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최근 사극을 볼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주인공의 성별이 뒤바뀐다는 점이다. 요 몇 년 사이 방영된 사극들은 여성이 의도적으로 남장을 하거나, 남성의 영혼이 여성의 몸에 들어가는 등 주인공이 스스로 정체화한 성별로 살지 못하는 설정이 유독 많았다.
 
유교 질서에 근거한 계급 사회인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인물들은 대체로 신분에 맞는 역할에 갇혀 살아간다. 여기에 성적 정체감마저도 숨겨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진 사극 속 인물들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내곤 했다. 이런 사극들을 볼 때마다 나는 역할로만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낀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의 거리감 때문인지 그다지 인물들에게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KBS <연모>의 휘(박은빈)는 달랐다. 여성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휘의 모습은 안쓰럽고도 대견하게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도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실천하고, 마침내 커밍아웃을 해내는 휘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현실 속 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삶의 근원적인 불안과 마주하면서도 자신을 지켜내려 애쓰는 휘의 내면을 살펴본다.
  
 자신이 성적 정체감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휘의 이야기를 담은 KBS <연모> 포스터

자신이 성적 정체감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휘의 이야기를 담은 KBS <연모> 포스터 ⓒ KBS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불안을 느낀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용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이 근원적인 불안을 주로 '멸절불안'이라고 부른다. 멸절불안은 양육자가 자신을 집어삼켜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사랑받고 있음이 느껴지지 않거나,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될 때 심해진다. 실제로 버림받는지와는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인지되는 불안이다.
 
그런데 만일 양육자가 자신을 버리거나 살해하는 일이 실제가 된다면 어떨까? 이는 불안을 넘어 생존에 대한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연모>의 주인공 세자 휘는 바로 이 멸절불안을 느낌이 아닌 현실로 경험한 인물이다.

남녀쌍둥이로 태어난 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어머니 빈궁(한채아)은 기지를 발휘해 휘를 살려내지만, 휘는 죽은 듯 숨어서 자라난다. 그러다 궁녀가 되어 입궐하게 되는데 여기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세자와 맞닥뜨린다. 세자가 자신의 옷을 입고 궐 밖에 나간 날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마침내 자신이 죽어야 했던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는 휘에게 멸절불안을 자극하는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휘는 살아남기 위해 여성으로서의 정체감을 숨기고 남자인 세자로 살아가게 된다. 비밀이 탄로나는 순간 죽을 수도 있는 불안에 떨며 늘 긴장한 채 말이다.
 
이처럼 큰 불안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따위는 잊게 된다. 그저 나의 생존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휘는 달랐다.

드라마 곳곳에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던 휘는 11회 안하무인의 청운군(김서하)을 벌한 후 다그치는 혜종(이필모)과 대비(이일화)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토록 무서운 외조부(윤제문)에게도 "하찮은 목숨이라 하셨습니까. 세상에 하찮은 목숨 따위란 없습니다"라며 당당히 자신의 가치를 밝힌다. 어떻게 휘는 생존을 위협받으면서도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와 다른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성인 정체성을 숨기고 남자인 세자로 살아간다.

휘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성인 정체성을 숨기고 남자인 세자로 살아간다. ⓒ KBS

나는 그 이유가 다른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과 공감하는 마음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7회 휘는 위기에 처한 지운(로운)을 구하기 위해 이판대감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판께서 생각하는 이치와 도리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기준은 달라지겠지요. 적어도 제가 앞으로 이 나라에서 보고 싶은 정의에는 어긋나지 않는 곳이었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휘가 사람은 모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 부분이었다. 즉, 휘는 '정신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정신화 능력은 사람은 저마다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조망해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정신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내 마음의 고유한 이유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만이 나와는 다른 타인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휘는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그러니까 생명에 대한 존중-을 그토록 당당하게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휘는 이를 타인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공감과 연민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간다. 때문에 8회 명나라 태감의 무례한 행동 속에서도 그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 의지와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숨길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들이 너무 안타까워서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
 
하지만 당당하게 불안과 직면하며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켜가며 사는 일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성적 정체감을 숨기며 살아가는 일은 늘 자기 자신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했을 것이다. 12회 "저는 단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라는 휘의 외침은 이런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휘가 그 긴 세월을 버텨내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몇 명의 사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휘가 자유롭기를 바라는 현(남윤수), 현재에 충실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지운의 존재는 휘에겐 큰 위로였을 테다. 특히, 휘의 비밀을 모른 상태에서도 휘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지운의 편견없는 태도는 휘 역시 지금-여기에 충실하도록 도왔을 것이다. 휘의 소신있는 행동에 대해 "잘하셨습니다"라고 위로해주는 김상궁(백현주)과 그림자같이 곁을 지키는 홍내관(고규필)도 큰 지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자신의 가치를 지켜온 휘는 12회 마침내 자신을 폐세자시킨 아버지 혜종 앞에서 솔직한 마음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세자로서 아바마마를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궐에서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원망하였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었던 평범한 아이였으니까요. 다시 제가 태어나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이는 사랑받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저버려야 했던 현실 속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항변처럼 들렸다. 다행히도 휘는 자신의 비밀을 알면서도 끝까지 지켜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12회 은신처로 피해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휘는 눈물을 흘린다. 이는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았다는 기쁨과 그간의 서러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두려움이 범벅된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정체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을까. 휘는 12회 말미 마침내 용기를 내고, 지운에게 커밍아웃 한다. 이는 휘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로 결심하고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로 다짐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휘는 마침내 지운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휘는 마침내 지운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 KBS

 
나는 이런 휘의 모습에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많은 조건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성 정체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물론, 많은 이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면 위험해질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성별이 뒤바뀐 설정의 사극들이 되풀이되고 인기를 끄는 건 아마도 현실이 사극 속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두렵게 느껴질 때, <연모>의 휘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휘가 그랬던 것처럼 정신화 능력을 발휘한다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켜가면서도 타인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휘의 주변에서 그녀를 지켜준 사람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수용과 존중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두려워하며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도 누군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지지자가 되어 주면 어떨까? 그래서 자신의 정체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여전히 사극 같은 현실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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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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