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 KBS


최근 들어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기는 지상파 TV의 시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초 SBS가 방영한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가 각 장르별 대표 음악인들과의 이야기, 라이브 연주를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케이팝 열풍 속 잠시 잊고 있었던 선배 장인들의 노고를 다시금 깨닿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그리고 이번엔 공영방송 KBS가 색다른 시도를 단행한다.  

​KBS 1TV를 통해 4회 연속 방영되는 <시대를 바꾼 아티스트, 데뷔의 순간>(아래 '데뷔의 순간')은 일제 강점기 가요의 탄생부터 통기타, 청바지, 그리고 TV와 언더그라운드 무대, 지금의 케이팝으로 이어지는 우리 대중 음악 100년 역사를 함축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다. 각종 자료를 모으는 음반 수집가나 그때의 가요를 즐겨 듣는 마니아가 아닌 한, 요즘의 시청자들에겐 되려 생소하고 낯선 느낌을 선사하기도 하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노래에 얽힌 사연들을 <데뷔의 순간>은 기존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질감의 이색적인 시도로 소개해준다.

1화 가요의 탄생...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 KBS

 
지난 14일 방영된 <데뷔의 순간> 1회 '가요의 탄생'은 기존 민요의 범주를 넘지 못했던 우리 대중음악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던 일제 강점기로 시간을 되돌린다. 그 시절 경성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각종 세트와 의상, 수많은 엑스트라 동원으로 마치 시대극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몰입감을 키워나간다.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로 평가되는 '낙화유수'(1927년 발표, 1929년 음반 제작)를 비롯한 '다방의 푸른 꿈' 등 그 무렵 발표된 음악들을 오래된 SP음반 그대로 들려주거나 KBS관현악단의 연주로 재해석하는가 하면 나레이터 유희열의 차분한 목소리에 담은 설명을 통해 그 당시 우리 가요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기존 3박자 계열로 불리웠던 전통 민요의 옛 가락과 다르게 서양의 2박 또는 4박자 계열로 악곡 구성이 달라졌고 단조 7음계 중 레와 솔을 제외한 5음 위주 작곡이 주를 이루면서 만들어진 노래는 식민지 치하 우리 국민들에겐 마음의 위로를 선사했다.   

한국전쟁 이후 라틴, 삼바, 탱고 등 다양한 서양의 운율을 수용한 곡들은 LP레코드의 생산과 맞물려 가요계의 대변혁을 주도하기도 한다. 손목인, 박시춘, 김해송 등 걸출한 작곡가를 배출한 오케레코드사를 비롯해서 이난영과 그의 자녀들로 구성된 김시스터즈, 그리고 이미자와 1980년대 주현미로 이어지는 한국 트로트의 역사가 1회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준다. 

제2화 노래, 자유의 날개를 달다... 미8군, 록큰롤, 그리고 세시봉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 KBS

 
16일 방영된 제2화의 부제는 "노래, 자유의 날개를 달다"였다. 전통적인 화법과 서양의 악곡 구성이 결합된 트로트의 등장과는 대비를 이루는 1960~1970년대의 대중가요사가 핵심을 차지한다. 그 시절 미8군 무대는 윤항기-윤복희 남매를 비롯해서 패티김, 한명숙 등 전설의 가수들을 배출한 한국 가요의 요람 같은 존재였다. 이곳을 통해 가수로 입문한 이들은 점차 각종 방송, 악극단 무대 등 다양한 분야로 발을 넓히면서 재능을 뽐냈고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 대중음악은 풍성함을 접목시킬 수 있었다.

​미국의 록큰롤 영향을 받은 일명 '그룹 사운드'의 등장 역시 그 시절의 사건 중 하나였다. 가창 vs. 연주가 철저히 구분된 시대에 노래하는 가수가 직접 기타와 드럼을 치며 등장한 키보이스, 히식스, 애드4 등은 한국 록그룹의 원조로 기억되는 팀들이었다. 특히 신중현은 빼어난 연주력과 작곡 실력을 갖추면서 김추자, 김정미 등 후배 발굴에도 큰 공을 세우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로 상징되는 세시봉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을 배출한 이곳을 통해 경직되었던 그 시절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자유 분방한 음악을 앞세웠던 청년 음악인들은 새로운 대세로 떠올랐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권의 비상식적 탄압 과정에서 빚어진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상당수 인물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음악을 접었고 가요계에는 암흑기가 도래한다.

50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알차게 꾸민 내용​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KBS 다큐멘터리 '데뷔의 순간' ⓒ KBS

 
주1회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90~100분 구성이 기본이 될 만큼 긴 시간으로 꾸며지는 방송물이 익숙한 요즘 분위기를 감안하면 <데뷔의 순간>이 마련한 50분은 시청 이전만 해도 "너무 짧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방송이 시작된 이후엔 오히려 탄탄한 구성력을 앞세우며 몰입감을 키워 나간다.

단순히 관련자 인터뷰 중심에서 벗어나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그 시절 스타가 찾아가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보는 한편 노래와 연주를 중간 마다 삽입해서 단조로움을 탈피한다. 시청자들에겐 생소한 '15살 주현미'의 첫 번째 녹음물을 방송을 통해 깜짝 소개하는가 하면 희귀 자료도 대거 동원하는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영상물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다큐멘터리 고유의 본분도 잊지 않는다.

​오락 및 예능적 측면이 배제된 1TV 다운 기획물이지만 탄탄한 완성도를 앞세우면서 <데뷔의 순간>은 마치 한국 대중음악사를 함축적으로 채운 '요점 정리 노트' 같은 구실을 톡톡히 담당해준다. 화려한 조명과 영상을 배경 삼은 뮤직비디오에 익숙한 요즘 세대 음악팬들이라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이야기 전개의 구성에 힘입어 SBS <아카이브K> 이상의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른바 '시청료의 가치'가 빛나는 기획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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