가 힘들다. 영옥이 선장이 결혼을 이야기했을 때 "심각해지지 말자"며 관계를 끝내려 했던 것은 이런 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자신의 장애 형제자매까지 받아들여주는 배우자를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위 연구에 참여한 성인 비장애 형재자매들 중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사람과 결혼 한 참여자들은 장애 형제자매에 대한 돌봄을 배우자와 함께 나누면서 심리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었다고 보고했다.
 
 정준, 은희, 달이는 영희의 술친구가 되어준다.

정준, 은희, 달이는 영희의 술친구가 되어준다. ⓒ tvN

   
"영희·영옥 보면 모르는 척 하라, 그게 예의라"
 

연구에 따르면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우연한 기회에 장애형제의 존재가 주변에 알려지고, 수용받는 경험을 함으로써 홀가분하고 편안한 정서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들은 타인에게 수용받는 경험을 통해 자신들도 장애 형제자매의 현실들을 보다 더 수용하게 되었으며, 주변의 시선에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이런 면에서 푸릉의 해녀들이 영희를 만났을 때 보여준 반응들은 영옥의 마음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14회 영희를 본 해녀들의 시선이 영희에게 향하자 '왕삼춘' 옥동(김혜자)은 "영희, 영옥 보면 모르는 척 하라. 그게 예의라" 하고 말한다. 이에 해녀들은 영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대한다. 별이(이소별)는 자신도 말을 못하는 장애가 있다며 영희에게 다가가고, 혜자(박지아)는 자신에게도 자폐가 있는 손주가 있다고 알려준다. 처음 영희를 보고 놀랐던 정준(김우빈) 역시 정중하게 사과하고 은희(이정은)와 달이(조혜정)와 함께 영희의 술친구가 되어준다.
 
이런 수용받는 경험은 영옥과 영희의 표정을 밝게 만든다. 15회 물질하러 가는 영옥과 이런 영옥에게 "돈 많이 벌어서 나 수술 시켜달라"는 영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 때 혜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까 쟤도 그러는 거지. 사람들이 볼 때마다 좋다 좋다 곱다 곱다하면 누가 지 얼굴에 칼을 대고 싶겠냐"라고 말한다. 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일침처럼 들렸다.
 
하지만, 영옥은 여전히 식당에서 영희를 놀리는 아이의 시선을 마주하며 수치심을 느끼고 그럴 때마다 영희를 남기고 떠나버린 부모와 영희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속에서 힘겨워한다.

"억울해. 왜 나한테 저런 언니가 있는지 억울해. 왜 우리 부모님은 착하지도 않은 나한테 저런 앨 버려두고 가셨는지 억울해. 근데 나도 이렇게 억울한데 영희는 저렇게 태어난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 (15회)

영옥의 이 말은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의 아픔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영희에 대한 마음을 모두 쏟아낸 영옥을 정준은 따뜻하게 안아준다.

영희에 대한 마음을 모두 쏟아낸 영옥을 정준은 따뜻하게 안아준다. ⓒ tvN


이처럼 영옥은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의 마음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안타까운 건 영옥의 힘든 마음이 대부분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되는 사회라면,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푸릉 사람들이 다 함께 영희를 돌보았듯,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돌보는 사회의 시스템이 공고하다면, 장애 형제자매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이 볼모 잡힌 듯한 '자기 상실감'을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롭다면 사회적으로 위축될 필요도 없고 진지하고 심각한 관계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영옥은 푸릉 마을에서 이런 수용받는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 진실하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는 정준이 곁에 있다. 아마도 영옥은 이전보다는 자기 자신과 영희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장애 형제자매를 둔 성인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여전히 복잡하고 힘든 마음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장애 형제자매를 둔 어린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성인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관심은 드문 편이다. 이제는 성인 비장애형제들의 마음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편견과 차별 없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이들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영옥들'이 바다 속이 아닌 육지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될 때 '영희들' 역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다혜, 한재희(2016). 지적장애형제를 둔 비장애형제자매의 심리적 현상. 상담학 연구, 17(5), 357-375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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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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