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자유롭게 살아가는 법도, 규칙을 지키는 법도 배우지 못한 탓에 스스로 만든 두려움에 갇혀버린 반려견의 사연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6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에서는 도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산책을 거부하는 시고르자브종 추정 믹스견 아롱이가 고민견으로 등장했다.
 
보호자는 자신의 첫 반려견인 아롱이와 함께 산 지 1년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보호자는 완벽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방문 훈련도 여러 번 받았고 지금도 교육받은 내용을 꾸준히 복습하고 있음을 밝혔다. 고민견도 보호자의 통제에 순순히 잘따르며 귀여운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강형욱은 보호자와 고민견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훈련을 잘 배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던 고민견이지만 야외 산책을 나가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아롱이는 돌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을 거부하는가 하면 자꾸 구석으로 숨어들며 집안에 있을 때보다 텐션이 급격히 낮아진 모습을 보였다.

보호자는 간식으로 아롱이를 달래며 조금씩 유인하려고 했지만, 아롱이는 격하게 몸부림을 치며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외출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축처진 꼬리와 불안한 눈빛은 두려움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호자는 "아롱이의 고민은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정상적으로 걸어서 산책을 못하는 아롱이를 위하여 더 넓고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보호자가 그나마 선택한 대안은, 차를 이용한 드라이브였다. 다행히 아롱이는 지하로 내려가는 것과 차에 탑승하는 것까지는 별 거부감없이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공원에 도착하자 아롱이는 또다시 차에서 내리는 것을 거부했다.
 
아롱이의 또다른 복잡한 문제는 바깥에 나가기는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실외 배변만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보호자는 하루에 5~6번씩 아롱이의 배변을 위하여 집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집안에는 배변패드가 존재하지 않았고 보호자 없이 아롱이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배변을 무리하게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고. 보호자는 아롱이를 밖으로 데려가거나 아파트 공용 테라스로 데려가 배변을 해결해야 했다. 보호자는 아롱이를 위하여 한강 앞 아파트로 이사까지 했지만 같이 산책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m 목줄에 묶여 살던 아롱이의 과거

아롱이의 아픈 과거가 밝혀졌다. 아롱이는 본래 강원도 홍천 시골에서 보호자의 할아버지-할머니가 기르던 개였다. 연세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다보니 아롱이는 항상 야외의 허름한 판자에서 1m 길이의 쇠사슬 목줄에만 묶여 살아야 했고 산책이나 배변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는 것. 지금도 시골에서 개를 기르는 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롱이는 보호자와 함께 도시로 올라온 이후, 조용했던 시골과는 너무 다른 번잡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아롱이의 산책공포증이 시작된 계기로, 어느날 쓰레기 수거하던 폐기물 수집운반 차량에서 쓰레기봉투가 굉음과 함께 터지는 소리를 듣고 아롱이가 발작하듯 크게 놀란 일이 있었고 이후 외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보호자는 아롱이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하여 수차례 방문훈련까지 진행했지만 안타깝게도 1년간의 노력에도 성과는 미미했다.
 
보호자는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도시로 데려왔는데, 아롱이에게는 더 두려운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아 미안하다. 제가 있어도 여전히 두려워하니까 보호자로서 안심되는 존재로 못 받아들이는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며 자책했다. 이어 보호자는 "아롱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데려왔는데 아롱이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제가 어떻게, 어떤 태도로 아롱이를 이끌어야 더 행복한 견생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고민을 의뢰했다. 진정성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보호자의 사연에 MC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이경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막막함을 고백하며 보호자와 고민견의 사연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경규는 "왜 이렇게 건물이 높지, 왜 다들 서울말을 쓰지 당황했었다"고 밝히며 "환경이 바뀌는 건 누구나 당황스러운 일이다. 아롱이는 더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게스트로 출연한 에일리 역시 미국에 있다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한국을 찾았으나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음을 고백했다.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이경규와 장도연, 에일리가 먼저 보호자의 집에 방문하여 아롱이를 관찰했다. 아롱이는 첫 만남부터 유독 이경규를 반기며 애교를 떠는 등 훈훈한 분위기를 보였다. 집안에서 발랄한 모습을 보이던 아롱이는 집밖으로 외출을 하려고 하자 다시 경계심을 드러내며 한 구석에서 잔뜩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를 거부하던 아롱이는 정작 지하층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호자가 이끌기도 전에 앞장서서 차까지 선뜻 탑승하는 모습으로 대조를 이뤘다.
 
