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발매되었던 보아의 미국 데뷔 앨범 < BoA >

2009년 발매되었던 보아의 미국 데뷔 앨범 < BoA > ⓒ SM 엔터테인먼트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 이전만 해도, 한국 가수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케이팝의 미국 진출 초기는 고난의 역사였다. SM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자 '아시아의 별'로 불렸던 보아가 빌보드 200 차트에서 127위에 올랐던 것이 한국 가수의 첫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이었다. 

한국 가수 중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주인공은 걸그룹 원더걸스였다. 원더걸스는 그룹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미 투어에 오프닝 가수로 동행했고, 직접 팬들을 근거리에서 만나는 등 현지화 전략에 집중했다. 그 결과 'Nobody'의 영어 버전이 핫 100 차트에 76위로 진입하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원더걸스의 미국 활동이 일으킨 반향은 한국에서의 열풍에 비해 미미했다.

최근 원더걸스 출신의 선미와 함께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프로듀서 박진영은 "잘 안 되면 욕을 먹는 것"이라며 실패를 인정했다. YG 엔터테인먼트의 세븐도 2009년 래퍼 릴 킴(Lil' Kim)과 손을 잡고 'Girls'를 발표했으나 역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의 '3대 기획사'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미국 진출에 실패한 것.

긴 시간이 지났다. 2021년 현재, 미국 빌보드의 간판 차트인 핫 100 차트(싱글 차트)와 빌보드 200 차트(앨범 차트)에서 케이팝 그룹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케이팝은 이제 전 지구적인 현상이며, 더 이상 마니아들만이 향유하는 서브 컬쳐 정도로 평가받지 않는다.

지난 7월 1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K팝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나(HOW K-POP CONQUERED THE UNIVERSE)"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캐치한 음악과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등을 활용한 능숙한 소통 방식 등을 케이팝 현상의 주된 이유로 설명했다. 2010년대 초반을 거쳐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가 큰 성장을 거듭한 것은 케이팝의 전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총공'이라고 불리는 케이팝 팬덤의 지원 문화까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성장을 거듭한 케이팝은 매년 최전성기를 경신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는 이를 증명하는 좋은 지표다.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 (James Marcus Haney x Heo Jae Young x Kim So Jung)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 (James Marcus Haney x Heo Jae Young x Kim So Jung) ⓒ 워너뮤직코리아


빌보드에서 만나는 케이팝, 이제 익숙해

2017년, 'DNA'를 핫 100 차트 67위로 진입시킨 이후 방탄소년단은 매년 빌보드 차트에 출석했다. 지난해 'Dynamite'를 핫 100 차트 1위에 올린 방탄소년단은 올해에도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다. 방탄소년단의 'Butter'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Drivers License'를 제치고 2021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최장 기간 1위(10주)를 차지한 노래로 기록되었다. 'Permission To Dance', 그리고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작업한 'My Universe'는 모두 발매와 동시에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하는 '핫샷 데뷔'를 이뤄냈다. 'My Universe'는 콜드플레이가 'Viva La Vida'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배출한 핫 100 1위 곡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다른 케이팝 그룹들 역시 유의미한 성적을 연이어 거두고 있다. 그룹 세븐틴은 올해 미니 8집 < Your Choice >로 빌보드 200 차트 15위에 올랐고, NCT127의 정규 3집 < Sticker >는 올해 빌보드 200 3위에 올랐다. 이는 올해 케이팝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다. 이외에도 SM의 프로젝트 그룹인 슈퍼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이 빌보드 200 차트의 상위권에 올랐다.
 
 트와이스의 첫 영어 싱글 'The Feels'

트와이스의 첫 영어 싱글 'The Feels' ⓒ JYP 엔터테인먼트

 
걸그룹들의 활약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튜브 구독자 수가 많은 아티스트(2021년 10월 현재 6810만 명)인 걸그룹 블랙핑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뚜두뚜두'를 시작으로 'Ice Cream', 'Lovesick Girls'에 이르기까지, 이미 일곱 개의 싱글을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시켰다. 레이디 가가, 셀레나 고메즈, 카디비 등 팝신의 슈퍼스타들과의 작업도 자연스럽다. 지난해 발표된 정규 앨범 < The Album >은 빌보드 200 차트 200에 오르면서 그룹의 거대한 위상을 재확인했다. 제니와 리사, 로제 등 멤버들이 발표한 솔로곡 역시 그룹에 못지 않는 성적을 거두곤 한다.

최근 발표된 트와이스의 신곡 'The Feels'는 2021년 10월 16일자 빌보드 핫 100 차트 83위에 올랐다. 이로써 원더걸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에 이어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네 번째 케이팝 그룹이 되었다. 'The Feels'는 트와이스가 데뷔 후 처음으로 발표한 영어 싱글이다. 현재 팝 시장의 트렌드인 디스코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트와이스는 지난해 2월 유니버설 뮤직의 산하 레이블인 리퍼블릭 레코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본격적인 미국 시장 겨냥에 나섰다. 한편 같은 소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인 걸그룹 잇지(ITZY)의 < CRAZY IN LOVE >도 빌보드 200 차트에서 11위를 차지했다. 이는 올해 초 발표된 < GUESS WHO >와 비교했을 때 137계단이나 오른 성적이다.

과거 선배들이 들이킨 고배를 뒤로 한 채, 3세대~4세대 케이팝 그룹들이 전 세계 시장의 심장부를 공략하고 있다. 미국 시장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케이팝의 준거점이었다. 지금도 그러나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분절된 세계라고 생각되었던 영미권 팝과 케이팝이 동일한 타임라인 안에 대등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제 신예 케이팝 그룹들은 빌보드 1위와 그래미 수상을 자신들의 버킷 리스트로 뽑곤 한다. 지금 빌보드는 케이팝이 올라설 수 있는 종착역이 된 듯하다. 이 현상이 순간의 호시절에 그칠지, 혹은 거대한 흐름의 시발점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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