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KBS 1TV 사극 <태종 이방원>은 2월 26일, 27일 방송분에서 이방원(주상욱 분)이 쿠데타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보란 듯이 사병들을 훈련시키다가 아버지 이성계(김영철)로부터 질책을 받는 장면도 있었다. 부인 민씨(박진희 분)가 사병들의 식사를 챙기고 군사훈련 참가를 자청하는 장면도 있었다.
 
이방원은 고려왕조의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던 1392년에는 진보를 편들었다. 과전법이라는 토지개혁을 놓고 개혁파인 이성계·정도전과 반대파인 정몽주가 첨예하게 대결하던 중에 선죽교 테러를 도발해 보수파를 일거에 몰락시켰다.
 
그랬던 그가 6년 뒤에는 진보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다. 1398년에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은 건국 이후에 정도전 정권이 이룩한 성과들을 상당 부분 뒤엎는 것이었다.

쌀값보다 저렴했던 토지

이방원 집권 이후의 조선은 이성계·정도전 집권 당시의 조선과 명칭은 같지만 실질은 많이 달랐다. 이·정 집권기에는 재상 중심주의가 추구되고 이방원 재위기에는 왕권 중심주의가 추구됐다는 점 외에도 달라진 게 많았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민중을 대하는 국가권력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 점은 노동력의 주력을 형성하는 노비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노비 매매가 까다로웠다. <경국대전> 형전에 따르면, 노비를 매매할 때는 관청에 신고해야 하고 신고 없이 매매하면 노비와 거래대금을 몰수당할 수 있었다. 노비 문제를 형법전에 해당하는 형전에 규정한 것은 죄수들을 노비로 만들던 고대의 전통과 무관치 않다.

또 법률로 정한 노비의 매매대금도 실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높았다. 형전에 따르면, 16~50세인 노비는 지폐인 저화로 4천 장, 15세 이하나 51세 이상은 저화 3천 장으로 거래해야 했다. <경국대전> 호전에서 "저화 1장은 쌀 1되에 준한다"고 했으므로, 저화를 쌀로 환산하면 16~50세는 쌀 80가마니, 15세 이하 및 51세 이상은 60가마니에 거래돼야 했다.
 
오늘날에는 토지의 가치에 비해 쌀의 가치가 현저히 낮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에 비해 토지 가격은 낮고 쌀값은 높았다. 유휴 토지가 더 많고 농업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60가마니·80가마니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갖고 있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낄 만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법정가격은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로는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 관청에 신고할 때는 위의 가격으로 거래된 것처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값에 거래되지 않았다. 국가에서도 그런 실상을 묵인했다. 대략적인 계산이기는 하지만, 실제 가격은 18세기 전반에는 쌀 7~27가마니, 19세기 전반에는 5~19가마니였다.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노비 매매 절차가 이전보다 까다롭고 법정 가격이 실제 가격보다 높았던 데는 조선 건국 주역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 노비를 물건처럼 헐값에 매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투영돼 있었다. 그런 인식이 쉽게 무시되지 못했기에 훗날의 <경국대전>에 그런 규정이 들어갔던 것이다.
 
1392년의 건국 주역들이 노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는 점은 음력으로 태조 7년 6월 18일(양력 1398년 7월 31일)에 있었던 일에서도 느낄 수 있다. 형조 산하의 노비 담당 부서인 형조도관(훗날의 장례원)이 태조 이성계에게 "노비 가격은 대부분의 경우에 오승포(五升布, 중급 베 혹은 무명) 15필을 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의 가격은 400~500필에 달합니다"라고 한 뒤 "이는 가축은 중히 여기고 사람은 가벼이 여기는 것이니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是重畜輕人, 於理不順)"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물건인 노비를 '사람'으로 호칭하면서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노비제도의 부조리가 극성기에 달한 고려 말기를 경험했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1392년의 건국 주역들이 이전 정치세력들보다 진보적인 정신을 갖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가 건국 초기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기에, 훗날 <경국대전>에 노비 법정가격이 실제보다 높게 규정되고 이 조항을 지키지 않은 역대 정권들도 법률 규정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이방원이 집권한 이후의 조선

노비들에 대한 그 같은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방원 집권 이후부터였다. 이방원은 '고려시대처럼 노비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정신까지는 거역하지 못했지만, 노비들에 대해 이것저것 불리한 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노비들의 노동력을 발판으로 토지 경영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지주계급 쪽에 편향된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자 노비가 여자 양인(자유인)과 결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런 결혼에 대한 처벌 규정은 이전부터 있었다. 이방원은 그 규정을 한층 강화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 1년 7월 27일(1401년 9월 5일) 남자 노비와 여자 양인의 혼인 금지를 재천명하는 한편, 법을 위반하고 혼인하면 강제로 이혼시키는 규정을 설치했다. 고려시대보다 더 가혹한 규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KBS 1TV <태종 이방원>의 한 장면 ⓒ KBS

 
태종 6년 1월 1일(1406년 1월 20일)에는 한층 가혹한 조치가 나왔다. 결혼한 부부를 강제 이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태어난 아이를 공노비(관노비)로 만들기까지 했다. 아이가 노비가 되느냐 아니냐는 어머니가 노비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해왔는데도, 남자 노비가 여자 양인과 결혼하면 아이를 무조건 노비로 만드는 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규정은 그 뒤 변화 과정을 겪게 되지만, 정도전을 비롯한 건국 주역들이 노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 직후에 이방원이 이런 조치들을 연이어 내놓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비들에 대한 건국 주역들의 태도를 근본적으로는 뒤엎지 못했지만, 당시 관점에서 보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방원의 선죽교 테러를 잘 기억하고 있었을 당시 사람들이 볼 때, 1392년만 해도 진보세력의 편에 서서 대담무쌍한 행동을 했던 이방원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1398년 이후로는 개혁정신을 거스르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이방원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민중들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방원, 서얼 차별을 합리화한 까닭

시대정신을 부정하는 이방원의 태도는 서얼들에 대한 정책에서도 나타났다. 정도전이 서얼의 피를 물려받고, 이성계의 이복동생이자 건국 주역인 이화가 노비의 아들이고, 이방원의 측근인 하륜이 서얼이고, 건국 주역이자 조광조의 4대조인 조온이 서얼의 피를 물려받은 데서도 나타나듯이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서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방원은 그들과 함께 조선을 세웠으면서도, 서얼에 대한 유례 없는 차별정책을 집권 뒤에 내놓았다. 지금의 금고형처럼 서얼의 관직 진출과 결혼을 제약하는 서얼 금고법이 그에게서 시작됐다. 정도전의 보호를 받은 세자 이방석을 살해한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고자, 후처의 아들인 이방석을 서자로 규정하고 서얼 차별을 합리화했던 것이다.
 
서얼 차별은 대표적인 인권 탄압이었다. 노비들의 결혼을 한층 더 제약하는 것과 더불어 서얼을 차별하는 일이 태종 이방원 때 나타났다. 이방원이 1392년의 역사적 진보를 상당 부분 퇴보시켰던 것이다. 1392년의 진보세력 가운데서 나온 이방원이 1392년의 정신을 부정하는 데 앞장선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이방원 부부는 사병을 열심히 훈련시키며 집권의 그날만을 꿈꾼다. 그들의 꿈은 결과적으로 역사를 퇴보시키는 악몽 같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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