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할까. 결혼하기 위해서? 만약 결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인생을 살면서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듯한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4월28일~5월15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는 앞선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긴 제목만큼이나 100분간 진행되는 연극에는 여러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관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연극의 제목을 굳이 '실생이'라고 줄여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길게 지어야 했던) 그럴만한 사연을 들었던 것처럼 연극을 보고나면 저저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출한 무대 위에 등장인물은 고작 4명이 전부다. 하지만 모두가 일인다역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도중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그들을 혼동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는 구성 초기부터 관객들의 호평을 등에 업고 재연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2년 전, '두산아트랩의 2020 개발작'으로 선정되어 쇼케이스에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안정감 있는 대본과 배우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엮은 연출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에는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공식적으로 초청되어 10월7일부터 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에 선보이는 재연작은 우수한 공연을 보다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의 선정작으로 의미를 더한다. 이처럼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연극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완성도 높은 대본에 근간해 섬세한 창작과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성장했다.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의 공연 한 장면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의 공연 한 장면 ⓒ 글과무대 제공

 
세 작가의 공동창작으로 완성된 이야기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세 작가의 공동집필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소수자의 목소리 발견, 표현, 공유, 여성 구성원의 주체적인 작업, 평등하고 즐거운 창조 과정을 목표로 2017년에 창단된 '글과무대'의 두 번째 공동창작 작품이다.

이인수 연출가를 중심으로 황정은, 진주, 최보영, 김윤영 등 네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단체인데, 이번 공연에는 앞선 세 명이 참여했다. 완성도 높은 텍스트를 토대로 새로운 연극적 형식을 실험하는 단체답게 "이것이 세 작가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한 작품인가?"라고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그간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 수많은 연극과는 다른 방식이다. "어디서 봤을까?"라고 궁금하다면, 오랫동안 방영되는 시트콤이나 국민장수 '전원일기'를 생각하면 맞을지 모르겠다. 보통의 극에서 전개되는 하나의 주제를 일련적으로 흘려보내는 구조가 아니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극.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되지만 다음 회에서는 배경인물이 되는 구조로 말이다. 4명이 등장하지만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공연에 들어서기에 앞서 이들의 관계도를 도식화해 미리 알아간다면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연극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세 명의 작가가 각각의 장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장단을 맞춰온 이들의 창작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면 이 작품이 탄생되기에 앞서 얼마나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이 있었을지 짐작한다. 이유는 무대에 등장하는 9명의 캐릭터에는 치밀하게 얽혀있는 일대일 갈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9명의 이름을 하나에서 열까지 외울 필요까진 없지만, 서로 다른 작가가 초점을 맞췄던 인물들의 갈등 구조에는 나름대로의 주제를 알아가면 좋다. 

우선 작품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9명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남일'과 '희수'에 주목하자. 이들 사이에 12살 딸(수이)이 있지만 이혼 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선 1장에서는 돌싱녀 '희수'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간다.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 남자(재훈)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여자(희수)와 결혼을 전제로 대시한 여자(지나)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래서 결국에 자신의 목표대로 결혼을 선택하지만 결국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산적으로 처리하려는 이성적인 여자와 그래도 주위 사람들을 고려해 감성적으로 처리하고 싶은 남자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라는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자 치열한 현실에 직면해 또다른 갈등 요소가 연이어 터지는 순간이다.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의 공연 한 장면

연극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의 공연 한 장면 ⓒ 글과무대 제공

 
2막에서는 남일에서 파생된 등장인물의 갈등이 초점을 맞췄다. 시간강사로 여유롭지 못한 여자(여은)는 재력을 갖췄지만 여자만 소유하고 싶어하는 이혼남(남일)과 아무 것도 없이 오직 플라토닉한 사랑만 나누는 대학원생(선웅)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안정적인 삶을 가질 것인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한 터널에서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결국 어떤 선택도 내리지 못한다. 3막에서는 다시 희수로 돌아와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녀(희수)에겐 결혼이 목적인 애인(재훈)의 뜻을 이루지 못해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전 남편(남일)이 찾아와 임종 1달을 남겨두고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는 시아버지의 황당한 요구에 자신의 실존 이유를 잃어버렸다며 괴로워한다. 

커플들의 갈등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대 장치

무대를 가득 매우고 있는 각 커플들의 갈등은 일대일 대립구조로 이어진다. 특히 이들의 갈등에 오롯이 빠져들게 할 수 있는 무대장치가 돋보인다. 솔직히 무대장치라고 거창하게 얘기할 것도 없이 무대 위에는 긴 단상 하나만 배치됐다. 이것을 홍보자료에선 예식장에서 볼 수 있는 '버진로드'를 연상하는 긴 런웨이 형식이라 소개했다.

우선 다양한 등장인물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생의 목표가 결혼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까. 결혼을 연상하는 단상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갈등과 이기심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1장에서는 서로의 갈등으로 인해 마음의 간극이 벌어질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의 호흡을 보여주는 것은 연극의 또다른 의도가 시각적으로 처리되어 보인다.

연극은 스테이지와 객석의 이분법적 분할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마치 패션쇼의 모델을 바라보듯 긴 런웨이 위에서 연기가 펼쳐진다. 이것은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도에서 두 사람에게만 몰입해서 관극하길 바라지 않는 숨겨진 의도를 알아챌 것이다. 양쪽에서 바라보는 관객들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뚫고 새어나오는 관객들의 표정까지 관찰하게 된다.

누군가는 배우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관객들의 공감수치가 저마다 다르듯이 다양한 캐릭터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일방향으로 흐르는 무대는 두 사람을 항상 마주보게 만듦으로써 갈등의 구조를 극한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싸움은 완벽한 선악구조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들의 배경에 갇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며, 역지사지의 묘한 감정에 빠질 것이다. 

결혼을 위한 이별과 만남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묻는다

연극의 흐름은 어떤 미사어구나 부대 장치를 통해 연극에 조미료를 더하지 않았다. 결혼을 앞두거나 극한의 연애 과정을 거친 또는 거쳐왔던 세 작가들의 경험이 오롯이 연극에 녹여났다. 이들의 대사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공감하기 힘들 정도로 디테일하다. 이것을 반대로 얘기하면, 극한의 연애과정을 거쳤거나 결혼을 앞두고 현실적인 문제에서 고민하는 커플, 막상 결혼했지만 서로의 갈등 때문에 이별이나 헤어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공감하는 소재와 대사들이다.

결혼 10년차를 넘어 12살의 자녀를 두고 평온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도 쓰나미같은 공감대가 몰려왔다. 굳이 이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에 연극에 빠져드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몰입감이 더했다.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에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갈등에서 어느 하나 완벽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이 아니듯 결혼을 전제로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연애와 결혼에서 실패하고 있지만, 인간의 실존과 생존 사이에서 존재하는 이기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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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가볼만한 소식을 전하는 '주간추천 전시공연'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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