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설' 손흥민이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과 아시아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손흥민은 5월 23일(한국시간) 영국 노리치의 캐로우 로드에서 열린 노리치시티와의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최종 38라운드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멀티골을 터뜨리며 토트넘의 5-0 대승을 이끌었다.
 
리그 22, 23호골에 성공한 손흥민은 같은 시간 울버햄튼전에서 1골을 추가한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함께 EPL 공동 득점왕(골든부츠)에 올랐다. EPL 역사상 첫 아시아 선수 득점왕이다. EPL은 득점수가 같으면 경기수와 출전 시간 등 다른 기록에 상관없이 공동 득점왕으로 인정한다.
 
이날 경기전까지 살라에 불과 1골차로 뒤지며 치열한 득점왕 경쟁을 펼치고 있던 손흥민은, 동료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득점을 노렸다. 그러나 노리치 팀 크룰 골키퍼의 선방에 번번이 막히며 좀처럼 골운이 풀리지 않았다. 토트넘은 데얀 클루셉스키의 멀티골과 해리 케인의 추가골에 힘입어 일찌감치 3-0 리드를 잡았다.
 
이대로 득점왕이 멀어지는 듯한 하던 후반 25분 루카스 모우라의 노룩 패스를 이어받은 손흥민이 그대로 논스톱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마침내 포문을 열었다. 기세가 오른 손흥민은 불과 6분 뒤 페널티 박스 앞에서 환상적인 감아차기 중거리슛으로 크룰 골키퍼를 무너뜨리며 멀티골을 뽑아냈다.
 
23호골로 마침내 살라를 역전하는 순간, 득점왕을 확신한 듯 손흥민은 주먹을 치켜들며 평소보다 더 격하게 포효했고, 동료들은 그런 손흥민을 둘러싸며 축하를 나눴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도 박수를 치며 손가락을 들어 손흥민의 득점기록을 확인하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같은 시각 펼쳐진 리버풀-울버햄프턴 경기에서 부상에서 돌아와 후반 교체 투입된 살라가 1골을 터뜨리며 다시 손흥민과 동점이 되어 단독 득점왕 등극은 무산됐다. 이미 전반부터 많은 활동량을 이어갔던 손흥민은 후반 80분경부터 다리에 쥐가 나서 절뚝거리며 정상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당시 교체카드를 이미 모두 소진한 상태였던 토트넘은 손흥민을 교체해줄 수도 없었다.
 
주심은 토트넘이 5-0으로 크게 앞서나가며 승부가 결정되었다고 판단하고 정규시간이 끝나자마자 심판 재량으로 추가시간을 적용하지 않고 종료 휘슬을 불었다. 토트넘의 경기가 종료되는 시점에 리버풀은 아직 경기가 진행중이었다. 살라가 1골만 더 터뜨린다면 손흥민의 득점왕 등극이 무산될 수도 있었던 상황. 다행히 살라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고 손흥민은 공동 득점왕을 지켜낼 수 있었다.
 
 손흥민(토트넘)이 아시아 역대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에 등극했다.

손흥민(토트넘)이 아시아 역대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에 등극했다. ⓒ AP

 
두 마리 토끼 잡은 손흥민

단독 득점왕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손흥민은 프로 커리어 생애 첫 리그 득점왕과 3년만의 챔피언스리그 복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토트넘은 2018-19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준우승)까지 진출했으나 지난 두 시즌간은 연속으로 탑4 진입에 실패하며 하위리그인 유로파리그와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진출에 만족해야했다.
 
올시즌도 초중반까지 기복심한 모습을 보이며 어려운 행보를 이어갔지만 누누 산투 감독 경질 이후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영입하며 대반전에 성공했다. 토트넘은 시즌 내내 4위 경쟁을 펼쳤던 런던 지역라이벌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 맞대결 승리를 기점으로 막판 3연승을 내달리며 극적인 대역전에 성공했다. 토트넘은 22승 5무 11패(승점 71)로 역시 최종전에서 승리한 아스널(승점 69점)을 단 2점차로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거머쥐었다. 5위를 기록한 아스널은 유로파리그로 내려가게 됐다.

