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서의 7년> 포스터

<티벳에서의 7년> 포스터 ⓒ TriStar Pictures

 
브래드 피트의 젊음이 빛을 발하는 1997년작 <티벳에서의 7년>은 사실 지금이라면 제작될 수 없었을 영화다. 국경을 넘어, 존재하는 자본의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의 몇 년이다. 히말라야 최고 봉우리 중 하나인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려는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브래드 피트 분)가 티베트에서 보낸 7년을 그린다.

등정을 위해 인도를 방문한 하러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그가 영국령 인도에선 적국의 국민으로 분류된 탓이다. 수용소에 갇혀 아내에게 이혼하자는 편지까지 받은 하러는 탈출해 자유를 찾기로 결심한다. 하러는 우여곡절 끝에 수용소를 탈출한다. 인도 국경을 넘어 북동쪽 티베트로 향한다. 가진 것도 없이 함께 탈출한 동료와 함께 티베트로 간 하러는 외국인 출입이 금지된 전설의 도시에 숨어든다. 도시의 이름은 라사. 13살 된 어린 지도자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통치하는 티베트의 수도다.
 
 <티벳에서의 7년> 스틸컷

<티벳에서의 7년> 스틸컷 ⓒ TriStar Pictures

 
미지의 세계와 만난 두 사람

소설가 존 가드너는 모든 소설에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낯선 이가 마을로 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누군가 미지의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티벳에서의 7년>은 가드너가 정의한 소설과 가장 닮아 있는 영화다.

하러는 달라이 라마의 눈에 들어 티베트에서 7년간 머문다. 남미 과라니족 마을을 찾은 선교사가 극을 이끄는 <미션>, 오늘날 태국인 시암의 왕과 영국인 미망인의 로맨스를 그린 <왕과 나>, 메이지 시대 일본의 미국 장교 이야기 <라스트 사무라이>같은 영화가 그렇듯, 라사에 정착한 하러의 변화를 영화는 의미심장하게 잡아낸다.

특히 하러는 달라이 라마와 깊이 교류한다. 때로는 선생과 제자로, 때로는 지도자와 여행자로, 그러나 그보다는 동등한 친우로서 그들은 관계를 맺는다. 하러의 마음 속에 라사란 도시가 자리하고, 달라이 라마 역시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된다. 라사와 달라이 라마에게도 하러의 흔적이 남는다.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 그리고 하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평온은 한 순간에 깨어진다. 1950년, 서쪽에서 몰려온 붉은 군대가 티베트의 자유를 앗아간다. 지렁이를 해칠까 땅도 쉽게 파헤치지 못하는 티베트의 순박한 이들이 공산주의 군대의 군홧발에 짓밟힌다. 인민해방군이라는 중국군은 대체 누구를 무엇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던 걸까. 중국의 점령 이후 1백만 명의 티베트인이 죽고 6000여 곳의 사원이 파괴됐다고 영화는 증언한다. 게다가 그 이후 치러야 했던 대가는 더욱 컸다.
 
 <티벳에서의 7년> 스틸컷

<티벳에서의 7년> 스틸컷 ⓒ TriStar Pictures

 
같은 시기 벌어진 비극, 결과는 달랐다

영화의 배경은 한국에겐 남다르게 다가온다. 1950년 10월 티베트에는 4만 명에 달하는 중공군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한 때이기도 하다. 중국이 티베트 국경에 진을 친 10월 19일, 인민지원군 26만 명은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로 진입했다.

두 나라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미국을 비롯한 민주진영 여러 나라가 개입해 한반도의 공산화에 맞선 한국전쟁과 달리 티베트는 세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해 11월 티베트 정부가 나서 UN에 한국전쟁과 같은 국제적 지원을 절실히 호소했지만 참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관심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한국전쟁의 향방에 쏠려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끝내 결판을 짓지 못한 중국은 미군 해군의 대만진주로 대만 점령마저 실패하지만 티베트 만큼은 완전 점령하게 된다. 티베트 독립 운동이 70년 간 이어져온 배경이다.

오늘날 티베트 독립은 더욱 요원해졌다. 티베트 북방의 신장위구르 문제와 함께 거론되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중국 정부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는 행사를 앞두고 아테네에서 반대시위를 벌인 티베트 학생운동가는 붙잡혀 구금됐다. 미국 NBA 스타 에네스 칸터가 티베트 독립을 응원하는 신발을 공개한 뒤 보스턴 셀틱스 경기가 중국에 방영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간판스타 메수트 외질이 위구르 독립과 관련한 게시물을 SNS에 올린 뒤 아스날 경기는 중국에서 방송되지 않는다.
 
 <티벳에서의 7년> 스틸컷

<티벳에서의 7년> 스틸컷 ⓒ TriStar Pictures

 
떼어진 달라이 라마 사진, 잊혀져 가는 티베트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이야기를 다룬 상업영화는 이제 제작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영화 제작비를 마련한다고 해도, 출연한 배우와 제작진의 다음 활동이 쉽지 않으리란 우려가 잇따른다. 물론 중국 시장 개봉은 꿈도 꿀 수 없다. 

티베트에선 달라이 라마의 사진조차 마음대로 걸 수 없다고 한다. 중국 공안이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갖고 있는 걸 법으로 금지하고 휴대전화까지 조사해 사진 없애기에 나선 것이다. 시진핑 집권 전까진 자치구내에 공공연하게 걸려 있던 사진은 현재 티베트 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14대 달라이 라마는 86세의 고령이다. 그가 죽으면 티베트를 규합할 마지막 상징이 사라진다. 그의 친구 하인리히 하러는 티베트의 독립을 끝내 보지 못하고 2006년 숨졌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전까지 나치와 히틀러에 매료된 적도 있었던 하러는 달라이 라마를 만난 뒤 국제인권운동가로 활약했다. 그의 인생이 곧 영화였다. 그의 삶에 매료된 프랑스의 거장 장 자크 아노가 1997년 찍은 영화가 바로 <티벳에서의 7년>이다. 그 뒤 24년이 되도록 티베트는 세계 문화에서도 잊힌 땅이 되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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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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