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결국 헤어지기로 하고야 말았다.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영은(송혜교)-재국(장기용) 커플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재국은 지난 11회 방송분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한사코 반대하는 어머니께 "한 달만 시간을 달라"며 이별을 결심했다. 그 후 이 커플은 열심히 사랑하며 이별을 맞이하는 중이다.

나는 이들이 '이별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며 애써 위안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별의 이유가 이들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방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부당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수완의 존재를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재국-영은에게 자꾸만 대입하며 무조건 반대만 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 드라마의 부모들은 영은-재국의 사랑을 이토록 반대하는 걸까. 그리고 왜 영은과 재국은 부당한 반대에 저항하지 않고 '이별'을 택했던 걸까.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문화적 가치관의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포스터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포스터 ⓒ SBS


'집단주의적 사랑'과 '개인주의적 사랑'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기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문화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개인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요소들을 연구해왔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이 바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다.

집단주의는 개인을 '나'라는 고유한 정체성보다 집단 안에서의 역할과 의무와 관련지어 이해한다. 또한, 개인의 욕구와 소망이 아닌 집단 전체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더 중요시한다. 집단주의 문화의 사람들은 자아를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중점을 두어 형성해간다. 이런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자아를 '상호의존적 자기'라고 부른다.

반면 개인주의는 '나 자신' 그러니까 한 개인의 욕구와 권리를 중시하며 개인을 독립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인다. 이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타인과의 관계나 집단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자신의 고유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탕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의사를 결정한다. 이런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자아를 '독립적인 자기'라고 한다.

이렇게 '자기'의 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는 당연히 사랑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 저서 <심리학, 사랑을 말하다>에서 카렌 디온과 케네스 디온은 이를 '심리적 개인주의'와 '심리적 집단주의'라 표현하면서 이것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했다. 이들에 따르면, '심리적 개인주의'를 지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상태, 즉 개인적인 정서 차원을 중요시하고 '심리적 집단주의'가 강한 사람들은 집단과 관련된 소속감을 중시하며 사랑의 감정적 측면보다는 보살핌과 같은 의무적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상호 의존적 자기와 독립적 자기의 충돌

이런 면에서 볼 때 드라마 속 부모들은 집단주의 문화에 속하는 심리적 집단주의자들로 '상호 의존적 자기'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재국의 어머니 민 여사(차화연)와 영은의 어머니 정자(남기애)는 자신의 행복보다 가정을 지키는 역할에 더 충실했던 인물이다. 민 여사는 11회 "수완이랑 너 둘만 보고 살았다"고 하고 정자 역시 "강정자 인생인데, 강정자로는 한 번도 못 살아봤다"고 말한다. 이는 상호의존적 자기로 살아왔음에 대한 고백이었다. 이 말속엔 독립된 자기를 추구하지 못한 한탄이 묻어나는데 그럼에도 이들은 상호의존적 자기를 자녀들에게 강요한다. 정자는 영은에게 "남들이 가는 넓은 길을 가라"고 충고하고, 민 여사는 목숨을 걸고 둘 사이를 반대한다.

반면, 재국은 그가 오래 거주한 프랑스 파리의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인물로 '독립적인 자기'를 지녔다. 재국은 1회 "난 그냥 내 자유와 독립성을 지키면서 이대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야"라고 선언적으로 말하는데 이는 그가 독립적 자기가 강한 인물임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는 드라마 초반 수시로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독립적 자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재국과 어머니들은 문화적 가치관,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때문에 서로를 좋아함에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

영은은 독립적인 자기가 강한 편이지만 상호의존적 자기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상태를 즐기려는 심리적 개인주의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이별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는 영은이 자살까지 운운하는 재국의 어머니와 그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12회 자신에게 소중한 관계들인 미숙과 부모, 그리고 회사가 힘들 때 자신만 떠날 수 없다며, "당신을 사랑하지만, 내 인생도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는 영은이 독립적이면서도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재국의 어머니 민 여사와 영은의 어머니 정자는 '집단주의 정체감'에 기반해 자녀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재국의 어머니 민 여사와 영은의 어머니 정자는 '집단주의 정체감'에 기반해 자녀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 SBS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이들 모두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들은 반대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네 엄마니까"(민여사) "평평하고 좋은 길을 가길 바란다"(정자). 즉, 이들은 자신과 자녀의 삶을 연결시켜 생각하며, 집단주의 사회 속에서 자녀들이 인정받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이들에겐 이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재국과 영은 역시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이끌린 감정을 믿었고, 집단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관계임을 알면서도 의지를 가지고 서로를 선택했다. 또한 부모들의 무례로부터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배려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을 그토록 반대하는 부모 역시 사랑한다. 때문에 부모의 말에 흔들리고 갈등하며 연민한다.

결국 드라마 속 인물들은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일까? 사랑의 정의를 고민했던 학자 에릭 프롬, 스캇 펙, 벨 훅스는 모두 '사랑은 서로의 성장을 돕기 위한 의지와 행동'라고 했다. 즉 진정한 사랑은 로맨틱한 감정에 빠지는 것도, 동정심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바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선택과 의지, 배려와 헌신을 통해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다.

나는 부모들의 사랑과 영은-재국의 사랑 중 진정한 사랑에 가까운 것은 영은-재국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기로 선택했고, 의지를 가지고 사랑을 이어간다. 영은은 재국의 지지를 받아 힘든 순간들을 잘 버텨내고, '안전거리 유지하며' 지내던 재국 역시 타인과 가까워지는 용기를 낸다. 이들은 이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성장을 고려한다. 영은은 '자신을 성장시킨 소중한 것들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재국은 이를 받아들인다. 영은 역시 재국이 사진작가로서의 성장을 위해 출국을 결정했을 때 흔쾌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사회 정서상 용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계를 막아서는 부모들의 사랑은 '성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모들의 사랑은 배려는커녕 자신들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며, 헌신 역시 자신들의 방식대로 행하고 이를 인정받기를 바란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이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재국과 영은은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면 이별도 사랑이 될 수 있음을 실천한다.

재국과 영은은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면 이별도 사랑이 될 수 있음을 실천한다. ⓒ SBS


이처럼 문화적 가치관은 자기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토대가 된다. 집단주의 가치관 속에 자라온 부모 세대와 개인주의 가치관의 세례를 받은 자녀 세대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문에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세대 간의 충돌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부모들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돌아봤다면 어땠을까.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다름'을 '틀림'이라 말하지 않고, 진짜 사랑의 의미를 우선했더라면, 아마도 영은과 재국은 더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여 이들이 이별을 선택하더라도 부모의 반대가 아닌 순수하게 자신들의 성장을 위한 이별일 테니 '이별도 사랑'이라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좀 더 잘 와닿았을 것 같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 때문에 갈등이 생기거나 혼란스러워질 땐 서로의 문화적 가치관을 점검해보자.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떠올려보자. 옳고 그름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충돌을 유발했다면, 판단의 기준은 '진정한 사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문화적 가치관의 차이가 '진정한 사랑'을 막아서고 누군가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을 줄여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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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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