강형욱 훈련사가 본격적인 솔루션에 나섰다. 여기서 보호자는 생각지도 못한 아롱이의 반전 과거를 공개했다. 시골에서의 아롱이는 토끼나 닭을 사냥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도시에서도 다른 소형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야수같은 공격성을 드러낸다는 것.

강형욱은 아롱이에 대하여 "포식적인 공격성이 있는 개는 겁도 많다. '내가 먼저 공격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있는 거다"라고 분석하며 "보호자에게는 아롱이의 포식성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강형욱은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줄에 묶여살았던 개들이 안타까운 것은, 규칙을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지켜본 적도 없다. 마음대로는 못 살았지만 (자신에게 허용된 세계 안에서) 막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어 강형욱은 "가끔씩은 무섭다는 핑계를 댄다. 너무 오랫동안 결핍된 상태에 있다보니 기본적인 것만 취하는 데 만족한다. 참는 것, 싫은데 해야하는 것을 잘 못한다. 어쩌면 밖에서 느꼈던 두려움도 아롱이가 '스스로 만든 두려움'일 수 있다. '난 못 한다니까, 못 해'라면서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고 아롱이의 심리를 진단했다.
 
강형욱은 보호자와 함께 아롱이를 자신감 회복을 위한 훈련을 진행했다. 산책이 두려운 반려견과 외출 전 계속 대화를 하면서 긴장을 풀어줄 것을 당부했다. 엘리베이터 투어 훈련에서는 바로 1층에서 밖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내려 익숙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으로 엘리베이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했다. 강형욱의 솔루션은 두려워하는 대상에 오히려 장시간 집중적으로 노출하면서 공포를 극복해내는 행동주의 치료법의 일종인 홍수법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훈련은 역시 1층에서 고비를 맞이했다.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눈치챈 아롱이는 다시 경계심을 드러내며 외출을 거부했다. 강형욱은 반려견이 안정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것을 보호자에게 주문했다. 이경규가 긴급 투입되어 간식과 양말을 떨어뜨려서 유인하는 방식으로 아롱이의 적응을 도왔다. 반복되는 훈련에 아롱이는 조금씩 긴장을 풀었고 어느새 공동현관을 벗어나 집밖까지 꽤 멀리나오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하차 훈련도 목줄을 천천히 당기며 아롱이를 점진적으로 차 밖에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성공했다. 보호자와 출연자들 모두 단시간에 눈에 띄게 달라진 아롱이의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보호자는 "아롱이와 어딜 가든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에일리는 반려견을 위한 특수 청소도구들을 선물하며 보호자와 아롱이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난 못 해'라면서 무기력 상태에 빠지는 것"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좁은 실내에서 사는 데 익숙한 도시견과 넓은 공간이지만 목줄에 매여사는 시골견의 환경적 차이는 현대 반려견 문화에서 중요한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이경규는 '서양식과 동양식 반려문화의 충돌'이라고 분석하며, 반려견을 재산권으로 생각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정부에서 방견을 엄격하게 단속하기도 했는데 개를 학대하는 의도가 아니라, 개를 잡아가는 개장수가 많았던 한국의 특성상 반려견을 지키기 위하여 묶어서 키우는 환경이 보편화되었다는 것.

다만 강형욱은 "서양에도 개를 묶어키우는 문화는 있다. 그런데 한국은 반려동물 문화가 발전할 접점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강형욱은 "해외는 목축업을 중심으로 했기에 개를 일종의 파트너같은 공생관계 개념으로 여겼다. 한국은 농경사회다 보니까 개는 농사에 도움이 안 되니 가축이 밭에 들어오면 혼났다"는 차이를 설명했다. 동양식 반려견 문화라서 잘못되었다기보다는 환경적-구조적 차이에서 기인한 현상임을 설명한 것이다.
 
사실 아롱이의 아픔은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자유도, 제대로 된 규칙도 배우지 못했고 그저 짐승으로서 최소한의 생존과 기본 욕구만 해결하는 데 만족하며 살아야 했던 많은 시골견들이 지금까지도 겪고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롱이의 두려움은 스스로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롱이에게 그 이상의 세상을 보여줄 기회를 주지 못한 인간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1m의 목줄이 미치는 범위만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던 아롱이는, 다행히 늦게나마 좋은 주인을 만나 반려견으로 존중받는 제2의 견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어떤 주인-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개가 그저 말 못하는 가축으로 남을 수도, 혹은 진정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반려견주들에게 단지 개를 먹여주고 키워준다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생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감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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