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은 만18세, 여성은 만16세가 넘으면 부모 또는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결혼이 가능했다. 여성의 경우 고등학교 1,2학년 학생이 '법적으로' 기혼자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법이 개정되면서 남녀 모두 만18세 이상으로 결혼가능 나이가 변경됐다(물론 남녀 모두 만19세가 넘으면 성년이 되기 때문에 부모 동의 없이도 혼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2000년 대 초반만 해도 미성년자의 결혼을 다룬 영화들이 종종 제작되기도 했다. 지금은 남자가 된 엘리엇 페이지가 '앨런 페이지 시절'에 출연한 <주노>가 있었고 국내에서는 김혜성과 박민지가 출연한 <제니,주노>가 있었다. <제니,주노>의 김호준 감독이 2000년대 중반 다소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제니,주노>를 만들기 1년 전 여고생의 결혼을 다룬 영화 <어린 신부>로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신부>는 비수기에 가까운 4월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300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했다.

<어린 신부>는 비수기에 가까운 4월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300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했다. ⓒ 코리아 픽쳐스(주)

 
'국민 여동생'이라는 신조어 만들어낸 문근영

1987년 광주에서 태어난 문근영은 1999년 어린이 드라마 <누릉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리고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을 연기하면서 일약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은서를 연기한 송혜교는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신예 청소년 배우 문근영은 안정된 연기와 총명한 이미지로 오히려 송혜교보다 은서 역을 더 잘 소화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1년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 민자영의 아역을 연기한 문근영은 2003년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에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임수정의 동생 배수연을 연기했다. 그렇게 최고의 청소년배우로 무럭무럭 성장하던 문근영은 2004년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일약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했다. 2004년 4월에 개봉해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은 <어린 신부>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어린 신부>를 통해 일약 최고의 하이틴스타로 떠오른 문근영은 2005년 <댄서의 순정>에 출연하며 뛰어난 춤 실력을 뽐냈고 고 김주혁과 호흡을 맞춘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에서는 쉽지 않은 맹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2008년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연기하며 1997년 김희선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 신데렐라 스토리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신데렐라 언니 송은조를 연기한 문근영은 캐릭터에 잘 녹아 드는 열연으로 극찬을 받았다. <신데렐라 언니>를 끝낸 후에는 곧바로 동갑내기 스타 장근석과 함께 <메리는 외박중>에 출연했다. 하지만 2012년에 출연했던 <청담동 엘리스>는 동시간대의 <메이퀸>에 밀려 10%를 넘나드는 시청률에 그치며 만족스러운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2013년에 방영된 <불의 여신- 정이>가 출연료 미지급 논란 속에 아쉬운 성적을 올렸고 완성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마을-아치아라의 비밀>도 아쉬운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2014년 혜경궁 홍씨를 연기했던 영화 <사도>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사도>를 '문근영의 영화'라고 알고 있는 관객은 거의 없다. 2019년 <유령을 잡아라> 출연 후 16년 간 함께 한 소속사 나무엑터스를 떠난 문근영은 현재 소속사 없이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발랄한 여고생 연기로 관객들 무장해제
 
 문근영이 직접 부른 <어린 신부> OST <난 사랑을 아직 몰라>도 그 시절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문근영이 직접 부른 <어린 신부> OST <난 사랑을 아직 몰라>도 그 시절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코리아 픽쳐스(주)

 
지금이야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많은 작품에서 믿음직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성장했지만 젊은 시절 김래원은 '여배우복'이 유난히 많은 대표적인 배우로 꼽혔다. 실제로 김래원은 <순풍산부인과>의 송혜교를 시작으로 <내 사랑 팥쥐>의 장나라, <눈사람>의 공효진, <옥탑방 고양이>의 고 정다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김태희 등 당대 최고의 여성 스타들과 멜로연기를 했다. 그리고 <어린 신부>에서는 문근영의 남편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군복무를 마치고 유학을 다녀온 바람둥이 미대생 상민(김래원 분)과 수다 떨기 좋아하고 멋진 선배 오빠를 보면 가슴 설레는 귀여운 여고생 보은(문근영 분). 친남매처럼 만나면 티격대격 싸우는 이들은 병세가 악화된 할아버지(고 김인문 분)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원치 않는 결혼식을 올린다(하지만 위독하시다던 할아버지는 보은이 뽀글이 파마를 하고 마루에서 마늘을 까며 동생에게 잔소리를 할 때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신다).

학교 조교 지수(고 김보경 분)에게 마음이 있는 듯 하던 상민은 보은이 다니는 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고 스토커 같은 보은의 담임선생님(안선영 분)을 만난다. 보은 역시 '품절녀'인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야구부 에이스 정우(박진우 분)를 만나지만 이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아껴주던 상민의 진심을 깨닫는다.

사실 <어린 신부>는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는 썩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이다. 그럼에도 <어린 신부>가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관객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보은을 연기한 문근영의 매력이 결정적이었다. <명성황후>나 <장화, 홍련> 등 전작에서 주로 무겁고 우울한 캐릭터들을 연기했던 문근영은 <어린 신부>를 통해 귀엽고 통통 튀는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1988년 여고생 가수 이지연 1집 후속곡 <난 사랑을 아직 몰라>도 무려 17년 만에 문근영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문근영이 가사도 틀리고 박자도 놓치지만 정식으로 녹음된 스튜디오 버전은 그 시절 많은 이들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문근영은 2008년 모 휴대전화 광고에서도 노래를 직접 부르며 깨끗한 음색을 뽐냈다.

'문근영의 친구A'가 신세경이었다고?
 
 배우 신세경(오른쪽)은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의 절친 혜원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배우 신세경(오른쪽)은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의 절친 혜원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 코리아 픽쳐스(주)

 
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주인공의 편이 돼주는 의리파 친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어린 신부>의 보은에게도 모든 비밀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나오는데 그 친구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신세경이었다. <어린 신부> 개봉 당시 고2였던 문근영보다도 3살이나 어렸던 중학생 신세경은 다소 조숙한 외모와 어른스러운 마음 씀씀이로 보은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친구 혜원 역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교장선생님과 함께 학교에서 보은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2명 중 한 명이기도 한 혜원은 보은이 자신도 남몰래 좋아했던 정우 선배와 사귄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착한 친구답게 사랑 대신 우정을 선택한다. <어린 신부>가 영화 데뷔작이었던 신세경은 이후 드라마 <토지>, <선덕여왕>, 영화 <신데렐라>,<오감도> 등에 출연했고 2009년 가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통해 신예스타로 떠올랐다.

문근영의 주변에 신세경이 있었다면 김래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연상의 선배 역할은 지수 역의 고 김보경이 담당했다. 물론 지수는 상민을 친한 후배 이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지만 보은은 그런 지수와 상민 사이를 혼자서 질투한다. <친구>의 진숙 역으로 주목 받은 후 드라마 <하얀 거탑>, <깍두기>, 영화 <기담>등에 출연한 김보경은 2010년대 들어 활동이 뜸해졌다가 지난 2월 오랜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실 김보경이 연기했던 지수보다 상민을 더욱 괴롭혔던 캐릭터는 개그우먼 출신 배우 안선영이 연기했던 보은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생으로 온 상민에게 첫 눈에 반한 김샘(엔딩크래딧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이 '김샘'이다)은 상민과 보은의 신혼집까지 찾아올 정도로 집요하게 상민을 쫓아다닌다. 1998년 MBC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안선영은 2000년대부터 배우활동을 병행하며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어린 신부 문근영 김래원 신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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