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아내니까 당연히, 며느리니까 당연히, 여자니까 당연히. 그렇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앞으로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1회, 구영)

카카오TV <며느라기2>는 사린(박하선)의 남편 구영(권율)의 이런 다짐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구영은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구영은 1회 "시어머니 생신상을 남편에게 미루고"라며 잔소리하는 고모에게 "세상에 며느리 도리라는 게 어디 따로 있어요? 자식 도리 못한 저희 잘못이죠"라며 바른말을 한다. 이런 구영의 모습은 현실의 여성들에겐 '로망'에 가까운 멋진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했었다. 2편에서는 전편부터 아내 혜린(백은혜)의 '탈며느라기 실천'을 지지해온 형 구일(조완기)과 구영이 힘을 합쳐 가부장제 맞서 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 구영과 구일은 여전히 좋은 남편인데 사린과 혜린은 줄곧 이런 남편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사린은 임신한 자신을 끔찍이도 위해주는 구영이 서운하기만 하고, 혜린은 구일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 나 역시 회가 거듭될수록 구영과 구일에게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왔다.
 
도대체 이 '좋은 남편'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카오TV <며느라기2>는 사린의 임신을 둘러싼 사건들을 통해 기울어진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카카오TV <며느라기2>는 사린의 임신을 둘러싼 사건들을 통해 기울어진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 카카오TV

 
의심하는 아내, 확신하는 남편
 
전편에서 '탈 며느라기'를 다짐했던 사린은 '미움받을 용기'로 이를 실천하며 스스로를 지켜간다. 그러던 중 미묘한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불안해 하다 마침내 임신임을 확인한다. 사린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경력도 걱정이 되고, 엄마가 되는 일도 두렵기만 한다. 때문에 사린은 임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한결같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임신을 '축하'해준다. 이에 사린은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죄책감에 빠져든다. 그리곤 4회 친정어머니에게 이렇게 하소연 한다.
 
나 너무 이상한 앤가 봐. 사실은 나 하나도 기쁘지가 않아. 애기한테 정말 미안한데 솔직히 잘 해낼 자신이 없어. 나 너무 이상하지. 못됐지. 나 진짜 나쁜 엄마지. 나 왜 이러지?

반면, 구영은 한껏 기뻐한다. 천천히 소식을 알리고 싶다는 사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도 가족 모임에서도 그는 티 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의 표정만 보고도 회사 사람들이 "구영씨 아빠 되는구나"라며 알아차릴 정도다. 구영에게 아빠가 되는 기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는 자신의 기쁨에 취해 사린의 마음을 전혀 읽어내지 못한다.
 
구일과 혜린은 아이를 돌봐주던 이모님이 그만두면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육아를 실천해온 구일-혜린 부부지만, 막상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지자 구일은 아주 손쉽게 "장모님 댁에서 재워도 되잖아", "엄마에게 맡기자"라는 말을 내뱉는다. 혜린은 "그래도 저희 자식이니까 두 분께 폐를 끼치는 거니까"라며 대안을 찾아보려 하지만, 시어머니는 이렇게 반박한다. "그렇게 무자르듯 자르면 안돼" (4회).
 
결국 혜린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시어머니가 돌봐주면서 부당한 간섭에도 'No'라고 말할 수 없게 되고 혜린은 몹시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구일은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는다.
 
기울어진 세상, 기울어진 시선 
 
왜 사린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의심하는 반면, 구영은 자신의 감정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왜 혜린은 시가에 아이를 맡기면서 불편해 하지만, 구일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을까. 나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며느라기의 '좋은 남편'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린과 혜린이 살고 있는 세상이(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여전히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남성인 구영과 구일의 느낌과 생각은 주류의 것, 그러니까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사린과 혜린의 느낌과 생각은 종종 부인되거나 무시된다.
 
구영이 사린을 대하는 태도에는 부모가 되는 것은 기쁜 것이고, 엄마가 될 여성은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시선이 깔려 있다. 세상의 지배적인 시선과 일치하는 구영의 생각과 감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옳은 것이 된다. 때문에 구영은 4회 태명을 짓자마자 사린을 당연하다는 듯 '열무엄마'라고 부른다. 또한, 임신한 아내를 출근시켜주고, 굽 낮은 신발을 챙겨주며, 요리까지 해주면서도 정작 사린의 기분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심지어 사린에게 묻지조차 않는다.
 
반면 사린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은 '이상한' 것이 된다. 이는 여성의 경험을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세상의 구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임신이라는 게 기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6회 사린이 친구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친구들은 '축하해'라고 하는 대신 '괜찮은 건지, 축하해도 되는 건지' 물어봐 준다. 이는 여성들이 엄마 되기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사린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데 이는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힘든 현실을 반영하는 듯했다.
 
혜린-구일 역시 비슷하다. 7회 혜린과 구일은 육아문제로 다툼을 하는데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는 게 불편하다는 혜린에게 구일은 이렇게 말한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불편한 거 참는 게 싫은 거지.
 
구일은 혜린이 불편한 이유를 묻기는커녕 일방적으로 그 감정을 부인하며 '참기 싫은 것'이라고 혜린을 비난한다. 이는 구일 역시 가부장제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임신 소식에 구영은 자신의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지만, 사린은 자신의 복잡한 감정들을 드러내지 못한다.

임신 소식에 구영은 자신의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지만, 사린은 자신의 복잡한 감정들을 드러내지 못한다. ⓒ 카카오TV

 
진정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
 
그렇다면 이들 부부가 진정한 '평등'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무엇보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세상은 기울어져 있음을, 남성의 시각으로 편재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나와 상대방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린은 자신의 느낌과 감정, 생각들을 신뢰해야 한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하기 전에 '내가 왜 이렇게 느낄까'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동시에 주변 여성들의 경험에 보다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린이 도 팀장(김지성) 등 다른 여성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했다면 세상의 기준이 전부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이상하다'는 죄책감을 더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구영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기울어져 있음을, 내게 편안하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기억했더라면 사린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임신 소식에 나는 기쁜데 당신은 어때?"
 
구일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으로 태어난 것이 일종의 특권이 되는 세상임을 그가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혜린이 불편하다 했을 때 일단 그 감정을 존중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혜린은 자신의 불편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타당하다 여기고, 이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혜린의 태도 덕분에 구일은 자신의 기울어진 시각을 조금씩 알아가지 않을까 싶다.
 
 구일은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느끼는 혜린의 불편한 마음을 무시해버린다.

구일은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느끼는 혜린의 불편한 마음을 무시해버린다. ⓒ 카카오TV

   
그럼에도 나는 구영과 구일을 칭찬한다.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자라나 이 정도의 젠더 감수성을 지닌 것만으로도 이들은 참 좋은 남편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이들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자칫 내가 승인하고 동의해야 '탈 며느라기'가 가능하다는 시혜적 태도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미 기울어져 있는 세상에서 평등을 실현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기울어져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울어진 채로 '평등'이라는 기치를 들고 서 있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치우친 시선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구영과 구일이 이를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며느라기>의 인물들이 보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며느라기2>의 남은 이야기들이 이런 과정을 보여준다면 정말 좋겠다. 여전히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작은 희망들을 드라마에서라도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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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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