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장면이 있다. 강고한 검찰주의자로 비쳤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SBS 사극 <홍천기>를 지배하는 무속이나 샤머니즘과 자꾸 연관되는 모습이다.

드라마 <홍천기>에서는 이런 전통 신앙이 전면에 부각돼 있다. 가상의 '단 왕조'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조선왕조를 연상케 하는 이 드라마 속의 왕실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왕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힘겹게 전개하고 있다. 국무로 불리는 무녀 미수(채국희 분)가 이 영적 싸움의 최일선에 서 있다.

선왕의 어진에 마왕을 봉하려는 이들
 
  SBS 드라마 <홍천기>.

SBS 드라마 <홍천기>. ⓒ SBS

 
  SBS 드라마 <홍천기>.

SBS 드라마 <홍천기>. ⓒ SBS

 
드라마 속의 성조 임금(조성하 분)과 무녀 미수 등은 마왕을 선왕의 어진에 봉함하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죽은 임금의 초상화 속에 마왕을 가둬두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 작업을 위해 예전에 투입된 인물이 화가 홍은오(최광일 분)이고, 현재 투입된 인물이 홍은오의 딸인 주인공 홍천기(김유정 분)다.

조선시대의 공식 국교는 유교였지만, 불교와 더불어 샤머니즘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 민중들은 물론이고 유학을 배운 양반 사대부들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왕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학자들은 공식적인 데서는 공자·맹자를 운운하면서도 편한 자리에서는 선녀나 신선을 운운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식으로 하면 신선교 성직자이고 중국식으로 하면 도교 성직자인 선녀·신선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선비들이 허다했다.

조선 유학자들의 사표로 추앙된 포은 정몽주는 만 43세 때인 1380년의 어느 날 저녁에 지은 '전주 망경대에 오르다'에서 방금 전에 사라진 태양빛을 그리워하며 "하늘가에 지은 해가 뜬구름에 묻혀 버리자, 서글프게도 옥경(玉京)을 바라볼 수 없게 됐다"고 노래했다.

옥경은 신선세계의 도읍이었다. 정몽주는 고려 임금이 사는 개경을 생각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신선교 혹은 도교적 분위기가 정몽주의 내면에 스며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적 가풍에서 성장한 시인 허난설헌(허초희)도 귀양에서 풀려난 오빠 허봉(허균의 형제)에게 보낸 시에서 "깨끗이 제단 닦아 상선(上仙)님께 예를 올리니", "향기나는 선녀들 봄놀이 바쁜데"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정치인과 무속의 상관관계
 
  SBS 드라마 <홍천기>.

SBS 드라마 <홍천기>. ⓒ SBS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드라마 <홍천기>의 장면들이 어느 정도는 옛날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또 무속과 연관돼 거론되는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조선시대에는 어느 정도 용납됐을 것 같은 느낌이 생길 수도 있다.

이성계·정도전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은 "선생님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논어> 술이(述而) 편의 사상을 신봉했다. 주자는 괴력난신을 괴이·용력(勇力)·패란(悖亂)·귀신으로 풀이했다. 그는 이를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 표현은 인간의 감각으로 이해되기 힘든 비정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을 유학자들이 논외의 영역에 유보해두도록 만들었다. 이는 이들이 무속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도 기여했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라도 멀리하도록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규명되기 힘든 것들이 자신과 나라와 세상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유지했다.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이 그런 인식을 갖게 된 데는 유교 경전뿐 아니라 과학 발전도 상당한 몫을 했다. 조선 건국 26년 뒤에 주상으로 등극한 세종대왕이 과학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등장 이전에 과학적 진보가 상당히 축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같은 과학적 성과들은 천문과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 판단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이는 샤머니즘에 대한 의존도를 떨어트리는 데도 기여했다.

고대 이래로 인류의 지식 축적과 샤머니즘의 영향력은 반비례 관계를 보였다. 경험적이고 합리적 지식이 축적되는 분야에서는 무속에 의한 의존도가 낮았다. 그래서 세종 시대에 이미 과학적 진보가 상당 정도로 축적돼 있었다는 것은 조선 초기에도 샤먼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음을 의미한다.

그런 과학적 성과가 축적된 상태에서 유교의 위상이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의 정치인들은 무속을 공식적으로 운운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라면 몰라도 공개 석상에서 노골적으로 그렇게 했다가는 '시대에 뒤처졌다'는 조롱을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식적인 샤머니즘 행사가 전혀 열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제천 의식을 거행하는 소격서 같은 관청은 조선 전기까지도 남아 있었다.

또 대궐 마당에서 액막이 행사가 벌어지는 일들도 있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이방원이 임금으로 있을 때인 음력으로 태종 12년 5월 3일(양력 1412년 6월 11일) 종교인 21명이 대궐로 초청돼 경을 낭송하는 행사가 있었다. 액을 내쫓기 위한 명목으로 거행된 의식이었다. 액막이 의식이었으니, 마왕을 몰아내는 <홍천기> 속의 의식과 취지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었다.

태종 이방원에 관한 기록에서는 무속인들과의 접촉이 자주 나타난다. 액막이 의식을 거행한 이듬해에는 점쟁이의 권고를 받아들여 그가 거처를 옮기는 일도 있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이방원은 '액을 피해야 한다'는 권유를 수용해 태종 13년 5월 1일(1413년 5월 30일 거처를 궁궐에서 왕실 사당으로 옮겼고, 5일 뒤에는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의 거처도 옮겼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조선왕조 5백년 전체를 놓고 보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유교철학인 성리학 전문가이자 유교 원리주의자인 정암 조광조가 1516년부터 4년간 실권을 잡으면서 소격서를 혁파하는 등의 친(親)유교 정책을 편 뒤로는 임금들이 노골적으로 무속신앙을 표방하기가 힘들었다.

음력으로 중종 13년 8월 1일자(양력 1518년 9월 5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조광조는 오랜 관행이라며 소격서 혁파를 거부하는 중종 임금을 상대로 '지금 소격서를 설치해둔 것은 백성들에게 그릇됨을 가르치는 것'이라면서 이런 일에 관행을 운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의 상소문을 제출했다.

'그릇됨'이란 표현을 쓸 때 조광조가 사용한 한자는 사(邪)다. 백성들에게 사악한 것을 가르치지 말라는 게 그의 메시지였다. 상소문에서 그는 이 글자를 열 번이나 사용했다. 전통 신앙을 '공적 영역'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유학자들의 의지는 그 정도로 강력했다.

사림파(유림파)로 불리는 조광조 지지자들은 1567년 선조 즉위 뒤로는 영구 집권을 이어갔다. 이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는 분화 현상을 보이면서 왕조의 나머지 3백년을 담당했다. 이들 강경파 유학자들의 집권으로 인해 선조 이후에는 군주가 무속적 모습을 공개 연출하는 일이 더욱 더 어려웠다.

물론 조선 후기에도 지방에서는 무당들이 민간 의료의 상당부분을 책임졌다. 책으로 의술을 배운 전문 인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샤먼의 영향력은 근세까지도 여전히 강력했지만, 적어도 공적인 정치 영역에서는 현저히 힘을 잃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선주자로 나선 인물이 공식 석상에서 무속이나 샤머니즘으로 비칠 만한 행동을 연출하는 모습은 조광조 출현 이후에는 한층 드물어졌다. 그 이전에도 이방원 같은 군주가 있기는 했지만, 대권을 지향하는 인물이 샤머니즘에 경도되는 모습은 고려시대라면 몰라도 조선시대와는 친숙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나는 장면들은 드라마 <홍천기>와는 어울릴지 몰라도, 적어도 600년 전부터는 정치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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