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학생 책임져라'.

1960년 4월 25일 마산 강남극장 앞에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소복같은 흰옷을 입고, 호미와 방망이를 들고 모여든 할머니들은 3천 명에 이르렀다. 시위 도중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학생들을 목격한 할머니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4.19혁명이 일어난 지 62년이 지났지만 할머니들의 시위는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지난 16일 KBS1은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을 통해 당시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문맹률이 28.8%였는데 그중 72.2%가 여성이었다. 딸은 초등학교도 안 보내는 게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 농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발돋음하려던 시기로 상당수의 저연령층 미혼 여성들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차출됐다.

여전히 가부장제의 완고한 틀이 지배하는 사회. 하지만 여성들은 그저 시대의 변혁 앞에 배경으로 머물지 않았다.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성들 
 
 KBS1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

KBS1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 ⓒ KBS1

 
4.19혁명의 도화선은 마산에서 지펴졌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시위에 동참했던 김주열 군 시신이 바다에서 떠올랐다. 얼굴엔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들 사이에는 당시 마산성지여고 3학년이던 이영자씨(81세)도 있었다.  

당시 학도호국단(1980년대까지 존속했던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학생 조직) 대대장이었던 영자씨와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시신을 봤는데도 가만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대대적으로 시위 참여 독려를 시작됐다. .  

학생들이 앞장선 시위, 그중에는 25%가 여학생이었다. 여자는 초등학교 문턱조차 밟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물론 여학생들 만이 아니었다. 중년 여성들은 시위대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미 국무부 보고서는 당시 '중년 여성의 비중과 참여도가 놀랍다'라고 명시할 정도였다. 
 
 KBS1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

KBS1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 ⓒ KBS1

 
마산에서 시작된 3.15부정선거 항의 시위는 서울로 번져나갔다. 당시 고려대학교 법학과 1학년이던 오경자씨(81세)도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에서 활동했다.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들어간 대학, 하지만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고 김주열 군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광장에 모여든 학생들 무리에 합류했다.

당시 여고 2학년이던 이재영씨(81세)는 '하천에 물이 흐르듯 사람들이 광화문을 향해 갔다'라고 회고했다. 날마다 신문을 읽던 아버지 옆에서 일찍 사회 현실에 눈 떴다는 재영씨는 시위대 흐름에 본능적으로 자신을 맡겼다. 하지만 경무대로 향하던 사람들은 삼엄한 경비와 최루탄 공세에 막히고 만다. 전차를 밀고, 수도관을 굴려 경찰 저지선을 뚫었을 때 경찰은 총을 발포했다. 

경무대 앞에서만 21명이 죽고, 172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비규환의 상황, 서울을 비롯한 5개 도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부산 혜화여고에 다니던 김남영씨(79세)는 전봇대 뒤에 서 있다 총을 맞았다. 발이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고 소회를 밝힌 남영씨. 평범한 여고생은 복사뼈가 깨져 평생 장애를 지니고 살게 됐다.  

피를 흘리며 사람들이 실려가고, 친구가 죽어가자 외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을지로 등 서울 한복판에서만 100여 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중에는 중2 여학생도 있었다. 진영숙씨는 시간이 없어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시위에 합류했다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영숙씨가 남긴 편지에는 당시 시위에 합류한 학생들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와 싸우겠습니다. 
제가 철이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저의 목숨을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3.15 부정선거, 그리고 이승만 하야
 
 KBS1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

KBS1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4월' ⓒ KBS1

 
정부 수립과 함께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원조물자에 의존한 경제는 미국의 무상원조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더구나 두 차례나 무리한 개헌을 감행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공권력과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상상초월의 부정선거를 감행했다. 투표함 바꿔치기는 물론, 3인조·5인조로 조를 짜서 누구를 찍었는지 확인하는 행위도 불사했다.   

당시 투표 참관인이던 오무선씨(84세)의 남편은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며 투표장을 뛰쳐나왔고 마산 시민들과 함께 3.15의거 시위(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에 참여했다가 구속당했다고 한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20년 전 세상을 떠났다. 오무선씨는 이후로 3.15 의거 추모제에 20여 년 째 손수 만든 음식을 올리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이 앞장선 시위는 4월 25일 교수 시국단 회의를 기점으로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모한다.
 
광목 자투리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광화문을 향했다. 모여든 시민들은 자석에 쇳가루에 붙듯이 탱크에 올랐다. 천지개벽하는 듯한 시민들의 함성 소리, 품었던 태극기를 꺼내들었다.

이재영씨가 남긴 기록이다.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져 가는 현장을 보며 써내려간 일기다. 초등학생들도 '우리 형님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시위에 합류했다. 이재영씨는 그런 초등학생들을 앞에서 인도했다고 한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서 하야를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바깥 일은 남자들의 일이란 의식이 우선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4.19혁명은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무 앞에 남녀노소가 없다는 걸 일깨워줬다. 무엇보다 여학생들이, 중년의 여성들이, 그리고 할머니들이 시위에 주도적으로 앞장섰다. 그들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4.19혁명의 진정한 주역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s://5252-jh.tistory.com/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4.19 특집 다큐 -할머니의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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