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태종 이방원>의 주인공은 임금이 된 뒤에도 항상 노심초사한다.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와 그 친정집을 보면서 '저들이 욕심을 내지 않을까?' 염려한다. 결국 처절한 정치투쟁과 살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의 고민은 좋지 않은 고민이었다.
 
동시에, 그의 고민이 왕조시대의 정치 시스템에 기인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왕조시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요소를 그의 고민에서 찾을 수 있다.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1

 

중요했던 왕후의 혈통

왕조시대에는 왕의 혈통뿐 아니라 왕후의 혈통도 신성화되기 쉬웠다. 왕후의 혈통이 신성화된다는 것은 그의 친정이 권력을 갖게 됨을 의미했다. 이는 왕후족(왕비족)과 왕족의 알력을 낳을 만한 요인이었다.
 
왕후의 재위 기간이 길어지거나 동일한 가문에서 왕후가 연달아 배출되면 왕후족이 형성되기 쉬웠다. 그런 왕후족이 <화랑세기>에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이런 혈통은 신라 왕실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대대로 계승됐다.
 
918년에 건국된 고려왕조의 초창기에도 왕후족의 발생 조짐이 살짝 나타났다. 천추태후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손녀였다. 그런데도 황보 성을 썼다. 할아버지가 '황보 건'이 아닌 '왕건'인데도 손녀가 황보 성을 썼던 것이다. 천추태후는 할머니인 신정왕후 황보 씨의 손에서 자랐다. 이를 계기로 할머니 가문에 입적되고 그 성을 쓰게 됐던 것이다.
 
신라에서 왕후족이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근친혼 풍습이다. 권력이 왕실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자 가급적 왕실 구성원끼리만 혼인했다. 그러다 보니 왕실의 딸이 왕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대로 왕실 일원으로 남았다. 이는 남계뿐 아니라 여계 혈통도 왕실 내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의 등장은 그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조선시대 관념에 따르면, 왕의 딸이나 손녀는 왕실의 며느리가 될 수 없다. 출가외인이라 했다. 이 시대 관념에 따르면, 왕실 여성이 결혼하면 남의 집 사람이 돼야 했다.
 
그런데 왕건의 손녀인 천추태후에게는 '태후'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손녀가 결혼하면 왕실 밖 사람이 돼야 됐으므로 이런 여성이 대비(태후)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천추태후는 그렇게 됐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고려 왕실에 신라 풍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근친혼이 허용되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천추태후 역시 사촌오빠인 경종 임금과 혼인했다.
 
천추태후 사례에서 명확히 나타나는 현상은, 남계뿐 아니라 여계 혈통도 용인되는 모습과 근친혼이 허용되는 모습이다. 이 두 가지는 신라 왕후족의 형성을 가능케 했던 요인이다. 이런 요인이 고려 초기에도 잠시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고려판 왕후족의 출현을 억제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집안의 딸을 왕비로 들이고 왕비족 형성을 지원할 만한 역량을 가진 대형 가문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그것이다.
 
태조 왕건은 당대의 지배층인 지방 호족들과 연대할 목적으로 결혼동맹을 맺었다. 이를 위해 부인을 29명이나 들였다. 이는 왕실이 호족들에게 휘둘릴 여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왕비족의 성장을 막는 요소로도 작용했다. 자기 딸을 왕실 며느리로 보낸 호족 가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특정 가문의 딸이 자신의 딸이나 손녀를 대대로 왕실에 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왕건의 아들이자 제4대 주상인 광종은 노골적으로 호족을 견제했다. 호족들을 상대로 피의 숙청도 단행했다. 그가 시행한 과거제 역시 호족 자제들의 관직 진출을 합법적으로 견제하는 기능을 발휘했다.
 
왕후 혈통 탄압의 역사

왕건 정권은 호족연합정권으로 불린다. 왕건은 국민 대통합이 아니라 호족 대통합으로 당대의 혼란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 그 같은 정치적 연대의 표시로 그는 호족의 딸들을 왕실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 딸들 중 누군가를 매개로 왕비족이 형성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직전 왕조인 신라의 왕비족 문화가 호족의 딸들에 의해 계승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왕건과 그 아들 광종의 견제책으로 호족들은 서서히 약해졌고, 이는 왕비족의 출현을 억제하는 환경으 로 작용했다.
 