손흥민은 올시즌 명실상부한 토트넘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부동의 스트라이커이던 해리 케인이 올시즌 초반 이적 파동 등으로 팀에 녹아들지 못하며 부진하던 시기에도, 손흥민은 토트넘과 재계약하며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줬고 꾸준한 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한 시즌 리그 23골과 공격포인트 30개(+7도움)는 손흥민의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 종전 최다 골이었던 지난 시즌의 리그 17골을 무려 6골이나 넘어섰다. 또한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콘퍼런스리그(1골 1도움)를 포함하면 공식전 45경기 24골(8도움)로 지난 시즌 세웠던 한 시즌 공식전 최다 득점(22골)도 갈아치웠다. 더불어 단짝인 해리 케인과 프랭크 램파드-디디에 드로그바(36골·첼시)를 넘어 EPL 역대 통산 최다 합작 골(41골) 신기록도 작성했다.
 
손흥민은 그동안 꾸준한 활약에도 정작 유럽 현지에서는 실력에 비하여 '저평가받는 선수'로 자주 꼽혔다. 뛰어난 실력에 비하여 소속팀 토트넘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손흥민도 개인기록 타이틀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손흥민은 올시즌 팀의 톱4진입과 개인 득점왕을 동시에 완성하며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급 선수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손흥민에 앞서 이란의 알리레자 자한바크시(페예노르트)가 2017~18시즌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사르다르 아즈문이 2019-20시즌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각각 아시아선수로 먼저 득점왕을 차지한 바 있지만, 수준차이가 큰 유럽 5대 빅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아시아 선수는 손흥민이 최초다.
 
공동 득점왕이지만 PK(페널티킥)이 5골이나 포함된 살라와 달리, 손흥민은 오로지 필드골로만 23골을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살라는 리버풀이라는 유럽 최고수준의 강팀에서 동료들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더 많은 공격지원과 슈팅찬스가 주어졌다. 그에 비하면 손흥민은 후반기에 케인이 살아나고 클루셉스키가 임대로 가세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팀을 홀로 이끌어야 했다. 
 
또한 후반기 부상과 부진으로 주춤했던 살라와 비하여 손흥민은 시즌 막판 10경기에서 12골을 몰아치는 매서운 뒷심을 선보인 것도 살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손흥민의 득점왕 도전이 가시화되면서 토트넘의 전담 키커인 케인이 PK 기회를 양보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지만, 콘테 감독과 케인은 '팀이 우선'이라며 선을 그었고 손흥민은 결국 밀어주기 찬스없이도 자력으로 득점왕 타이틀을 따냈다.
 
손흥민의 가치는 바로 몸값에서도 드러난다. 전 세계 축구 시장가치를 다루는 '트랜스퍼마르크트'는 2022년 현재 손흥민의 몸값을 8000만 유로(약 1067억 원)로 매겼다. 함부르크 SV(독일)에서 프로 데뷔한 2011년 1월 300만 유로(약 40억 원)로 책정됏던 손흥민의 몸값은, 2015년 레버쿠젠 이적 당시 1600만 유로(약 213억 원), 토트넘에선 2500만 유로(약 333억 원)로 꾸준히 상승했다. 현재 연봉도 지난해 7월 토트넘과 4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약 20만 파운드(계약 당시 3억 2천만원)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EPL에서도 최상위권이자 팀동료 케인과 더불어 팀내 최고 대우를 받고 있다.
 
한편 국가대표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며 한국축구가 10회 본선진출의 위업을 달성할 동안 손흥민은 최근 3번의 예선에서 활약하며 본선행에 기여했다. 현재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손흥민은 이번 최종예선 8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하며 공동 선두에 올랐다.

또한 손흥민은 2010년부터 A매치에서 총 98경기 31골을 기록하며 올해안에 센츄리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대한민국 대표팀 역대 득점순위는 5위에 올라있다. 월드컵 본선에서 3골을 기록중인 손흥민이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에서 다시 골을 터뜨릴 경우, 안정환과 박지성을 제치고 한국인 선수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제 손흥민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월드클래스로 인정받은 것을 넘어서, 이제 한국과 아시아 축구 역사상 '고트(GOAT, Greatest Of All Time)'를 논할 수 있는 위상에 도달했다. 그리고 손흥민이 만들어갈 무궁무진한 역사는 앞으로도 현재진행형이다. 훗날 우리는 지금 손흥민의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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