물론 왕건과 광종의 조치가 영구적인 효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왕후족의 등장 가능성은 왕건의 증손자 때에 서서히 나타났다. 왕건의 증손인 제11대 문종은 경원 이씨 가문인 이자연의 딸들과 결혼했다. 인주 이씨, 인천 이씨로도 불리는 이 집안에서 왕후 1명과 후궁 2명을 들였다. 인예태후, 인경현비, 인절현비가 그들이다.
 
조선시대에는 비(妃)가 왕의 정실부인이었지만, 고려시대에는 '비'가 후궁이었다.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정실부인을 지칭하는 후(后)란 표현을 가급적 자제했지만, 고려는 좀더 자주적이었기 때문에 '후'의 사용을 자제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일부 역사서나 백과사전에는 고려시대 '비'가 정실부인으로 표기돼 있지만, 이들은 실은 후궁이었다.
 
문종의 아들인 제12대 순종은 이호(이자연의 아들)의 딸을 후궁으로 맞이했다. 순종의 조카인 제16대 예종은 이자겸(이호의 아들)의 딸을 왕후로 맞이했다. 이자연·이호·이자겸 3대가 연속으로 집안 딸들을 왕실 여성으로 만들었으므로 이 집안이 왕후족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고 볼 수 있다.
 
경원 이씨와 왕실의 혼인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자겸은 예종의 장인이었다. 따라서 이자겸은 예종의 아들인 인종에게 외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이자겸과 인종의 관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장인과 사위의 관계로 둔갑한 것이다. 이자겸의 또 다른 두 딸이 인종의 후궁이 됐던 것이다. 1126년에 인종이 외할아버지 겸 장인을 숙청하지 않고 경원 이씨가 좀더 오래 권세를 지속했다면, 이씨 혈통이 왕후족으로 고착화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태종 이방원은 처갓집인 민씨 집안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처남들을 넷이나 죽였다.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를 죽도록 만들거나 사약을 보냈다.
 
이방원은 사돈인 심씨 가문도 악독한 방식으로 처리했다.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충녕의 처가인 심씨 가문을 그렇게 탄압했다. 이 때문에 세종의 장인인 심온은 사위가 임금이 되고 3개월 뒤인 음력으로 태종 18년 11월 25일(양력 1418년 12월 22일) 체포되고 뒤이어 사약을 받았다.
 
이처럼 이방원이 왕실 사돈들을 탄압한 것은 이들이 왕후족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측면도 있었다. 왕후족으로 자리를 잡고 신성화 단계에 진입하면 신라 때처럼 왕후족이 대대로 권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민씨 가문을 탄압한 것은 그런 가능성에 대한 견제의 측면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조치는 영구불변의 효과를 낳지 못했다. 조선 제9대 성종 때 파평 윤씨인 정현왕후가 등장한 데 이어 제11대 중종 때는 파평 윤씨인 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연달아 배출됐다. 이는 문정왕후가 군주와 다를 바 없는 위상을 갖고 윤씨 가문이 실권을 쥐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왕후제도가 존재하는 한은 언제라도 왕후족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1800년에 정조가 죽은 뒤에는 경주 김씨,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가문이 자신들의 딸을 앞세워 왕실에 맞먹는 권세를 행사했다. 세도정치시대로 불리는 이 시대는 약 60년간 이어졌다. 이 시대에는 왕족이 극도로 약해지고, 왕후족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세도가들이 국정을 이끌었다. 태종 이방원이 끔찍이도 경계했던 현상이 왕조 말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방원이 19세기 초반의 그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면, 사실상의 왕후족이 셋이나 등장해 있는 현실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후족이든 왕족이든 끊임없이 견제하지 않으면 권력은 비대해지고 신성해지기 쉽다는 점을 이런 사례에서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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